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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킴' 그리고 '너의길을가라'

김남길의 흑화보다 <명불허전>의 흑화가 더 걱정이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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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길의 흑화보다 <명불허전>의 흑화가 더 걱정이다

버락킴 너의길을가라 2017. 9. 10. 15:01

 


 

흑화(黑化, Being Blacken) : 선한 인물의 타락

 

"내가 치료하면 네 형은 죽는다. 너 또한 다칠 수 있다."


치료하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끝내 뿌리칠 수 없었다. 더욱 끔찍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음을 알면서도 외면할 수 없었다. 동막개(문가영)의 어머니를 구하려다 양반에 의해 매질을 당했던 일이 아직 눈에 선했다. 게다가 그가 살려낸 동막개의 어머니가 양반에 의해 죽임을 당하던 것을 막아낼 수 없었던 무력감도 생생했다. 그러나 허임은 다시 한번 손에 침을 쥐었다. 의원의 삶을 살아가는 자의 피할 수 없는 숙명인 것일까. 측은지심을 지닌 선한 삶을 살아가는 자의 딜레마일까. 


허임은 결국 두칠(오대환)의 형 딱새를 치료하고 살려낸다. 하지만 기쁨은 잠시였고, 희망도 순간이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병조판서(안석환)는 자신의 '소유'를 건드린 허임의 죄를 묻는다. 양반의 것이었던 딱새는 매질을 당해 죽임을 당한다. 형의 죽음을 목도한 두칠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병판에게 달려들다가 그 역시 죽음의 기로에 서게 된다. 이때 허임은 무릎을 꿇고 목숨을 구걸하기 시작한다. 스스로를 '양반들이 던져주는 먹이나 받아먹고 꼬리나 흔드는 개새끼'라며 한껏 낯춘 채 살려만 달라고 애걸한다. 

 

 


"개, 돼지만도 못한 이놈들. 대감의 노여움이 풀릴 수만 있다면 천번 만번 죽어 마땅하지요. 허나, 저희 같은 천하고 더러운 것들을 죽여봐야 대감님의 귀한 손만 더러워질 터, 부디 하해와 같은 은혜를 베풀어 목숨만, 제발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제발, 대감."


조선에서 또 한번 극단적 상황을 겪고 현대로 타임슬립한 허임은 '흑화'의 길을 걷게 된다. 의원의 손길이 필요한 거리의 노숙자들을 모른 채 하고 지나치고, 자신의 침통을 한강에 버린다. 그러면서 "다신 그리 짓밟히고 천대당하며 살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한다. 과거의 자신과 단절을 선언한 것이다. 처음엔 선택의 여지가 있는 '유혹'처럼 다가왔던 이사장 마성태(김명곤)의 제안은 이제 거부할 수 없는 필연이 돼 버렸다. 귀한 사람을 치료하고, 그들을 얻는 일. 다시 말해 의술을 파는 장사를 시작한 것이다.


흑화한 허임은 최연경과 갈등 관계에 돌입한다. 조선에서 허임이 겪었던 아픔과 상처를 알게 된 최연경은 그의 곁에 있어주려 애쓴다. 하지만 허임은 이를 거부한 채 선을 긋고 거리를 유지하려 한다. 급기야 마약에 중독된 VIP 환자를 옮기는 과정에서 두 사람은 대립각을 세운다. 허임은 환자를 빼돌리는 걸 막아선 최연경에게 "치료는 최 선생이 먼저 받아야 할 거 같은데요. 툭하면 환자 앞에서 벌벌 떠는 사람이 누굴 치료하겠다는 겁니까. 그러고도 의사를 운운할 자격이 있어요?"라며 독설을 던지며 무력화시킨다. 

 

지난 8회에서 과거 '헬조선'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긴장감을 끌어올린 <명불허전>은 9회에서 급격하게 흐름을 바꿨다. 아마도 갈등이 최고조에 달하는 시점이 아닐까 싶은데, 일각에서는 이와 같은 급반전이 오히려 극의 재미를 떨어뜨렸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우선, 9회의 핵심적인 스토리라 할 수 있는 '허임의 흑화'에 개연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다. 또, 허임과 최연경 사이의 멜로 라인도 너무 뻔해서 식상하다는 것이다. '기승전멜로'의 고질병이 도졌다는 불만이다.


 

 

"의사로서의 선이라 그게 무엇이오. 그 곳에서 보지 않았습니까. 의사로서의 도리와 선의가 때론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아, 사람을 살리는 것이 득이 될지 해가 될지 판단하는 것이 의사의 몫이 아니라 했습니까. 허나 나는 따질 것이요 무엇이 나한테 득이 되고 해가 되는 지를 두 번 다시 개처럼 살지 않기 위해 필요하다면 그 의사의 선이라는 것을 나는 넘을 것이오."


그러한 지적도 일정 부분 타당하지만, 천한 신분 탓에 죽을 고비를 연거푸 겪었던 허임이 자신의 삶의 궤적을 바꾸려고 하는 게 그리 이상하게 느껴지진 않는다. 오히려 현대로 돌아온 후에 또 다시 사회적 약자를 위해 의료 행위를 한다면, 그게 더 개연성이 떨어지는 것 아닐까. '달라진 게 없는' 현대이지만, 적어도 자신의 능력을 통해 신분 상승의 길이 열려 있는 이곳에서 다른 삶을 살려는 그의 '변화'에는 개연성이 있다. 비록 그것이 '흑화'이고, 일시적인 선택일지라도 말이다.


한편, 허임과 최연경의 멜로의 경우에도 애초에 그것이 '예고'돼 있었기에 새삼스럽지 않다. 또, 허임이 최연경을 밀어내는 이유도 설명하기 어려운 게 아니다. 두 사람이 엮이게 되면 '타임슬립'이 작동될 여지가 있고, 위험한 상황들에 노출된 경험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보다 더 큰 이유는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들을 알고 있는 현대의 유일한 인물이 최연경이고, 그가 계속해서 자신의 흑화를 흔들리게 한다는 점일 것이다. 어쩌면 최연경의 말처럼 쓸데없는 '자존심'일지도 모를 일이지만, 두 사람의 밀당은 드라마의 중요한 요소임에 틀림없다.

 

 

<명불허전>의 가장 큰 문제는 오히려 다른 데 있다. 허임의 흑화가 강조되다보니 자연스레 극의 분위기가 침체됐다. 김남길의 능청스러운 코믹 연기가 드라마의 인기를 견인한 포인트였는데, 이 부분이 몽땅 사라지면서 드라마 자체가 흑화된 것이다. MBC <선덕여왕>에서 '비담'역을, SBS <나쁜남자>에서 '심건욱' 역을 맡았던 김남길은 이번에도 비슷한 패턴의 캐릭터를 선보이고 있다. 그 매력이 워낙 치명적이라 하드캐리하고 있지만, 극의 흐름이 지나치게 극단적이라 붕 뜬다는 인상을 주는 게 사실이다.


또, 주변 인물들의 역할이 지나치게 미미하고,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인 세계관이 도드라진다는 점도 아쉬운 부분이다. 좀더 촘촘하게 이야기를 짰더라면 어땠을까. <명불허전>이 보여준 조선과 현대를 왕래하는 타임슬립과 그 안에 한의학과 현대의학을 섞어 넣는 설정은 참신하고 기발했다. 기대가 컸던 만큼 스토리 진행에 대한 지적이 쏟아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아직까지는 반전의 기회가 남아 있다. 허임의 흑화, 허임과 최연경의 멜로를 빨리 풀어내고, 애초에 이야기하고자 했던 '두 개의 시대'와 '의사로서의 선'에 다다르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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