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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를 자초한 김구라의 줄타기, 고민이 부족했던 <라스>

너의길을가라 2017. 9. 2.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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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타기 : 공중에 매단 줄 위에서 광대가 재담 · 소리 · 발림을 섞어가며 갖가지 재주를 부리는 곡예.


김구라의 방송 스타일은 자칫하면 바닥으로 추락할 수 있는 줄타기와 다름 없다. 스스로를 백척간두에 몰아넣어 관객의 심장을 쫄깃하게 만든 후 신묘한 재주를 부려 바라보는 이들의 혼을 빼놓는다. 경계를 넘나드는 과감함이 아찔한 탄성을 자아내고, 재치있는 말과 능글맞은 발재간이 쉼없는 박수를 이끌어낸다. 하지만 위험도가 높으면 자연스레 위기가 잦기 마련이다. 위기가 자주 찾아온다는 건 그만큼 추락의 가능성도 높아진다는 뜻이다. 그래서 '터질 게 터졌다'는 말이 오는 것이다. 김구라가 또 한번 삐끗했다. 


포털 사이트 DAUM 아고라에서 진행 중인 '김구라 라스 퇴출을 위한 서명운동'에는 약 3만 명(10시 40분 현재 29,978명)이 서명했다. 대중들은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라디오 스타>라는 프로그램에 대한 폐지까지 거론하고 나섰다. 발단은 이미 전국민이 다 알고 있는 그 사건, 바로 '김생민 조롱 논란' 때문이다. 지난 8월 30일 방송된 MBC <라디오 스타>는 '염전에서 욜로를 외치다'라는 콘셉트로 염전(천일염)' 측에 김응수와 김생민을 섭외했고, 욜로 측에 조민기와 손미나를 데려왔다. 

 

 

방송 콘셉트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제작진은 '염전'과 '욜로'를 비교하면서 웃음을 생산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어마어마한 콜렉터인 조민기는 클래식 차 7대, 바이크 3대, 안경을 800개를 소유하고 있다고 자랑(?)했고, 반면 김생민은 '절약 노하우'와 '짠돌이스러운 지혜'를 방출했다. 그런데 '방점'이 이상하게 찍히기 시작했다. 조민기의 지출은 부러움의 대상이 됐고, 그와 같은 소비가 '욜로'라는 식으로 포장됐다. 어떻게든 돈을 아껴보려는 김생민의 노력은 '미간을 찌푸리는 이야기'가 돼갔다.


제작진은 "방송을 보고 불편함을 느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김생민씨는 빠른 시일 내에 다시 한 번 녹화에 모셔 좋은 내용으로 다시 찾아뵙겠다"며 공식 사과했다. 조롱하려던 의도가 없었다는 것이 사과의 주요 골자이며, 지금의 상황이 당혹스럽다는 것이다. 물론 그런 의도는 없었으리라 믿는다. 하지만 콘셉트를 잡는 데 있어 신중치 못했던 책임이 있었던 건 분명하다. '염전에서 욜로를 외치다'는 콘셉트에는 숨겨진 '뉘앙스'가 있었고, 그것이 방송 초반부터 노골적으로 비쳤기 때문이다.


어찌됐든 간에 궁극적으로 '욜로를 외치'는 것이 결론으로 못박혀 있었던 것이다. 제작진의 의도에 맞춰 MC들도 그 대열에 합류했고, 김구라는 아예 선봉에 섰다. 그가 '독설'과 '비판' 혹은 구박'을 주무기로 하고 있기에 캐릭터 적인 면에서 자처한 일이지만, 그의 태도와 발언이 과했던 점에서 지금의 위기는 그의 경솔함이 자초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줄타기의 장인'답게 적절한 선에서 묘기를 마무리 했으면 좋았을 테지만, 김생민을 대하는 그의 태도는 다소 과격한 측면이 있었다.

 

 

문제는 그것이 김구라와 김생민과의 1:1 관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김생민에게 공감을 보내고 있는 수많은 소시민들과의 관계로 확장됐다는 점이다. 김구라의 핀잔과 놀림은 김생민에 대한 조롱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퍽퍽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김생민'들에 대한 공격으로 보여졌다. 그렇기 때문에 "김구라 형님과 원래 친한사이다. 이번 일로 여러 차례 통화를 했다. 촬영 현장은 화기애애했고, 우려하시는 일은 없었다"는 김생민의 쉴드는 이 사태를 갈무리하는 데 아무런 효과도 발휘하지 못한 것이다.


선봉에 섰던 김구라가 집중 포격을 맞고 있지만,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라디오 스타> 제작진에 있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팟캐스트로 시작해 KBS2에 자리를 튼 <김생민의 영수증>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과 사랑을 캐치한 것까지는 좋았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를 가져오는 데는 실패했다. 어쩌면 <라디오 스타> 측도 내심 억울할지 모르겠다. 애초에 '경청'이 아니라 '물어뜯기', 그것도 인정사정 없는 공격이 프로그램의 근본 정신이었던 만큼 지금의 논란이 야속하기도 할 것이다. 


'우린 원래 이랬는데..' 라는 항변, '쟤네들은 원래 그랬는데..'라는 일부 애청자들의 주장도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그래도 섭외와 콘셉트에 좀더 신중을 기했어야 했다는 지적에선 자유로울 수 없다. 어설프게 '욜로'와 '염전'을 비교하기보다 차라리 '염전' 특집을 좀더 짜임새 있게 만드는 게 어땠을까. 공정한 비교를 할 수 없다면 차라리 그 편이 훨씬 낫지 않았을까. '염전에도 욜로가 있다'는 김응수의 말처럼 그 부분을 강조했다면 더 재미있는 방송이 됐을 것이다. 


제작진의 책임을 강조했다고 해서 김구라에게 잘못이 없다는 건 아니다. 아무리 사적인 친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출연자의 말을 중간에서 끊는다거나 짜증섞인 반응으로 일관하는 건 (캐릭터를 반영한다고 하더라도) 바람직하지 않다. 그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면, 대중들의 사랑이 존재 이유인 예능인으로서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 "앞으로 더 사려 깊은 방송을 하"겠다는 그의 반성이 빠른 시일 내에 반영되길 바란다. 그래야 김구라라는 유니크한 방송인, 그의 줄타기를 계속 TV를 통해 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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