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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구조사 해요? <한끼줍쇼>가 보여준 사람들이 문을 열지 않는 이유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2017. 11. 9. 18:28


만약 이경규(혹은 강호동)가 집에 찾아와 "안녕하세요, 이경규입니다. 한끼 식사를 얻어먹을 수 있을까요?"라고 요청한다면, 과연 나는 '선뜻' 문을 열어줄까? 고민할 필요도 없이 "죄송합니다."라고 거절했을 것이다. 집안에 (게스트로 출연한) 트와이스를 좋아하는 중학생 아들이 있는 것도 아니고, JTBC <한끼줍쇼>의 열혈 시청자가 있는 것도 아니니 문을 열어줄 이유가 없다. 아마 대부분의 가정이 그러할 텐데, 특별한 예외적 상황이 있지 않다면 '거절'이라는 같은 결정을 내릴 것이다.


실제로 이경규와 강호동은 하루종일 헤맨 뒤에야 겨우 한끼를 얻어 먹는다. 수없이 초인종을 눌러보지만, 거의 대부분 문전박대를 당한다. 그들의 '한끼줍쇼'는 왜 그토록 어려운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그것이 곧 '방송 출연'을 뜻한다는 건 제쳐두고, 우선 불편하기 때문이다. 집 안을 공개하고, 식사를 준비하고, 그들과 대화를 나눠야 하는 과정이 달가울 리 없다. 제 아무리 유명한 이경규와 강호동이라지만, 약속도 없이 들이닥친 그들을 위해 식사를 대접할 까닭이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매회마다 한번씩 예외적으로 문을 열어주는 사람들이 있었고, 이경규와 강호동은 한끼를 얻어먹으며 감격했다. 그렇게 55회를 버텨왔고, 대망의 1주년(2016년 10월 19일 첫 방송)을 축하하기도 했다. 시청률은 5% 안팎으로 매우 준수하다. 1회 시청률이 2.822%였던 것에 비하면 엄청난 성취가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한끼줍쇼>를 향해 쏟아졌던 비판과 혹평(예를들면 '민폐 방송', '시대를 잘못 타고 난 예능')들을 이겨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었다. 


개인적으로 <한끼줍쇼>에 대해 호의적인 입장이었는데, 그 이유는 <한끼줍쇼>가 붕괴된 도시의 저녁을 담아냈기 때문이었다. 온가족이 식탁 앞에 모여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저녁을 먹었던 시절과 달리 한끼를 함께 먹기도 힘든 것이 현대인들의 삶의 모습이다. <한끼줍쇼>는 이러한 포인트를 적절히 잡아내면서 '저녁 식사'가 갖고 있는 상징성에 대해 진지한 접근을 꾀했다. 무엇보다 '소소한 이야기'가 담겨 있고, '소통'의 노력과 흔적들이 묻어있는 이 프로그램이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사실 충분히 예고됐던 트러블인데, 들쭉날쭉하던 '민폐'의 농도가 짙어지면서 불편함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지난 8일 방송에서 이경규는 잠실동을 찾았다. <한끼줍쇼>의 애청자이자 쌍둥이 남매를 둔 엄마를 만난 덕분에 이경규는 한끼를 해결할 수 있었다. 엄마가 학원에서 아이를 데려오기 위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아빠가 돌아왔고, 그렇게 한끼 식사가 계속 진행됐다. 여기에서 문제가 발화(發火)되기 시작했는데, 이경규의 대화를 이끌어가는 방식, 그 발화(發話)가 발단이었다.




"무슨 일 하세요?"

"고향은 어디세요?"

"잠실에 살게 된 이유는?"

"은행 대출이 좀 끼어 있습니까?"


이경규는 쌍둥이 아빠에게 개인사를 묻기 시작했다. 물론 '문을 열어줬다'는 점에서 이런 상황을 감내할 마음의 준비를 어느 정도는 했을지도 모른다. 기본적으로 <한끼줍쇼>라는 프로그램이 '소통'이라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고, 그런 차원에서 MC들과 한끼 제공자들과의 대화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경규의 질문은 가벼운 개인사라고 보기엔 눈살이 찌푸려질 내용들을 담고 있었다. 어린 딸이 옆에 있는데 굳이 '(집을 마련하는 데) 은행 대출이 좀 끼어 있느냐'는 질문을 해야 했을까?

아니나 다를까. 이경규의 질문이 있은 후 식탁에는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민망하고 뻘쭘한 상황이었다. 이쯤되면 그만둘 법도 한데, 이경규는 엄마가 돌아온 뒤에도 "잠실에서 사는 건 어떠세요?", "물가가 조금?"이라며 같은 질문들을 되풀이했다. 물론 경제적인 부분도 삶의 한 부분이고, 주요한 이야깃거리일 수 있다. 하지만 더없이 민감한 내용일 수 있기 때문에 상황과 분위기, 혹은 친밀도 등에 따라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꺼내야 할 이야기라는 게 중론이다. 아쉽게도 이경규가 보여준 인터뷰는 '호구조사'의 수준을 넘지 못했다.



JTBC <한끼줍쇼>는 '줄타기'와 같은 프로그램이다. '민폐'와 '소통' 사이, 그 경계에서 아슬아슬한 곡예를 하고 있는 셈이다. 분명 <한끼줍쇼>가 시청자들에게 줄 수 있는 긍정적인 이야기가 많을 거라 생각한다. 가령, 낯선 이에게 문을 활짝 열어주는 따뜻한 마음을 발견할 때 전해지는 찌릿함이라든지, 그들이 들려주는 자극적이지 않으면서 감동적인 '인간극장'은 <한끼줍쇼>만의 전매특허다. 또, 다양한 형태로 구성된 현대 가족의 양태를 엿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하지만 난데없이 동네에 들이닥치고, 초인종을 눌러 '밥 좀 주세요!'라고 요구하는 건 여전히 '민폐'의 영역이다. 또, 개인의 사생활을 들여다보고 TV를 통해 낱낱이 공개되는 프로그램의 성격상 제작진에게 보다 신중함이 요구되는 게 사실이다. 그러자면 MC들도 달라져야 한다. 부동산 가격을 묻고, 대출을 했는지와 같은 불쾌한 질문이 아니더라도 나눌 수 있는 일상적인 대화가 얼마나 많은가. 나이, 직업, 고향, 집값 등을 묻는 아저씨 특유의 '호구조사' 대화법을 버리길 바란다. 


<한끼줍쇼> '잠실' 편은 이경규와 강호동이 한끼를 얻어먹는 일이 왜 그토록 힘든지를 단적으로 보여줬다. 현대인들이 문을 닫아버리고 자기 집에 숨어버린 까닭은 야박해진 인심(人心) 때문이 아니다. 인심을 가장한 과도한 관심과 간섭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질문의 수준을 높이지 않는다면, 대화의 질을 높이지 않는다면 그들에게 문을 열어주는 사람들은 지금보다 훨씬 줄어들 것이다. 닫힌 문이 더욱 꽁꽁 잠길 것이다. 그러다보면 <한끼줍쇼>가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도 벌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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