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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들의 연애를 관찰하는 부모, <한쌍>의 시대착오적 발상

너의길을가라 2018. 7. 21.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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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공개 구혼 프로그램인데, 갑자기 중년 여성이 모습을 드러낸다. 신선한 첫 장면이었다. '그래, 젊은 세대만 연애 예능을 하라는 법이 있나!' 싶었는데, 그 여성의 정체는 '공개 구혼에 나선 딸의 엄마'였다. "딸 엄마로서 내가 예뻐 보여야지 딸도 예뻐 보이지 않을까?" 그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힘을 주고 나타난 이유는 다름 아니라 '상견례'를 위해서였다. 


9명의 부모(엄마 8명, 아빠 1명)가 차례차례 상견례장으로 들어섰다. 안쪽은 아들 엄마(아빠)와 딸의 엄마로 자리가 나눠져 있다. 그들은 각자 자신의 이름표가 붙어있는 자리에 앉고, 간단한 소개를 하며 탐색전을 시작한다. 딸의 엄마들은 자신들은 한껏 꾸몄는데, 아들 엄마들이 편한 차림으로 온 걸 보고 서운함을 드러냈고, 아들의 엄마들은 남자 출연자가 5명으로 여자보다 1명 많다는 사실에 불안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요즘 젊은이들의 어떤 결혼이랄까? 이런 것도 한 번 심도 있게 들여다보는 계기가 될 것 같고.."

"이 프로그램이 끝나면 저희 아들이 한층 더 성숙해질 것 같은 기대감이 있어요."

"오면서 이왕 하는 거 좋은 인연 만나서 잘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자, 이제부터 본격적인 관문이 열렸다. 첫 번째는 '블라인드 데이트'다. 딸들이 먼저 한 명씩 등장한다. 아들 엄마들의 눈이 커지기 시작한다. "되게 날씬하다", "오, 예쁘다", "여리여리하다", "다소곳하네." 여기저기에서 칭찬이 터져 나온다. 자식 칭찬만큼 듣기 좋은 게 또 있을까. 딸 엄마들의 어깨가 으쓱하고 올라간다. 여자들이 커튼으로 가려진 자리에 모두 착석하자 남자들이 입장한다. 


규칙은 간단한다. 커튼으로 외모를 가린 채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한 사람과 나눌 수 있는 대화 시간은 10분이다. 이름, 나이, 직업, 출신, 학교(전공)를 언급해선 안 된다. 오로지 마음의 눈으로 서로를 탐색하라는 것이다. 출연자들은 조심스럽게 상대방을 알아나간다. 이렇게 시작된 <한쌍>의 프로젝트는 1달간 계속되며, 총 5번의 데이트 기회가 주어진다. 다시 말해 아홉 명의 부모는 한 달간 자식들의 연애를 지켜본다는 말이다. 



이렇듯 XtvN <한쌍>은 '반려자들을 찾고 싶은 미혼남녀'들과 '자식이 인연을 만드는 과정을 지켜보고 싶은 부모님'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공개구혼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다. 한창 붐을 일으키고 있는 연애 예능의 연장선에 놓여 있다. 흐름을 제대로 탄 것인지 상투를 잡은 것인지 두고 볼 일이만, 첫회 시청률은 2.215%(유료플랫폼 전국 가구 기준)로 기대 이상이었다. 


아무래도 '관찰자'로 부모님을 섭외한 것이 주효했던 걸까. 기존의 연애 예능에다 (아들의 일상을 낱낱이 관찰하는) SBS <미운우리새끼>의 관점을 접목시켰다고 할까. 자식들의 연애(와 구혼)를 들여다보겠다는 부모들의 욕망을 제대로 자극했다고 봐야 할 듯 싶다. 자녀들 간의 데이트를 지켜보며 '말을 잘 한다', '수줍어 하는 것 좀 봐', '쟤가 저런 면이 있었어?'라며 수다를 떠는 부모들의 모습이 <한쌍>의 핵심 포인트다.


하지만 <한쌍>의 기획의도는 매우 시대착오적이다. 도대체 왜 '함께' 만들어가야 하는지 알 수 없고, 더군다나 '함께' 만들어 간다는 의미도 불확실하다. 부모가 자식들의 연애에 개입한다는 것 자체도 21세기에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지 않은가. 게다가 자신의 가장 사적인 모습들을 '부모'에게 공개하겠다는 출연자들의 태도조차 더욱 미심쩍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 <한쌍> 첫회를 보면서 느낀 감정은 '갑갑함'이었다. 어디까지 들여다보겠다는 걸까. 얼마나 더 간섭하고 개입하겠다는 걸까. TV 프로그램들은 얼마나 더 그러한 욕망에 부채질을 할 것인가. 최소한 성인이라면 자신의 삶을 독립적으로 운영할 줄 알아야 한다. 부모 역시 자녀들의 사적 영역을 존중해줘야 한다. 하물며 가장 개인적인 영역인 연애는 말할 것도 없다. 


문득 이시다 이라가 썼던 한 문장이 떠올랐다. "모든 것이 구속인 이 세상에서 연애나 섹스만이 개인에게 주어진 몇 안 되는 자유다. 누구도 강제하지 않고, 누구에게도 결과를 보고할 필요가 없다."1) 그런데 <한쌍>은 그 몇 안 되는 자유마저도 허물어뜨리려 하고 있는 건 아닐까. 백 번 양보해서 세대 간의 벽을 허물고, 이해의 폭을 넓히려고 했다고 치더라도 번짓수를 잘못 찾아도 한참 잘못 찾았다. 


1) 이시다 이라, 『1파운드의 슬픔』 , 「슬로 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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