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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 연예

고미호는 왜 한국에서 아들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을까?



"한국에서 옛날부터 가족에 아들이 무조건 있어야 된다고 그렇게 생각했었잖아요. 왜냐하면 며느리가 필요해서. 음식 하려면 며느리가 필요하니까. 딸은 어차피 시집가면 안 오니까. 그래서 아들이 무조건 있어야 되는 거 같아."


제3자의 시선에 깜짝 놀랄 때가 있다. 그 눈길은 직관적이면서 신선하다. 누구에게나 일상이 돼 익숙진 탓에 희미해졌던 문제의 '본질'에 순식간에 다가서고, 감춰져 있던 '문제점'들을 사정없이 꼬집어낸다. 어느새 '내부인'이 됐던 우리 자신의 위치를 깨닫게 해준다. MBC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에 출연하고 있는 '러시아 며느리' 고미호의 문제제기가 바로 그렇다. 


지난 주 고미호는 설 명절을 맞아 남편 이경택과 함께 시댁을 찾았다. 가족들과의 반가운 인사도 잠시, 고미호는 곧바로 (며느리에게 배당된) '명절 노동'에 시달리게 됐다. 시어머니는 기다렸다는 듯이 며느리에게 편한 옷으로 갈아입으라고 지시했고, 이어 '끔찍한' 주방으로 끌고갔다. 한국의 명절 음식들이 낯설기만 한 터라 고미호는 계속 주뼛주뼛했고, 그럴 때마다 시어머니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우리는 이 장면에서 '고부 갈등'을 본다. 음식을 못 한다고 구박당하는 고미호는 안쓰럽기만 하고, 그런 며느리를 사정없이 을러메는 시어머니는 나쁘기만 하다. 이렇듯 시어머니는 '악역'을 담당한다. 이럴 때 시아버지는 은근슬쩍 나타나 며느리에게 딸기를 하나 건넨다. 천사가 따로 없다. 이를 본 시어머니는 서운한 마음에 "나는?"이라 발끈한다. 며느리를 질투하는 시어머니? 흔히 말하는 '여적여(여자의 적은 여자) 구도'이다. 


그런데 이 상황의 진짜 '적폐(積弊)'는 따로 있다. 누구일까? 눈에 잘 띄지 않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시어머니부터 시누이, 며느리까지 가족 가성원 가운데 여자 모두가 주방에서 명절 음식을 만드느라 사투를 벌이는 와중에 느긋하게 거실에 앉아서 TV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 바로 남자들이다. 게다가 그들은 꼴사납게도 꼭 한마디를 보탠다. "늦었어. 빨리빨리 해야지."


시대가 많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고미호의 시댁처럼 가부장적인 집안이 아직 수두룩하다. 남자들이 주방에 들어가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여기고, 주방은 여자들의 공간인마냥 경계를 명확히 한다. 그런 집에서 남자들은 "그런데 김치가 없네? 김치 좀 가져와."라고 말하면 그뿐이고, "형수님, 음식이 맛있네요. 더 먹을 수 있어요?"라며 그릇을 내밀면 땡이다. 


'(가사) 노동'에서 벗어난 남자들은 마음이 날아갈 듯 가볍다. 여유가 있으니 덕담도 하고, 시덥잖은 농담도 건넨다. 명절이 즐거울 수밖에! 반면, 여자들은 어떨까? 이미 얼굴에 그늘이 가득하다. 일은 산더미같이 쌓여 있다. 지긋지긋한 노동에 시달리는 여자들의 입에서 좋은 말이 나오길 기대할 수 있을까? 스트레스가 쌓이고, 신경이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말에 짜증이 섞여 나오기 마련이다. 



"제가 저 정도였나.. 싶을 정도로 '저거는 좀 아닌데'라는 생각을 했죠."


이런 구도 하에서 시아버지가 며느리를 사랑하는 건 쉬운 일이다. 하지만 고부 간에는 자연스레 갈등이 쌓일 수밖에 없다. 이럴 때, 남자들의 반성은 얕고 단편적이다. 시대가 변화하는 데 따른 명절의 의의, 명절 속 남녀 간의 불공정한 노동, 가족 내의 불합리한 가부장제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다. 그저 '저거는 좀 아닌데'라고 얼버무리기만 해도 기특한 남편으로 대우 받는다. 


고미호는 처음으로 시댁에서 설 명절을 경험한 후, 한국의 가족 문화에 대해 고민했다. 그리고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고미호는 한국 사회에서 아들이 필요했던 이유에 대한 자신의 의미심장한 해석을 내놓았다. 그건 '음식(을 비롯한 가사 노동)을 할 며느리가 필요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 이렇게 뼈를 때릴 줄이야! 이 말을 듣는데, 얼굴이 얼마나 화끈거리던지. 정말이지 부끄러웠다. 


외부의 시선으로 바라 본 한국의 가족 문화가 이러한데, 여전히 남자들은 거실의 소파에 앉아 입만 나불대고 있는 건 아닐까? 어차피 다툼은 주방 안에서 벌어질 테고, 불똥은 결코 남자들이 있는 거실까지 튀지 않는다. 그럴 때마다 '여적여 구도'를 이야기하며, 고상하게 혀를 차기만 하면 된다. 참 씁쓸한 일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