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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저씨>가 괜찮다는 사람들에게

너의길을가라 2018. 4. 13.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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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J E&M

"'사랑'이 아닌 '사람'을 느껴 결정했다."


지난 11일 tvN <아저씨>의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극중에서 이지안 역을 맡고 있는 아이유는 "저로 인해 굳이 떠안지 않아도 될 논란을 안게 될까 걱정했"다며 드라마를 둘러싼 논란들에 대해 입을 열었다. 언젠가 김원석 PD에게 이와 같은 걱정을 꺼내놓았는데 "괜찮다"고 대답해줬다면서 "저도 글을 읽으면서 떳떳하지 않았다면 거절했을 것"이라 밝혔다. 사랑이 아니라 사람이 느껴졌다는 것이다. 


주지의 사실이지만, <나의 아저씨>는 방영 전부터 뜨거운 논란의 주인공이었다. 극중 남녀 주인공의 나이 차이가 24살(실제로는 18살)이나 됐는데, 40대 아저씨와 20대 초반 여성의 로맨스에 대해 비판이 제기됐던 것이다. 제작진은 이러한 지적에 대해 전면 부인했다.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 이야기다.', '좀더 지켜봐 달라.' 그러면서 인물 관계도에서 남녀 주인공 사이를 연결했던 애정선을 지우기까지 했다.


로맨스를 지우는 데는 성공했지만, 다른 데서 말썽이 터졌다. 1회에서 사채업자 이광일(장기용)이 이지안(아이유/이지은)을 무차별적으로 폭행하는 장면이 약 2분 가량 노골적으로 묘사됐기 때문이다. "너 나 좋아하지?" 얼굴과 복부를 맞으면서 이지안이 내뱉었던 대사는 충격적이었다. 이는 '좋아해서 때린다'는 데이트 폭력 가해자의 논리를 고스란히 수용한 것이 아닌가. 



제작진은 논란이 벌어질 때마다 '기다려 달라'고 부탁했다. 캐릭터와 캐릭터 간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한 과정이라고 해명했다. <나의 아저씨>는 영리하게 이야기를 잘 풀어냈다. 박동훈과 이지안은 동지적 관계를 형성해 나가고 있고, 서로를 향해 '사랑'이 아닌 '연민'을 품게 됐다. 이광일의 폭행은 지안이 광일의 아버지를 살해한 데 따른 분노인 것으로 정리가 되고 있다. 그럼에도 지안을 향한 광일의 감정은 애정으로 보인다. 


드라마가 진행되면서 <나의 아저씨>에 대한 옹호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엔터미디어>의 정덕현 칼럼리스트는 여러 차례 <나의 아저씨>에 대한 글을 썼는데, 중년과 청년의 살벌한 생존 스릴러로 해석하며 이들의 연대에 무게를 뒀다. 물론 글의 어조는 찬사에 가깝다. 한편, <마이데일리>의 신소원 기자는 '<나의 아저씨>가 불편하다는 사람들에게’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기사를 쓰기도 했다. 


드라마의 만듦새와 짜임새를 딴지 걸 생각은 없다. tvN <미생>과 <시그널>을 연출한 김원석 PD와 tvN <또 오해영>을 집필한 박해영 작가의 역량을 어찌 의심하겠는가. 또, 그들이 여러 논란들을 영리하게 잘 비껴나갈 거라는 것도 의심치 않는다. 한걸음 더 나아가 그들의 '선의'도 알 것 같다. 성별을 떠나서, 나이를 떠나서 온전히 사람 대 사람의 관계, 거기에서 오는 위로를 전달하고 싶다는 마음을 안다. 



문제는 그것이 굉장히 그로테스크한 판타지라는 데 있다. 아저씨, 그러니까 중년 남성들의 입장에서 그들의 (과도한) 자기 연민을 그려내고 있는 <나의 아저씨>가 시청자들에게 주입시키고 있는 명제가 무엇일까. 바로 '아저씨들은 위험하지 않다.'는 것이다. 드라마는 끊임없이 주입시킨다. 당신의 주변을 서성이는 수많은 아저씨들은 선량하다. 해치지 않는다. 그리고 언제든지 너를 도와줄 준비가 돼 있다. 


그들을 미워하지 마라. 욕하지 마라. 돌 던지지 마라.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느라 청춘을 다 날려버린 안쓰러운 사람들이니까. 변변한 특기 하나 가질 삶의 여유도 누리지 못한 채 술만 퍼마시는 불쌍한 중생들이다. 다가가도 물지 않는다. 해치지 않는다. 왜 선인겹을 갖고 아저씨들을 대하는가. 사람 대 사람의 관계를 맺으면 되지 않느냐. <나의 아저씨>의 '아저씨를 위한 찬가'가 참으로 눈물겹지 않은가. 


극중의 아저씨들에 감정이입이 된 어떤 이들은 드라마가 현실적이라고까지 말한다. 상처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뉴스를 보자. 아니, 우리 주변에 있는 아저씨들을 떠올려보자.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끈적끈적한 눈빛으로 여성들의 몸매를 훑어대고, 추잡한 성적 농담들로 하루 일과를 채우고, 회사에선 여직원을 상대로 성희롱이나 하고, 남직원들에겐 지적질과 꼰대질을 아끼지 않는 것이 아저씨 아닌가. 



"저에겐 단순한 문화취향이었던 것이 어떤 분들께는 당장 눈 앞에 놓인 현실 속 두려움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그동안 의식하지 못했을 뿐 저도 젠더권력을 가진 기득권은 아니었는지, 그래서 조금 더 편한 시각으로만 세상을 볼 수 있었던 건 아니었는지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미투 운동에 의해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도 대중들의 신망을 받거나 사랑받던 아저씨들이었다. 작가 겸 방송인 유병재는 자신의 SNS에 <나의 아저씨>에 대한 감상평을 올렸다가 팬들과 설전을 벌인 후 공식 사과를 했다. 모르긴 몰라도 다른 연예인이었다면 논란이 이렇게 크진 않았으리라. 평소 높은 젠더 감수성을 보여줬던 유병재였기에 실망감을 표현하는 팬들이 많았다. 유병재의 빠른, 적절한 사과가 반갑다.


<나의 아저씨>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드라마를 보고서 하는 비판이나고?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드라마를 '제대로' 봤다면 불편한 게 당연하다고. 만약 <나의 아저씨>가 불편하지 않다면 당신은 젠더권력을 가진 자이거나 그 수혜 속에 살아가는 사람일 것이다. 아니면 너무도 익숙해져 그 폐해를 깨닫지 못하고 있거나. 우리는 불편함을 느껴야 한다. 더 많은 불편함을 느껴야 하고, 오히려 불편함을 느끼는 자신에 익숙해져야 한다. 


현실? 대한민국의 여성들은 여전히 끔찍한 공포 속에 살아가고 있다.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가정 폭력과 데이트 폭력의 피해자인 채 말이다. 여성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묻지마 살인'의 과녁이고, 가부장제의 억압과 성차별에 고스란히 노출돼 있다. 그런 여성들에게 아저씨에 대해 연민을 가지라고 강요하지 말자. 참으로 잔인하고 무례한 짓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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