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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로 집착증' 버려 더욱 빛났던 2017년 최고의 드라마 5편

너의길을가라 2017. 12. 21.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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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에도 대한민국 드라마의 주류는 '멜로'였다. KBS2 <쌈, 마이웨이>는 고단한 청춘들의 사랑과 유쾌한 도전기를 그려냈고, KBS2 <당신이 잠든 사이에>는 청춘 남녀의 사랑을 '예지몽'이라는 신선한 소재를 통해 극적으로 그려내 뜨거운 호응을 받았다. SBS <연애의 온도>는 처음의 뜨거웠던 온도가 비록 싸늘히 식어버렸지만, 애초부터 로맨스라는 확실한 노선을 밀고 나갔던 드라마였다. tvN <이번 생은 처음이라>는 결혼과 사랑에 대한 색다른 시각을 보여주면서 문학적 감수성을 더해 웰메이드 드라마로 이름을 올렸다. 


사랑은 가장 보편적인 감정이면서 가장 다양한 감정이기에 드라마의 소재로 (계속, 영원히) 쓰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것이 단지 드라마 속의 세계라 할지라도) 사랑이 넘쳐난다는데 나쁠 건 없지만, 천편일률적인 사랑 타령만 듣고 있자면 지겨울 수밖에 없다. 지상파는 그 과도함이 지나쳐 모든 장르에 로맨스를 끼워넣었다. 병원(선)에서도 어김없이 사랑에 빠지고(MBC <병원선>), 법정에서도 연애의 싹을 꽃피울 뿐 아니라(SBS <이판사판>), 심지어 경찰과 기자가 눈이 맞는다(MBC <투깝스>). 아, 이야기의 빈곤함이여!

  

보수적인 지상파가 멜로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반면, tvN과 JTBC은 이러한 조류에서 벗어나 뚝심있는 드라마를 여러 편 제작했다. 스타 마케팅에서 벗어나 참신한 소재와 다채로운 장르를 내세워 시청자들의 신뢰를 쌓아나갔다. 드라마의 주류가 지상파에서 케이블과 종편으로 넘어가는 흐름의 중심에는 기승전멜로에 집착하고 있는 지상파의 나태함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2017년 드라마를 결산하면서 멜로에서 벗어난 드라마들을 이야기하는 게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1. KBS2 <김과장>

방영 기간 : 1월 25일 ~ 3월 30일

최고 시청률 : 18.4%


"대한민국에서 지가 지 입으로 잘못했다는 경영자는 단 한 사람도 없어. 잘되면 다 지 경영 전략 탓, 못되면 다 직원 탓." (김성룡)


지상파에서, 그것도 KBS에서 <김과장> 같은 드라마가 방영됐다는 건 놀라운 일이었다. <김과장>은 평범한 오피스 드라마가 아니었다. 분식회계, 노조탄압, 페이퍼 컴퍼니 등 기업 내에서 벌어질 수 있는 불법 행위들을 따끔하게 꼬집었던 고발극이었다. 그러면서도 김성룡(남궁민)이라는 인물을 내세워 유쾌함을 잃지 않았던 통쾌한 사회 풍자극의 진수를 보여줬다. 억지스러운 전개도 없었고, 어설픈 멜로 라인을 들이밀지도 않았다. 연기대상과 커플상(남궁민과 준호)은 따놓은 당상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만큼 센세이션한 반응을 불러 일으켰다. 상반기 최고의 드라마였다.



2. tvN <비밀의 숲>

방영 기간 : 6월 10일 ~ 7월 30일

최고 시청률 : 6.568%


"썩은 데는 도려낼 수 있죠. 그렇지만 아무리 도려내도 그 자리가 또 다시 썩어가는 걸 저는 8년을 매일같이 목도해 왔습니다. 대한민국 어디에도 왼손에 쥔 칼로 제 오른팔을 자를 집단은 없으니까요. 기대하던 사람들만 다치죠." (황시목)


2017년 최고의 드라마를 한 편 꼽으라면 주저없이 <비밀의 숲>이다. 뉴욕타임즈는 "많은 한국 드라마의 통상적인 부자연스러움과는 다른 큰 이점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하며 <비밀의 숲>을 '국제 TV드라마 TOP 10'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이수연 작가의 필력은 단연 돋보였고,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정의로운 검사 황시목을 연기한 조승우는 최고의 연기를 선보였다. 살인사건의 진범을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부패한 세력, 이른바 적폐를 청산하는 이야기는 시청자들을 열광하게 했다. 한국 드라마는 <비밀의 숲> 전과 후로 나뉜다는 말은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3. JTBC <품위있는 그녀>

방영 기간 : 6월 16일 ~ 8월 19일

최고 시청률 : 12.065%


"절대 채워지지 않는 그것. 만족할 줄 모르는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고. 민낯을 드러낸 욕망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코 멈추지 않는다. 가지지 못한 걸 가져야 하는 인간의 욕망. 우리 모두의 불행은 거기서 출발했다." (박복자)


2017년 최고의 문제작을 꼽으라면 <품위있는 그녀>가 아닐까. '막장'을 닮았지만, '품위'를 잃지 않았던 '명작'이었다. 미모와 지성, 덕성, 센스 등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는 상류층 우아진(김희선)과 하류 인생을 전전했던 잡초 같은 박복자(김선아)의 대비가 돋보였다. <품위있는 그녀>는 '품위'라고 하는 기준점을 통해 천민자본주의에 빠진 대한민국 상류층의 민낯을 가감없이 드러냈다. 2.044%로 시작했던 시청률은 12.065%까지 치솟으며 화끈한 인기몰이를 했다. 그 중심에는 역시 김희선과 김선아의 불꽃 튀는 연기 대결이 있었다.



4. tvN <아르곤>

방영기간 : 9월 4일 ~ 9월 26일

최고시청률 : 3.068%


"<아르곤>은 일부러 로맨스를 넣고 그런게 아니라 과한 부분이 없어서 좋았어요. 만약 과하다 싶은 부분이 있으면 감독님과 이야기를 하면서 잘랐어요. 우리 드라마는 PPL도 없어서 좋았지. 그런데 시청률을 떠나서 난 이 드라마로 제일 좋았던 건 '좋은 드라마를 보여줘 기분이 좋았다'라는 문자를 많이 받았어요. 그게 가장 뿌듯했어요." (<마이데일리>, "마음에 들어" 故 김주혁, '아르곤'의 수장 김백진)


<아르곤>은 시청률 면에서는 아쉬움이 남았지만, 그 임팩트와 여운이 생각보다 훨씬 컸던 드라마였다. 또, 지난 10월 30일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김주혁이라는 배우의 진가를 확인할 수 있었던 드라마이기도 했다. 신뢰가 바닥까지 떨어진 언론에 대한 실망과 진정한 언론(인)에 대한 기대가 공존하고 있는 시대에 탐사보도 팀 '아르곤'의 수장 김백진(김주혁)은 언론(인)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분명히 보여준 교과서와 같은 존재였다. 김주혁은 김백진 역을 맡아 냉철하면서도 뜨거운 연기를 보여주며 큰 울림을 줬다. 



5. tvN <부암동 복수자들>

방영 기간 : 10월 11일 ~ 11월 16일

최고 시청률 : 6.330%


"같이 힘을 합쳐서 각자의 원수들에게 복수해 주는 거예요. 복수 품앗이라고 하면 이해가 빠르겠네요. 부암동 복수자 소셜클럽, 어때요?" (김정혜)


괄시 당하며 살아왔던 재벌가의 딸 정혜(이요원), 교수 남편에게 맞고 살던 미숙(명세빈), 재래시장에서 생선장사를 하며 아들딸을 키우고 있는 도희(라미란). 남성 중심 사회에서 고통받고 있는 세 사람의 유쾌한 복수극을 그린 <부암동 복수자들>은 남성들의 권력에 맞선 여성들의 연대를 흥미롭게 그려냈다. 이들의 연대는 계층을 초월한 것이라 더욱 선명하게 다가왔다. 또, 단순히 상대방에 대한 복수에 매몰되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삶을 살아가는 진정한 복수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컸다.


지금까지 '기승전멜로'라는 고리타분하고 안이한 전개를 답습하지 않고, 뚝심있게 '작품성'을 지켜냈던 드라마들을 살펴봤다. 서두에도 말했듯이 '멜로'가 무조건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설령 그곳이 지옥이라 할지라도 사랑은 그 위대한 생명력을 뽐내지 않던가. 다만, 스토리 전개와는 무관하게 '일부러 멜로를 넣는' 식상함, 러브 라인 없이는 불안감을 호소하는 지상파 방송사의 소심한 태도를 지적하는 것뿐이다. 2018년에는 멜로 집착증을 버린 다양한 드라마들이 더욱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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