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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킴' 그리고 '너의길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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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 연예

끊임없이 '사건'을 만들어야 하는 관찰 예능, 시청자들은 지쳐 간다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2018. 8. 27. 08:31


일기를 매일마다 써본 사람들은 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특별한 날'이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을 말이다. 1년 365일이 그저 비슷비슷하다. 아침에 (겨우겨우) 일어나 밥을 챙겨 먹(는 건 고사하)고 출근하(거나 학교가)기에 바쁘다. 집에 돌아오면 지쳐 쓰러지고, TV를 보다가 잠이 든다. 주말에는 물어볼 것도 없이 무조건 '방콕'이다. 물론 가끔 색다른 일들이 벌어지긴 한다. 사실 일기는 그럴 때마다 쓰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일상(日常)'은 반복된다. 반복되기에 일상이다. 특별할 게 없다. 누군가의 삶을 '관찰 카메라'로 바라본다면 굉장히 지루할지도 모르겠다. '저들도 나와 다를 게 없구나'를 느끼는 게 고작이랄까? 연예인이라고 뭔가 다를까. 스케줄이 없는 날의 한가로움은 평범할 뿐이다. 결국 ‘관찰 예능’이 유지되려면 사건이 필요하다. 그러니까 끊임없이 흥미로운 사건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 관찰 예능의 숙명이란 이야기다. 



당연한 말이지만, 집 안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 초창기에는 그조차도 네임드가 있는 연예인이라면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연예인의 일상은 그 자체로 비연예인들에게 특별하니까. 하지만 이제 그런 그림은 식상해졌다. 그래서 관찰 카메라의 대상들은 자꾸만 밖으로 나간다. 없던 약속도 잡는 식이다. 아니면 지인을 초대한다. 억지로라도 화젯거리를 만들어야 한다.


관찰 카메라의 본래 의도는 ‘있는 그대로의 관찰’이었다. 피사체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들여다보면서 시청자들에게 새로운 재미를 선사하겠다는 발상이 그 출발이었다. 그런데 카메라 앞에서 100% 리얼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아무리 카메라에 익숙한 연예인이라 할지라도 마찬가지다. 더구나 이미지가 생명이라 할 수 있는 연예인이 무엇을 얼마나 투명하게 보여줄 수 있을까. 



SBS <미운 우리 새끼>는 시청률이 가장 잘 나오는 관찰 예능이다. 지난 방송에서 12.1%로 급락했지만, 여전히 탄탄한 시청층을 보유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의 첫 번째 해악은 나이가 쉰 살이 넘은 성인 남성을 ‘아들’이라는 틀 안에 넣어두고,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으므로 미숙하다는 시선을 견지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 해악은 억지스러운 상황 설정과 연출로 매회마다 스트레스를 유발한다는 점이다.


특히 김건모는 기상천외한 엽기적 행각을 이어가며 비난을 받았다. 다른 출연자들 역시 ‘철없는 아들’의 콘셉트를 강조하며 주 시청층인 어머니들의 모성을 자극하는 데 열중했다. 방송을 계속 출연하기 위해서(어쩌면 방송 출연을 반기는 어머니에게 효도를 하기 위해) 아들은 끊임없이 사고뭉치가 돼야 하는 아이러니라고 할까. 이런 관찰 예능의 폐해가 극단적으로 표출된 사건은 얼마 전에 발생했다. 


MBC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에 출연했던 김재욱-박세미 부부는 자신들을 향한 악의적인 반응에 분개하면서 “방송은 방송으로만 봐달라. 주제가 고부갈등"이라 토로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시어머니는 미용실 일이 바빠 1년에 한번도 찾아오지 않는다고 털어놓았다. 이는 관찰 예능에도 설정(을 넘어 대본)이 존재하며, 출연자들은 그에 맞춰 일종의 연기를 펼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있는 그대로의 자연스러운 고부 관계를 관찰하는 게 아니라 특정한 상황과 캐릭터를 부여한 채 이뤄지는 관찰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김재욱과 박세미는 “악마의 편집. 그게 바로 편집의 힘"이라고 일침을 가했는데,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 제작진이 그 어떤 해명도 내놓으지 않은 점을 미루어 보면 그럴 개연성은 충분해 보인다. 이는 관찰 예능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도대체 우리는 ‘무엇을’ 관찰하는 것일까? 


여전히 인기리에 방송되고 있는 MBC <나 혼자 산다>의 경우에도 과거 여러차례 과도한 설정 때문에 논란이 되기도 했다. 거침없고 솔직하다. 소탈하고 꾸밈없다. 진솔하고 진정성 있다. 그런 평가 앞에 ‘연예인 치고는’이 선행하고,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결국 이 모든 게 하나의 ‘쇼’라는 사실을 인식한다. 그나마 연예인이 대상이 될 때 뒤탈이 적고, 아예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할 경우 뒷말이 없다. 


여전히 관찰 예능은 그 위세를 떨치고 있지만, 시청자들과의 밀착성은 점차 떨어지고 있는 추세다. 대중들은 더 이상 ‘관찰’을 믿지 않는다. 그 진위를 의심한다. 이런 비우호적 관계가 서로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무엇보다 들여다보기에 급급한 지금의 관음증적 시선이 언제까지 유효할지도 의문이다. 여러모로 관찰 예능이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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