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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왜곡 논란에 휩싸인 <미스터 션샤인>, 김은숙을 위한 변론

너의길을가라 2018. 7. 19.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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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숙은 역시 김은숙인가보다. 이쯤되면 '갓은숙'이라 불러야 할까. 이번에도 일을 냈다. 그것도 제대로 쳤다. 시대극이라는 벽조차도 그에겐 그리 높지 않았던 모양이다. tvN <미스터 션샤인>은 3회만에 시청률 10%(닐슨코리아 유료플랫폼 전국 가구 기준)를 넘어섰다. 지상파 드라마도 한 자릿수 시청률에 그치고 있는 상황에서 거둔 쾌거다. 첫회 8.852%였던 시청률은 4회까지 계속 상승하며 10.567%까지 올랐다. 


흐름 자체는 전작인 tvN <도깨비>와 엇비슷하다. 반면, 다른 부분도 있다. <도깨비>(와 그 이전의 작품들)의 경우에는 '재미의 유무', '유치함의 정도'를 두고 의견이 분분했다면, <미스터 션샤인>은 그 양상이 논란에 가깝다. 우선, 주연 배우인 이병헌과 관련한 여러가지 불만들이 제기됐었다. 그의 성추문 전력이라든지 과도한 출연료가 비판의 대상이었다. 이병헌과 김태리의 나이 차이에 대한 논란도 빼놓을 수 없다.


배우들에 대한 논란은 드라마가 진행되면서 오히려 사그라들고 있는 추세다. '연기로는 깔 수 없다'는 이병헌의 역량은 가히 독보적이었다. 그의 연기는 단단했고, 무게감이 있었다. 캐릭터에 대한 이해도뿐만 아니라 캐릭터를 표현하는 기술도 탁월했다. 오히려 문제가 터진 건 '음향'이었다. 배우들, 특히 이병헌의 대사를 알아들을 수 없어 '자막이 필요하다'는 시청자들의 원성이 자자했다.  



사실 <미스터 션샤인>의 입장에서 가장 곤혹스러운 논란은 다른 데 있다. 바로 '역사 왜곡'이다. 역사를 다루는 시대극인만큼 고증과 역사 해석에 대한 논쟁은 별난 일이 아니다. 하물며 근대사라는 격동의 시기, 우리 민족이 열강(列强)에게 한없이 당하기만 했던 그 참담했던 시대를 다루는 만큼 시청자들의 눈이 날카로워지는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일각에서는 <미스터 션샤인>이 역사를 왜곡했다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그 불길이 예사롭지 않다. 지난 16일, 청와대 국민 청원 홈페이지에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과 같은 역사왜곡 드라마/영화에 대해 강력히 조치해주십시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을 정도다. 이 글에 청원인원은 19일 현재 18,327명에 달할 정도다. 도대체 <미스터 션샤인>의 어떤 부분이 역사 왜곡이라는 걸까. 



발단은 구동매(유연석)라는 캐릭터였다. 구동매는 백정의 아들이다. 신분제 사회였던 조선에서 백정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저 개돼지와 같았다. 그의 어머니(임세미)는 겁탈을 당했지만, 보호받을 수조차 없었다. 지옥 같은 삶을 살아야 했던 동매는 일본으로 건너가 겐요샤의 하부조직인 흑룡회 한성지부장이 됐다. 그리고 조선으로 돌아와 자신을 인간 취급하지 않았던 이들에 대한 사적 복수에 매진한다.


이러한 설정 자체는 무리가 없어 보인다. 개돼지 취급을 받았던 이들에게 애국/매국을 논하는 건 되려 잔인한 일이 아닌가. 문제는 겐요샤가 실제했던 조직이며, 더군다나 명성황후를 시해했던 단체였다는 데 있다. <미스터 션샤인> 제작진은 사과문과 함께 겐요샤를 무신회로 수정했다. 드라마 준비 과정이 길었던 만큼 좀더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면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던 논란이었다. 


오히려 문제가 되는 건 이완익(김의성)이다. 그는 조선을 송두리째 일본에 팔아 넘긴다. 이 장면은 자칫 잘못하면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다. 마치 일본은 가만히 있는데, 알아서 나라를 갖다 바친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본의 악랄한 침략이 우선이고, 친일파의 행각은 그 이후라는 점이 강조되지 않았다는 비판도 충분히 일리가 있다. 더군다나 <미스터 션샤인>은 전세계로 송출되는 드라마가 아닌가?



이러한 우려가 납득되면서도 한편으로는 과도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김은숙의 목표는 ‘친일 미화’라기보다는 ‘근대라는 격변기에 태동했던 개인(간의 사랑)의 탐구‘에 가깝다. 또, 김은숙의 타깃은 외부의 침입에도 자신의 부와 권세를 지키기에 안달했던 무책임했던 기득권층(1, 2회에서 중점적으로 다뤄졌다)과 조선을 팔아치우고 의병들을 살해하는 데 혈안이 됐던 이완익이 분명하다. 


그 타깃들을 당대를 견뎌내야만 했던 민중들의 삶과 대비시켜 보여줌으로써 작금의 시대를 되새겨보고자 하는 의도가 곳곳에서 포착된다. 구동매와 유진 초이(이병헌)은 그 대표적인 예다. 모르긴 몰라도 앞으로의 <미스터 션샤인>은 이 비운의 인물들을 통해 기득권층과 부역자들에 대한 적극적인 응징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비록 그 칼의 이름이 ‘애국’으로 일원화되진 않겠지만 말이다. 


민족주의 사학의 입장에서 근대사는 간단히 정리가 된다. 일제강점기 피해자는 조선이고, 일본은 전쟁 가해국이라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역사적 사실이다. 다만, 그 외의 논의는 불필요하다든지, 구동매와 유진 초이와 같은 인물들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고민해보는 건 역사 왜곡에 불과하다는 관점은 지나치게 딱딱하다. 피아의 구분, 그 과도한 감정이입만으로 역사의 진실을 들여다 볼 순 없다.



물론 당시의 조선이 미개하고, 자생할 수 있는 힘이 없는 무능력한 나라였다는 시각 역시 극단적이긴 마찬가지다. 우리가 취하고자 하는 역사 인식이 위의 협소한 두 가지만 있는 건 아니다. 역사적 사건과 역사적 인물에 대한 명백한 왜곡이라면 모르겠지만(따라서 <미스터 션샤인>에 제기된 고증 문제는 깐깐히 따져봐야 한다), 해석의 차이까지 왜곡이라 못박는 건 역사의 독점에 지나지 않는다. 

다양한 해석이 존재할 때, 역사는 더 풍부해지고 빛나는 법이다. 김은숙이 교과서를 쓰고 있는 게 아니지 않은가. 민족주의 사학의 입장은 고애신을 비롯한 의병들을 통해 충분히 전달하고 있으니 그 정도면 충분하리라. 김은숙은 기존의 영웅사관과 달리 민초들의 이야기를 전달한다. 이를 통해 당시 조선의 현실과 한반도의 위태로운 상황을 강조한다. 그 핵심적인 열쇠는 역시 '개인의 자각'일 것이다.

근대를 통해 우리는 '개인'을 깨달았다. 사람들이 '이름'을 얻었다. 구동매처럼 말이다. 제법 오래된 이야기다. 이미 우리는 현대라는 시간을 살아가고 있지만, 여전히 '개인'으로서 우리가 서 있는 위치는 취약하기만 하다. 결국 '사람이 먼저'가 아니던가. 우리가 그런 구호를 외치는 대통령을 청와대로 보내놓고서, 여전히 '국가가 먼저'라고 외치는 구시대를 살고 있는 건 아닌지 고민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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