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킴의 극장

#오지랖 #남성성 #아재 <보안관>이 불편한 이유

너의길을가라 2017. 5. 15.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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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기장을 무대로 한 로컬 수사극 <보안관>이 예상을 뛰어 넘는 순항을 계속하고 있다. 지난 13일에는 200만 관객을 돌파했는데, 개봉 11일 만의 기록이었다. 14일에도 16만 4,556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5월 9일 개봉한 <에이리언: 커버넌트>(18만 9,848명)의 뒤를 이어 박스 오피스 2위를 달리고 있다. 같은 날(5월 3일) 개봉했던 <보스 베이비>(16만 758명),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2>(12만 254명)와의 경쟁에서도 근소하지만 앞서 있는 모습이다. <보안관>은 누적 관객 220만 6,013명으로 손익분기점인 220만 명을 넘어섰다. 


상대작들이 워낙 막강했다는 점에서 <보안관>의 이와 같은 선전은 놀랍다. 연휴 기간에는 가족 단위의 관객이 많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코미디 영화가 강세를 보인다는 점을 적극 공략했던 선택이 먹혀들었다. 영화적 완성도나 시나리오의 아쉬움이 언급되고 있지만, '그럼에도 웃기다'는 입소문이 돌았던 게 주효했다. 그러나 <보안관>의 박수받아야 마땅한 흥행 성적과는 별개로 이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려면 다소(어쩌면 상당히) '시니컬'해질 수밖에 없다. 



"동네 보안관을 자처하는 오지랖 넓은 사내가 자기 눈엔 마약 범죄자로 보이는 남자로부터 마을을 지키려는 '고군분투기'이고, 한편으론 희미해져 가는 자신의 남성성을 증명하고자 끝없이 몸부림치는 한 중년 사내의 이야기"


김형주 감독은 <보안관>에 대해 위와 같이 설명한다. 영화에 대한 참으로 적확한 표현이 아닐 수 없는데, 사실 저 짧은 문장 속에 이 영화가 '싫은' 이유가 몽땅 들어가 있다. 첫 번째는 '오지라퍼'에 대한 불편함이다. 제발, 남의 일에 신경 끄시라! 두 번째는 이 영화가 말하는 '남성성'이라는 개념이 지나치게 성고착화돼 있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이를 증명하고자 몸무림치는' 상황들이 끔찍하게 다가온다는 점이다. 게다가 그 방식들이 '단순무식'으로 연결되는 자연스러움(은 필연적이겠지만)도 마뜩지 않다. 


이 모든 설명들이 집약적으로 드러난 대목이 슈퍼 앞에 비치된 테이블에 모여 앉은 남정네들의 대화 내용이다. '오지라퍼' 전직 경찰, 부산 기장을 지키는 '보안관' 최대호(이성민)는 자신을 따라는 무리들을 모아놓고 '고충 상담'을 하고 있다. 정수기 사업을 하는 강곤(임현성)이 용환(김종수)의 권유에 못 이기는 척 이야기를 털어 놓는다. 음주운전을 하다가 면허가 정지됐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들은 대호, 다시 말해서 '오지랖 넓은', '자신의 남성성을 증명하고자 몸부림치는' 중년 사내는 이렇게 말한다.



'내 경찰 옷을 벗은 지가 꽤 됐지만서도 이 정도 민원은 거뜬하게 처리해 줄 수 있다!귀여운 허세 정도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대부분의 관객들이 그러한 듯 보이지만), 가벼운 웃음 포인트로 여길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지역 공동체'와 '남성성'이 묘하게 결합된 이 장면에 우리는 불쾌함을 느껴야 한다. 동네에서의 음주운전이라면 '그럴 수도 있다'며 아무렇지도 않게 용납되는 분위기, 게다가 '운전으로 먹고 사는 사람'이라고 쉴드를 치는 동네 이웃들의 모습은 한심스럽기만 하다. 


또, 음주 단속에 걸려 면허가 정지된 문제를 파면된 경찰관에게 말해본들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그런데도 오지라퍼 대호는 '허세'를 드러내며 자신의 남성성을 과시한다. 그것이 정말 '남자다운' 모습인지 의문이지만, 그에게 열광하는 동네 이웃들의 반응을 보면 이 레퍼토리가 제법 잘 먹혀왔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순박하다'고 해석해야 할까. 영화 속에서 정확히 묘사되진 않지만, 대호는 과거의 인맥을 동원해 이런 식으로 동네 민원을 여러 차례 해결해 왔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거기는 정말 그럽니까?'



'보안관'이라는 용어가 낡아버린 것처럼, 대호는 여전히 '감'에 의한 수사 방식에 머물러 있고, 과거의 경찰 인맥을 동원해 수사에 혼선을 주기도 한다. 또, 그는 "한번 뽕쟁이는 영원한 뽕쟁이"라는 '낙인 이론'의 신봉자다. 물론 영화 속에서는 그 감이 맞아 떨어져 종진(조진웅)의 검은 속내를 파헤쳐내고, 그의 범죄를 막는 영웅적 모습으로 귀결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자행되는 온갖 불법적 수사 기법들은 불편함을 자아낸다. 영화는 이를 '웃음'으로 무마한다. 


또 한번의 '성공'을 거뒀으니 대호가 자신의 '오지라퍼', '남성성'과 같은 기질들을 바꿀 리 만무하고, '지역 공동체'를 구성하고 있는 이웃 주민들은 그의 활약에 감동을 받았을 테니 앞으로도 대호는 기장의 '보안관'으로 활개를 치며 살아갈 것이다. ''신화적인 인물로 격상됐을 테니, 누가 감히 그의 행보에 태클을 걸 수 있겠는가. 코미디 영화를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였다고 생각할 사람도 더러 있겠으나, 그런 공동체라면 하루빨리 떠나고 싶을 것만 같다. 



이런저런 아쉬움이 남지만, 배우들의 변신은 신선했고 그 변화 속에서 드러나는 매력은 흥미롭다. 배우들의 연기야말로 <보안관>이라는 영화를 지탱하는 힘이라 할 수 있다. '아재 근육'으로 돌아온 이성민은 기존의 이미지를 과감히 버리는 모험을 선택했는데, 결과적으로 매우 흡족한 반응을 얻었다. 또, 시종일관 대호의 의심을 받아야 하는 종진 역을 맡은 조진웅의 의뭉스러운 연기도 반갑다. 뻔한 반전과 이를 쉽게 눈치챌 수 있는 시나리오의 허술함에도 그의 연기는 빛을 발한다. 


tvN <응답하라 1988>을 통해 이미 코미디 연기를 선보였던 김성균과 김형주 감독의 히든 카드였던 배정남도 자신의 몫을 톡톡히 해내는데, 조우진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다. 영화 <내부자들>과 tvN <도깨비>를 통해 자신의 진가를 드러낸 그는 영화 <더 킹>, <원라인>과 드라마 tvN <시카고 타자기>에 연달아 출연했는데, 겹치는 캐릭터가 없이 모든 캐릭터를 '다르게' 표현해냈다. 언젠가 조우진의 1인 다역 연기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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