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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태현 선택한 <라디오 스타>, 신의 한 수일까, 장고 끝 악수일까?

너의길을가라 2018. 1. 5.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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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찬아, 태은아, 수진아! 수요일에도 항상 놀아줬는데 집에 없으니까 이상하지? 나도 왜 여기 와 있는지 모르겠어. 나도 모르겠다. 왜 자꾸 여기 와있는지."


MBC <라디오 스타>(이하 <라스>)의 선택은 돌고 돌아 배우 차태현이었다. 막내인 규현의 군 입대로 인한 공백이 무려 8개월이나 이어졌다. <라스>는 차태현을 비롯해 은지원 · 딘딘 · 손동운 · 성규 · 유병재 · 정준영 · 존박 · 양세찬 등을 섭외해 빈자리를 채워왔다. 그렇게 거쳐간 스페셜 MC의 수만 해도 19명이다. 다들 준수한 활약을 했지만, 낙점을 받기까진 조금씩 부족했다. 기존의 멤버였던 규현이 기존의 3MC(김국진 · 윤종신 · 김구라)와 워낙 끈끈한 호흡을 보여줬기 때문에 후임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진 탓이다.


일단 차태현의 합류에 대한 시청자들의 반응은 긍정적이다. 차태현은 지난 8개월 동안 3차례나 스페셜 MC 자격으로 <라스>를 찾았던 만큼 이질감이 없었다. 시청자들로서는 받아들이기 훨씬 수월했을 것이다. 게다가 차태현은 '청정 연예인'으로 불릴 만큼 안티가 없는 몇 안 되는 스타가 아닌가. 또, 그는 KBS2 <1박 2일>에서 맹활약하고 있을 만큼 예능 감각도 갖추고 있다. 2012년 3월 시즌2부터 합류해 지금까지 활동 중이니 그의 예능 생활도 상당한 역사를 자랑한다. 그도 어엿한 예능 전문가다.



<라스>의 차태현 낙점은 언뜻 보기에 '변화'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기존에 차태현이 앉았던 MC석은 슈퍼주니어 신동, 방송인 신정환, 슈퍼주니어 김희철 · 규현이 거쳐갔던 자리이다. 스페셜 MC들도 코미디언, 가수, 방송인으로 구성 됐었다. 직업이 '배우'인 MC는 이번이 처음이다. 또, 기존의 막내와는 전혀 다른 캐릭터가 들어왔다는 점에서 변화가 불가피하다. 4MC의 캐릭터 쇼가 <라스>의 정체성이었고, 그들이 티격태격하는 모습이 가장 큰 웃음 포인트였던 구도에도 변동이 예고된다. 


실제로 차태현 효과는 곧바로 나타났다. 지난 3일 방송은 '나 오늘 집에 안 갈래' 특집으로 이윤지, 정시아, 김지우, 정주리가 출연했다. 차태현은 '워킹맘'들의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자신의 육아 경험담을 쏟아냈다. 게스트의 입장에서 보면 한결 편하게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차태현의 힘이라 할 수 있다. <1박 2일>에서도 그렇듯 차태현은 결코 돋보이려 하지 않는다. 주변 사람들을 빛나게 하는 조연 역할을 자처한다. 더 많이 웃고, 더 큰 리액션을 통해서 말이다. 



그랬다. 분명 '편안한' 토크쇼였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고개가 갸우뚱해졌다. '<라스>의 맛은 이게 아닌데..' 차태현의 순한 분위기는 기존의 톡 쏘는 맛의 <라디오 스타>를 사랑했던 팬들에겐 아쉬울 수밖에 없다. 규현을 떠올려보자. 초반에는 적응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끝내 각성한 후에는 '독기'가 가득한 질문들을 투하하며 천하의 김구라조차도 놀라게 했다. 어느덧 '거물'로 성장한 윤종신과 김구라가 하지 못하는(하지만 시청자들이 궁금해하는) 질문들을 거침없이 하기도 했다. 


또, 상대적으로 젊은 나이에 슈퍼주니어에 몸 담고 있기 때문에 아이돌과도 스스럼 없이 어우러졌다. 규현은 <라스>에 젊은 색채를 덧입히는 역할을 완벽히 수행했다. 여유가 생긴 뒤부터는 재치 있는 입담과 특유의 치고 빠지는 화법으로 재미를 더했다. 그러면서도 깐죽과 독설도 빼놓지 않았다. 오죽 했으면 스스로 "어디 가니까 김규라라고 하더라"라고 푸념했겠는가. 그가 괜히 '독한 아이돌'이라는 별명을 얻은 게 아니다. 때론 김구라와 각을 세우고, 그의 턱을 잡으며 캐릭터 쇼의 일부분을 담당했었다. 


차태현이 이런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그럴 일은 없을 듯 하다. 애초에 성격이 유한 그가 참새처럼 쪼아댈 리가 만무하고, 그러기엔 차태현은 이미 너무 '거물'이다. 무엇보다 제작진도 그런 롤을 요구하지 않고 있다. 한영롱 PD는 깨달음을 얻은 듯 "그동안 우리가 프레임을 씌우고 있었다. 새 MC 자리를 두고 '규현이와 비슷한 사람을 찾아야 한다'라고 생각했다. 그 프레임에 갇혀서 넓게 보지 못했다. 그런데 차태현 씨와 녹화를 진행하고 굉장히 놀랐다"(<OSEN>, [직격인터뷰] '라스' PD "MC 차태현 덕분에 톱스타 섭외 수월해졌다")고 말했다.



언뜻 보기엔 '변화'처럼 보이지만, 결과적으로 <라스>가 선택한 건 '안정'으로 보인다. 차태현은 변수가 없는, 상수에 가까운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덩달아 B급 재미를 추구했던 <라스>의 성격에도 일정한 변화가 따를 것으로 보인다. 한 PD는 '공감 능력 부족으로 게스트들이 힘들어했다'면서 향후 <라스>의 방향이 공감 능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 언급하기도 했다. 그리고 '차태현 덕분에' 톱스타 섭외가 가능할 거라며 반가움을 표현하기도 했다. 어쩌면 그것이 진짜 속내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한 PD는 알고 있을까. <라스>가 <무릎팍 도사>에 가려져 있던 시절에도 꿋꿋이 살아남아 지금의 인기를 누리게 되고, 유일무이한 토크쇼로 자리잡게 된 이유가 B급 유머로 무장한 MC들의 캐릭터 쇼 덕분이란 사실 말이다. 또, 여타 평범한 토크쇼와 달리 '톱스타 의존중'에서 벗어나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B급 스타들을 발굴해 색다른 웃음을 줬기 때문이란 걸 말이다. 따라서 차태현 섭외는 배가 부를 대로 부른 <라스>의 '도전 없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차태현이 아깝고, 그가 앉은 자리가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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