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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려원 돋보인 문제작, <마녀의 법정>은 웰메이드가 될 수 있을까

너의길을가라 2017. 10. 11.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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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어쨌든 승소했잖아요."

"아까 동성애 사실 추궁당할 때 남우성 씨 표정 보고도 그런 소리 나옵니까? 지금 남우성 씨가 어떤 심정일지 생각 안 하십니까?"

"그걸 내가 왜 해야 돼죠? 난 검사지, 변호사가 아니거든요."


재판에서 (어떻게든) 이기는 것. 그래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자신의 이름을 세상에 떨치는 것. 승진과 출세, 마이듬 검사(정려원)의 머릿속엔 이런 단어들뿐이다. 현실적일까? 아니면 속물적일까? 관점에 따라 달리 보일 수 있겠지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승리만을 좇는 태도를 긍정적으로 보긴 어렵다. 범죄 피해자가 극구 숨기고 싶었던 사생활, 그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재판의 손쉬운 승리를 위해 의도적으로 드러내고, '어쨌든 승소했다'며 자랑스러워하는 모습은 경악스럽기만 하다.


'범죄 피해자 보호'가 강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검사 = 범죄자(만) 잡(으면 되)는 역할'이라는 등식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지만 여전히 시대적인 발상)일 것이다. 그런데 저 참담한 말을 '젊은' 검사, 그것도 '여성'에게서 들으니 생경하다. 게다가 '마녀'로 불리는 마이듬 검사를 제지하고, 그와 사사건건 부딪치는 역할을 '남성'이 맡았다는 점도 흥미롭다. 정신과 의사 출신인 '햇병아리' 여진욱 검사(윤현민)은 수사와 공판에서 피해자 중심 주의를 강조하며 마 검사와 충돌한다. 


기존의 드라마가 취하고 있는 구도와 확연히 다르다. 일종의 '비틀기'라고 할까. 여진욱 검사의 성(姓)이 '여씨'라는 점도 재미있다. 흔히 그렇듯, 그를 줄여부르면 '여검'이 아닌가. 또, 7년 차의 마이듬 검사와 10개월 차 여진욱 검사의 선후배 관계도 기존의 드라마가 보여주던 구도와는 다르다. 대개 남성이 선배, 여성이 후배(혹은 보조 역할)였고, 막 나가는(?) 역할은 선배인 남성의 몫이었지 않은가. <마녀의 법정>이 이와 같은 '비틀기'를 통해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자 하는 것인지 기대가 된다. 



성추행과 동성애 등 파격적인 소재를 다루고, 교수와 조교 사이의 갑을 관계를 파고 들었던 <마녀의 법정>에 대한 반응이 초반부터 뜨겁다. 지난 9일 6.6%로 스타트를 끊은 <마녀의 법정>은 2회에서 9.5%를 기록하며 2.9% 포인트나 껑충 뛰어 올랐다.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달리고 있는 SBS <사랑의 온도>(8.8%, 10.3%)의 뒤를 바짝 따라 붙었다. 두 드라마의 뜨거운 경쟁이 예고된 가운데, 여성아동성범죄를 집중적으로 조명할 <마녀의 법정>의 상승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좋은 흐름을 만들어 낸 공은 역시 마이듬 검사 역을 맡은 정려원에게 돌려야 할 듯싶다. 5년 만에 지상파 드라마에 복귀한 정려원은 정형화되지 않은 그만의 독특한 연기로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지난 2013년 MBC <메디컬 탑팀>에선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듯 어색했다면, <마녀의 법정>에선 제옷을 입은 것처럼 다양한 매력을 뽐내고 있다. 그는 거침없고, 과감하고, 파격적인 느낌들과 절묘히 매치된다. 어쩌면 정려원에겐 통제를 벗어난 '야생마' 같은 캐릭터가 잠재돼 있는지도 모르겠다. 



정려원은 출세를 위해 상사인 부장 검사의 성추행을 눈감아 주는 권력지향적 속물적 캐릭터와 징계위원회에 출석해 진실을 밝히고 당당히 증언을 하는 정의로운 캐릭터가 혼재된 마이듬 검사 역을 거북함 없이 훌륭히 소화했다. 아직까진 전자의 성격이 짙게 나타나고 있지만(냉정히 말하면 마 검사의 폭로는 정의감의 발로라기보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어긴 상사에 대한 배신감 때문이라 봐야 하지 않을까.), 그런만큼 마 검사의 변화와 성장은 더욱 강렬하게 다가올 예정이다. 


한편, OCN <터널>에서 시크하지만 그 누구보다 뜨거웠던 형사 김선재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윤현민은 부드럽고 나긋하지만 강단과 소신을 갖춘 출포검(출세를 포기한 검사) 여진욱으로 돌아와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 "나는 7년 차야. 햇병아리 검사와 7년 차 검사가 있으면 보조는 여검이 해야 되는 거 알지?"라며 기선제압에 나선 마 검사와 정의감과 따뜻한 인간미, 그리고 사람의 심리를 꿰뚫는 통찰력을 지닌 여 검사의 앙숙 케미도 <마녀의 법정>의 감상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정려원, 윤현민 두 주연 배우가 캐릭터를 잡고 극에 무난히 스며들었다면, 전광렬과 김여진 등은 베테랑으로서 드라마의 무게감을 더했다. 희대의 공안형사 출신으로 경찰청정과 국회의원을 역임하고, 현재 형제로펌의 고문이사로 있는 조갑수 역을 맡은 전광렬은 강렬한 카리스마로 절대 악을 시전 중이다. 한편, 과거 성고문 사건으로 조갑수와 얽힌 여성아동범죄 전담부 민지숙 부장 검사 역을 맡은 김여진도 단단한 연기로 드라마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마녀의 법정>의 지향점은 또렷하다. 속물적인 검사 마이듬의 성장과 변화다. 정의로운 검사 여진욱과의 좌충우돌이나 절대 악인 조갑수의 존재는 이를 위한 훌륭한 지렛대인 셈이다. 이 드라마의 하이라이트는 마이듬 검사가 조갑수에 의해 엄마 곽영실(이일화)이 희생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지점일 텐데, 그 과정을 얼마나 쫄깃하게 그려내느냐에 성패가 걸렸다고 볼 수 있다. 마이듬과 여진욱을 비롯해 여러 캐릭터들이 자리를 쉽게, 그것도 빨리 잡은 덕분에 충분히 승산이 있다. 


여성아동범죄를 집중 조명할 <마녀의 법정>이 사회적 약자의 처참한 현실을 얼마나 생생하게 그려낼지, 또 사법 체계의 허점과 공권력의 문제점들을 얼마나 적나라하게 다룰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도발적인 '문제작'으로서의 속내를 드러낸 <마녀의 법정>이 '기대작'으로서 우리 사회에 돌직구를 마음껏 던지길 바라본다. 그렇게 스트라이크가 계속해서 꽂히다보면, 자연스레 '웰메이드'라는 이름도 얻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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