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 연예

지적 대화의 향연 <알쓸신잡3>, 흥미로운 여행이 시작됐다

너의길을가라 2018. 9. 22. 13:34
반응형


여기 흥미로운 여행법이 있다. 비행기(또는 기차나 버스)를 타고 같이 출발해서 현지에 도착한 후부터 각자의 동선을 찾아가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함께 떠나서 각자의 여행을 하는 것'이다. 외로울 것 같다고? 사람마다 관심사가 다르고 취향이 다르므로 자신만의 일정을 꾸려보는 건 여행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 과정에서 겹치는 부분이 있다면 시간을 정해(서든 우연에 기대서든) 다시 만나면 될 일이다. 

다만, 저녁에 다 같이 모여 식사를 함께 한다. 한 자리에 둘러앉아 자신의 여행에 대해 이야기한다. 보고 들었던 것, 느꼈던 것에 대해 기탄없이 진솔한 대화를 나눈다. 궁금했던 것에 대해 묻고, 자신이 알고 있는 범위 내에서 대답을 한다. 이런 수다를 통해 여행은 더욱 풍부해진다. 여행뿐이랴, 서로의 관계도 더욱 풍성해진다. 이로써 각자의 여행이면서도 고립되어 있지 않게 된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tvN <알쓸신잡3>가 돌아왔다. 역시 유쾌했고, 여전히 유익했다. <알쓸신잡> 시리즈의 터줏대감, 나영석 PD의 표현대로라면 '캡틴 아메리카'인 유시민이 중심을 잡았고, 시즌1의 김영하 작가가 시청자들의 뜨거운 요청에 힘입어 돌아왔다. 다시 만난 콤비답게 두 사람은 여러 주제에 대해 막힘없는 수다를 쏟아냈다. 청산유수 두 명이 만났으니 대화가 끊어질 틈이 있겠는가.


이번에도 새로운 멤버가 있었다. <알쓸신잡> 시리즈의 첫 여성 멤버인 김진애 MIT 도시계획학 박사는 육아 때문에 새벽에 일어나는 게 습관이 됐다며 포문을 열었다. 공부가 너무 재밌다는 그는 새벽마다 열공 모드에 빠진다고 했다. 그리스에 도착하자 김진애는 아테네 건축에 대해 심도있는 정보를 전달했다. 또, 그리스 신화를 '여성'의 관점에서 풀이했고, 그리스의 국민배우인 멜리나 메르쿠리 기념관을 찾았다. 

양자역학 전문가인 물리학자 김상욱은 얼굴에 긴장한 티가 역력했다. 유시민과 김영하가 주도하는 수다 속에 완전히 녹아들지 못했지만, '과학'이라는 주제가 주어지자 수줍은 듯 보였던 그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돼 속사포처럼 이야기들을 쏟아냈다. '무한은 숫자가 아니라 과정이다', '확률로 알려주는 것이 가장 진리에 가까운 대답'이라는 김상욱의 수다는 시청자들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첫 번째 여행지로 아크로폴리스를 둘러봤던 잡학박사들은 그리스의 역사를 논하고, 그리스의 신들을 논하고, 그리스의 철학자(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등)를 논했다. 덕분에 시청자들은 가만히 앉아서 온갖 잡학을 접하고 배울 수 있었다. 책으로 읽어 공부하라고 했다면 손을 내저으며 기피했을 내용들이 어찌 그리 재미있게 다가오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역시 공부는 '수다'를 통해서 하는 것이던가. 


시즌1과 2에서 국내의 방방곳곳을 훑었다면 <알쓸신잡3>는 해외로 발걸음을 옮겼다. 다음번엔 오스만투르크에서 방송을 해보자던 유시민의 발언이 발단이었다. 프로그램이 방송되기 전에만 해도 솔직히 약간 우려가 됐다. 최근 걸핏하면 국외로 나가는 ‘해외 여행’ 콘셉트의 방송이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그에 대해 피로감이 조금씩 찾였던 게 사실이더. 또, 나영석 PD가 연출한 <꽃보다> 시리즈와의 유사성도 염려됐다.

그러나 그건 기우에 불과했다. <알쓸신잡3>는 '수다(대화)'에 초점이 맞춰진 유니크한 여행답게 전혀 다른 여행 프로그램으로서의 비전과 가치를 확인시켜 줬다. 단지 보고 즐기는 여행, 맛있는 음식을 먹고 만끽하는 여행도 의미가 있지만, 그 나라의 역사부터 문화까지 다양한 지식에 대한 심도있는 대화를 나누는 뇌가 행복한 여행은 더할나위 없는 쾌감을 줬다. 국내에서도 끊이지 않았던 수다는 그리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잡학박사들은 그리스 신화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그리스 사람들이 신을 대하는 관점이 우리가 '어벤저스'를 대하는 것과 비슷했을 것이라 설명했다. 그러면서 자신을 그리스 신화 속의 주인공들과 동치시켜 보기도 했다. 생각해 보면 유시민, 김영하, 김진애, 김상욱 이들이야말로 진짜 어벤저스가 아니던가. 수다의 히어로들이 펼칠 지적 대화의 향연이 기대된다. 그들이 들려준 여행, 그 희열이 담긴 이야기에 귀가 기울여진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