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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킴의 극장

한계가 명확했던 <명당>,<관상>처럼 되지 못한 범작



추석 극장가는 이례적으로 '한국영화 4파전'으로 라인업이 구성되며 관심을 끌었다. 기대와 우려가 공존했다. 며칠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얼추 결판이 난 것 같다. 선봉에 나섰던 <물괴>는 누적 관객수 701,253명에 그치며 일찌감치 나가 떨어졌다. 조인성을 앞장세운 <안시성>은 박스오피스 1위를 질주하며 1,409,525명을 동원했다. 압도적이다. 그리고 2위 자리를 두고 <명당>(758,862명)과 <협상>(618,427명)이 다투고 있는 형국이다.


최소한 1위 자리를 경쟁할 것으로 예상됐던 <명당>은 생각보다 뒤처졌다. 분명 나쁜 성적표는 아니다. 지금의 흐름을 잘 유지한다면 손익분기점(약 300만 명)에 이르는 건 어렵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명절마다 사극 영화들이 각광받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지금의 결과는 다소 아쉽게 느껴진다. 게다가 조승우라는 확실한 카드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이 정도에 그친다면 사실상 '실패'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명당>의 실망스러운 성적은 무엇 때문일까? 우선, 외부적인 부분을 따져보자. <안시성>의 위력이 거셌다. 고구려의 기상과 패기를 강조한 전쟁액션 블록버스터에 관객들은 만족감을 드러냈다. 외세의 침략을 막아낸 양만춘 장군과 고구려인들의 힘이 작금의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컸던 것일까. 눈과 귀를 만족시킨 스펙터클한 전투 장면이 입소문을 통해 퍼져 나갔다.



"땅은 매개체일 뿐, 결국 사람과 욕망에 관한 이야기" (박희곤 감독)


그러나 <명당>은 그에 맞설 만한 무기가 사실상 없었다. 같은 사극에 밀려버린 것이다. 그만큼 경쟁력이 없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제 내부로 눈을 돌려보자. <명당>은 메시지가 분명한 영화다. "인간이 갖지 말아야 하는 욕망, 생각들을 꼬집"(조승우)는 것이다. 풍수 지리를 소재로 삼아 '땅'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결국 사람과 욕망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명당>의 배경은 조선 말 세도 정치기다. 1800년 정조가 승하하고 열한 살의 순조가 즉위한 때부터 권력을 틀어쥔 안동 김씨(영화에서는 장동 김씨)는 60여 년 동안 자신들의 세상을 만끽한다. 그 위세가 어느 정도였냐하면 '남자를 여자로 만드는 것 말고는 못하는 일이 없다'는 풍문이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왕실의 권위는 바닥까지 떨어졌고, 백성들의 삶은 피폐해져 갔다. 


<명당>은 땅의 기운을 읽고 인간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지관(地官) 박재상(조승우)을 앞세워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효명세자의 묫자리를 점지하는 과정에서 흉지를 길지로 추천한 장동 김씨의 수장 김좌근(백윤식)의 음모를 고한 박재상은 가족을 잃고 만다. 장동 김씨 일가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박재상은 '풍수지리'를 통해 복수의 칼날을 간다. 길지에 조상의 묘를 써 후손의 발복(發福)을 꾀하는 장동 김씨의 비밀을 파헤치려 한다. 



장동 김씨 일가를 저지하려는 박재상의 의도는 흥선(지성)과 맞닿아있고, 서로의 뜻을 이해한 두 사람은 의기투합한다. '상갓집 개'를 자처하며 몸을 숙이고 있던 흥선은 왕실의 권위를 되찾고, 세도가에 넘아간 권력을 되찾으려 한다. 물론 마음 속 깊은 속에는 뜨거운 야심을 품고 있다. 여기에 박재상의 절친 구용식(유재명)과 기방인 '월영각'의 대방 초선(문채원)이 합류한다. 


<관상>의 그림자를 좇고 있는<명당>의 패착은 이야기의 얽개가 부실하다는 점이다. <명당>은 단종과 수양대군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관상>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역사 위에 허구와 사실을 섞어내는 방식을 취한다. 하지만 그 허구의 상상력이 빈곤하게 다가온다. 결국 반전으로 분위기 전환을 꾀하지만, 흥선이 등장하고 '이대천자지지(二代天子之地)'가 언급되는 순간 예고된 결말이었기에 그다지 흥미롭지 않다.


'얼굴'을 통해 사람의 내면과 심리를 파악했던 <관상>이 설득적이었던 것과 달리 '풍수지리'를 바탕으로 한 <명당>은 그 한계가 명확하다. 애초에 정해진 답을 향해 이야기를 짜맞춘 것 같다는 인상마저 든다. 그러다보니 캐릭터들도 살아움직이지 못하고 박제된 듯 생기가 없다. 장동 김씨 김좌근과 그 아들 김병기(김성균)는 뻔한 악역으로 그려져 허무하게 소비되고 만다. 



또, 감초 역할인 구용식을 연기한 유재명의 연기도 빛을 보지 못한다. 문채원의 이야기는 연결고리가 없이 그냥 툭 던져져 있는데, 중심적 역할을 하기보다 기능적 역할에 그쳤다. 이는 <관상>에 비해 확실한 퇴보가 아닐 수 없다. 김병기는 <관상>의 한명회에 비해 심심하고, 구용식은 <관상>에서 팽헌(조정석)의 재탕일 뿐이고, 초선은 연홍(김혜수)보다 존재감이 훨씬 약하다. 


지성의 다양한 얼굴을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은 관전 포인트가 되겠지만, 그가 연기한 흥선도 <관상>의 수양(이정재)의 매력에 비할 바는 아니다. 역학 3부작의 마지막 편인 <명당>은 <관상>(9,135,806명)처럼 되길 바랐겠지만, 오히려 <궁합>(1,340,149명)에 조금 더 가까운 고만고만한 범작(凡作)이 돼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