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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함무라비>의 무엇이 우리를 이토록 뜨겁게 하는가?

너의길을가라 2018. 6. 5.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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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존경하는 여성 대법관님이 계십니다. 언제나 약자의 편에 서시던 분이었습니다. 그분은 퇴임하실 때 히말라야를 혼자 오른 어느 등산가의 이야기를 인용했습니다. 그는 자신과 싸워서 이긴 만큼만 나아갈 수 있었고, 이길 수 없을 때 울면서 철수했다. 우리는 웃으면서 철수할 수 있습니다. 이미 이렇게 많은 분들이 첫발을 내디뎠으니까요."


성공충(차순배) 부장판사의 무리한 업무 지시로 인해 유산까지 하게 된 홍은지(차수연) 판사를 위한 전체판사회의가 소집됐다. 젊은 판사 박차오름(고아라)과 임바른(김면수)은 법원 내의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부단히 현실과 부딪쳤다. 그들의 패기 있는 도전은 무모해 보였지만, 결국 동료 판사들의 공감을 이끌어 냈다. 과반수 이상의 출석이라는 요건이 충족되지 않아 회의는 열리지 않았지만, 그들의 첫발은 위대한 출발이었다.


'정의'를 위해 시작한 일이었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모으기가 쉽지 않았다. 대의에 공감하면서도 섣불리 동조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각자 자신만의 이유가 있었고, 그들만의 사정이 발목을 잡았다. 법원을 나서던 박차오름은 "저 불빛 하나하나마다 다 생각이 다르네요. 높으신 분들의 생각이나 입장은 비슷비슷한데, 젊은 판사들의 뜻을 모으는 건 다양한 이유로 참 쉽지가 않네요."라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 말을 듣고 있던 임바른은 레프 톨스토이가 쓴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 같다며,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고 읊조린다. 과거 누구보다 열렬히 부조리한 법원 내 현실에 맞서 싸웠던 부장판사는 그 누구보다 몸을 사리는 기득권이 됐다. 과도한 업무량에 시달리는 판사들은 동료을 걱정할 여력이 없고, 앞날이 창창한 젊은 판사들은 윗사람들의 눈치를 보기에 급급하다.


"그래서 세상은 변하지 않는 건가봐요. 힘든 사람들끼리 서로 손을 잡기가 어려워서." 박차오름의 한마디가 참으로 아프다. 사회 곳곳에서 '연대'를 부르지는 목소리가 들려오지만, 그 자리에 멈춰서서 서로의 손을 맞잡기는 왜 이토록 어려운가. 모두가 힘을 합친다면 무엇인들 바꾸지 못하겠는가. 그런데 우리는 왜 매일같이 제자리걸음일까. 힘든 사람들끼리 서로 손을 잡기 어려운 현실. 수렁에 빠진 우리들이 가엽기만 하다.


그럼에도 임바른의 "어쩌면 사실은 같은 이유로 힘들어하면서도 그걸 모르는 걸지도 모르죠."라는 말이 위로가 된다. 언뜻 보기에 불행한 이유가 제각기 달라 보이지만, 근원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그 이유라는 게 같은 것은 아닐까. 우리 스스로를 각개전투에 나서게 만들었던 건, 오히려 우리들의 편협한 생각들은 아니었을까. 무한한 가능성을 막아섰던 건 결국 우리가 만들어냈던 두려움은 아니었을까.



"마음의 여유 한 점 없이 사건 구조에 쫓기는 이런 구조가 너무 싫습니다. 경쟁에 이기기 위한 욕망이나 낙오에 대한 공포가 아니라 누군가를 돕는다는 보람으로 일했으면 좋겠습니다. 또, 사건을 떼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들여다 봤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배려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비록 전체판사회의는 열리지 못했지만, 박차오름과 임바른의 도전은 그 자체로 의미 있었다. 박차오름의 가슴 따뜻한 연설은 부장 판사들을 비롯한 수많은 동료들의 박수를 이끌어 냈다. 서로 간에 쌓여있던 불신과 오해가 조금은 누그러지는 순간이었다. 또, 보수적인 분위기로 가득한 법원이라는 철옹성에 균열을 냈다. 그 자그마한 틈새는 앞으로 벌어질 수많은 변화들의 전조가 될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JTBC <미스 함무라비>를 두고 '신파'라고 말하지만, 때로는 신파가 주는 울림이 반가울 때가 있는 법이다. 또, 지나치게 '판타지'스럽다고 말하지만, 이는 법원이라는 조직의 변화를 바라는 의지의 반영으로 받아들이면 될 일이다. 법원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바닥을 치고 있는 상황에서 <미스 함무라비>에 대한 시청자들의 관심이 뜨겁다는 건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언제나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서서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판사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힘이 되지 않는가. 법원이라는 공간에 갇혀 있는 판사가 아니라, 딱딱한 서류와 과거의 판례에만 의존하는 판사가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을 배려할 수 있는 판사가 우리 곁에 있다면 얼마나 마음이 든든한가. 그래서 박차오름과 임바른이라는 '계란'들의 도전을 더 응원하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한편, 판사회의가 열리지 못했던 <미스 함무라비>와는 달리 지난 4일 서울중앙지법을 비롯한 7개 법원에서 판사회의가 열렸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재임하던 시절 법원행정처가 박근혜 정부 청와대와 재판을 미끼 삼아 거래를 하고, 판사들의 성향과 동향을 뒷조사한 것에 대한 분노 때문이었다. 혹은 수치심이라고 할까. 헌법에 규정된 재판의 독립과 법관의 독립(103조)을 침해한 만행에 판사들이 들고 있어선 것이다.


<미스 함무라비>를 두고 신파니 판타지니 말을 하지만, 오히려 현실은 그보다 훨씬 더 감동적이고 다이내믹할 때가 많다. 분명 '정의'라는 이름은 살아있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 가치를 향해 손을 뻗을 준비를 하고 있다. 우리 스스로를 너무 과소평가하지 말자. 설령 당장 패배하더라도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말자. 박차오름의 말처럼 웃으면서 철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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