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킴의 극장

엇갈린 흥행, '극한직업'은 성공하고 '뺑반'은 실패한 이유

너의길을가라 2019. 2. 6.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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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새해 첫 천만 영화가 탄생했다. <극한직업>은 개봉 15일 만에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극한직업>의 흥행 성공에는 여러가지 요인이 작용했겠지만, 그 중에서 가장 결정적인 이유를 꼽으라면 역시 '웃겼다'일 것이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웃기기만 했다'이고, 달리 말하면 '신파 없음'이다. 관객들은 코미디 영화로서의 본분에 충실한 <극한직업>에 만족감을 표했고, 그 입소문이 흥행으로 이어진 것이다. 

스크린에 많이 걸리니 관객이 많을 수밖에 없다는 '스크린 장악론'이나 아무리 스크린에 많이 걸려도 영화가 재미없으면 금방 스크린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다는 '스크린 시장론'이든, 현재 영화관에 가면 온통 <극한직업>이 걸려있는 게 사실이다. 만약 <뺑반>을 봤다면 유독 <뺑반>에 출연한 배우들의 팬이거나 <극한직업>의 질주 속에 불가피하게 <뺑반>을 선택했을 가능성이 높다. 어찌됐든 선택의 여지가 적은 건 사실이니까.

이럴 경우 흔히 등장하는 상황이 '쌍끌이 흥행'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콩고물이 많지 않다. <극한직업>은 블랙홀이 돼 버렸다. 5일 하루동안 <극한직업>은 1,130,222을 동원했고, <뺑반>은 162,527명에 그쳤다. 게다가 <뺑반>은 <알리타: 배틀 엔젤>에게 2위를 내주며 밀려났다.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둘 다 경찰을 소재로 한 영화인데, <극한직업>은 성공하고 <뺑반>은 실패한 이유가 무엇일까?

"임신한 경찰 처음 봐?"

<뺑반>은 여러모로 신경을 많이 쓴 영화가 틀림없다. 우선, '뺑소니전담반'이라는 낯선 소재를 범죄 영화와 잘 버무렸다. 제작비가 130억 원에 달하는 상업영화답게 제법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카레이싱이 펼쳐진다. 신선하고 흥미로운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또, 벡셀 테스트를 가뿐히 통과할 만큼 많은 여성 캐릭터가 등장한. 그것도 곁가지가 아니라 주요한 배역을 차지했다. 이렇게 많은 여성 배우가 출연한 경찰 영화가 있었던가.

그러나 거기까지가 전부다. 통제불능의 스피드광 사업가 정재철(조정석)을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경찰들의 이야기를 담아가던 <뺑반>은 어느 순간부터 흐름을 틀어버린다. '범죄액션오락'을 표방했던 초반과는 달리 중반 이후 '휴머니즘'으로 돌변한다. 한국영화의 고질병이 도진 셈이다. 거친 엔진소리를 내며 시원하게 내달리던 영화가 타이어에 펑크가 나 주저앉은 모양새다. 관객들은 김이 샐 수밖에 없다.

내사과에서 뺑반으로 좌천된 은시연(공효진), 야망을 품고 있는 내사과 과장 윤지현(염정아), 출산 직전까지 직장 생활을 이어가는 뺑반 게장 우선연(전혜진). 영화의 초반에 큰 기대를 품게 했던 세 명의 캐릭터 역시 중반 이후 힘을 쓰지 못하고 지리멸렬이다. 충분히 매력적일 수 있었던 캐릭터들을 이렇게밖에 활용하지 못한 이유를 한준희 감독에게 따지고 싶어질 정도다. 


<뺑반>을 이끌어가는 주체는 사이코패스를 연상케 하는 정재철(조정석)과 뺑반 에이스 서민재(류준열)다. <뺑반>은 초반의 기세를 이어가지 못하고, 두 배우의 개인기에 영화의 성패를 맡겨 버린다. 물론 조정석과 류준열은 자신들의 캐릭터를 완벽히 소화화며 관객들을 열광시킨다. 그들의 연기는 가히 동물적이다. 조정석과 류준열은 애초에 전형적인 틀을 갖고 있지 않은 자유분방한 배우들이 아니던가.

그러나 서민재의 아버지(이성민)가 등장하면서부터 예고된 신파는 <뺑반>의 호쾌함을 순식간에 잠식해 들어간다. 일개 부유층의 몰락을 보여주는 과정은 개연성이 떨어지고, 경찰의 부패를 드러내는 방식은 너무 뻔하다. 마음껏 뛰어놀았던 조정석과 류준열과 달리, 여성 배우들은 캐릭터의 부실화 속에 전형적인 연기만을 보여줄 수밖에 없었다. 여러모로 신경을 많이 썼지만, 그러느라 정작 한 가지도 제대로 못한 느낌이다.

<극한직업>이 오로지 자신있는 '직구'로 승부를 펼치며 삼구 삼진을 잡아냈다면, <뺑반>은 애매한 속도의 직구와 어설픈 변화구를 섞어 던지다가 스스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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