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 연예

나영석의<신혼일기>, '진짜'가 주는 '판타지'를 구현하다

너의길을가라 2017. 2. 12. 17:30
반응형


대중들은 '가상(假想)'을 원할까, 아니면 '진짜'를 원할까. 


알 수 없는 일이다. 쉽게 대답할 수 없다. 양자택일은 어렵지만, 그 흐름을 짚어보는 것까진 가능할 것 같다. 분명, '가상'이 주는 설렘이 대중들을 압도하던 때가 있었다. 2008년 설 연휴를 맞아 시청자들에게 첫 선을 보였던 MBC <우리 결혼했어요>의 역사는 그 시절과 궤를 함께 한다. 이른바 '가상연애 예능'의 출현이다. <우결>은 '내가 좋아하는(관심있는) 저 연예인은 과연 어떤 방식으로 연애를 할까'라는 궁금증을 해결해줬고, '내가 저 자리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대리만족까지 시켜줬다. 



대중들의 '판타지'를 충족시켜준 <우결>의 성공은 유사 프로그램들을 양산했다. 이를테면 JTBC <님과 함께2-최고의 사랑>이나 SBS <불타는 청춘>처럼 말이다. <최고의 사랑>의 경우 김숙과 윤정수 커플이 큰 사랑을 받긴 했지만, 그 기반은 여전히 그리고 철저히 '가상'이다. 시청자들은 그 두 사람을 바라보며 '그냥 결혼하라'며 훈수를 두곤 하는데, 그 바람(?)이 이뤄진 가능성은 현저히 낮다. 물론 <불타는 청춘>의 김국진 · 강수지 커플처럼 가상이 현실이 되는 기적 같은 경우도 있다.


가상이 주는 판타지는 위의 프로그램들의 출발점이자 존재의 이유 같은 것이었지만, 점차 대중들은 반복된 패턴에 피로감을 호소했다. 한껏 '쇼'를 하고 인지도를 높인 다음 하차 선언을 하는 것이 일반적인 패턴으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방송에서는 죽고 못 사는 척을 다 해놓고, 프로그램이 끝난 후 연락을 하고 지내냐는 질문에 "연락 안 해요"라는 대답은 대중들을 허탈케 했다. 그뿐인가.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는 도중에 실제 열애설이 터지기도 했고, <우결>에 출현하고 얼마 뒤 다른 상대와 공개 연애를 선언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쯤되니 '기만'처럼 느껴지는 건 당연했다. 급기야 최근 방송인 조우종이 KBS 정다은 아나운서와 5년째 연애 중이라는 사실을 공개하면서 대중들의 불쾌감은 극에 달했다. 왜냐하면 지난 몇 년동안 조우종은 방송 중에 코미디언 김지민에게 계속적으로 '들이대는'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방송에서 살아남기 위해 '캐릭터'를 잡았던 것이라고 하더라도, 카메라 앞에서 방송인들이 얼마나 천연덕스럽게 '거짓'을 연기할 수 있는지 뼈저리게 확인한 대중들은 기분이 나쁠 수 밖에 없었다. 



'가상 예능'의 전성기가 끝나고 그 하락세가 두드러지는 요즘, 이런 타이밍에 나영석 PD가 꺼내든 승부수는 참으로 시의적절하다. '가짜는 식상하지? 그렇다면 진짜는 어때?'라고 말하는 듯, 나 PD는 실제 부부인 구혜선과 안재현을 섭외해 그들의 '신혼 일기'를 담아냈다. 그리하여 프로그램의 제목도 tvN <신혼일기>다. 참으로 '정직'하지 않은가? 방송 칼럼니스트 김교석에 표현을 빌리자면, "가상연애 판타지를 향한 나영석 PD의 선전포고"라고나 할까?


산 밑에 오두막을 짓고 살아가는 '미니멀 라이프'를 추구해 왔던 구혜선은 도시 남자 안재현을 데리고(?) 강원도 인제로 향했다. 두 사람은 <신혼일기>를 통해 미래의 삶에 대한 '예행 연습'을 해보기로 한 것이다. 두 사람은 가지고 온 짐을 풀어놓고 정리를 시작했고, 반려 동물들(강아지 감자 · 순대 · 군밤, 고양이 안주 · 망고 · 쌈이)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1회는 시종일관 신혼의 알콩달콩함으로 채워졌다. '구님' 아내를 위해 음식을 만드는 남편 안재현은 설렘 그 자체였고, '트렁크 과자 이벤트'를 준비한 구혜선은 사랑스러웠다. 



'방귀'는 최고의 화제였다. "사귀기 전부터 방귀를 텄다"는 의외의 털털함을 보여준 구혜선과 달리 "방귀는 지키고 싶다"는 안재현의 수줍은 모습은 대비를 보여주며 웃음을 이끌어냈다. 1회가 '알콩당콩'에 포커스를 맞췄다면, 2회에서는 '갈등'이 전면에 부상했다. 전혀 다른 삶을 살아왔던 두 사람이 한 공간에서 살아간다는 건 말 그대로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분명 상대방을 '사랑'하지만, 결국 '타인'이라 할 수 있는 누군가와 모든 것을 공유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때로는 나만의 시간이 필요하고, 나만의 감정을 추스르고 가다듬을 시간이 필요하다. 그 방식은 각자 다를 수밖에 없고, 그에 익숙지 않은 상대방은 그 반응과 시간에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안구 커플도 마찬가지다. 구혜선은 잠깐 생각할 시간을 보내고 나면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되는 데 반해, 그 자리에서 감정을 풀어야 하는 안재현은 그런 구혜선이 화를 내는 것처럼 느껴져 자꾸만 말을 걸는 식이다. 그러다가 감정에 상처를 입어 되레 자신이 우울함에 빠지곤 한다. 



'가사 분담'은 또 어떤가. 처음에야 모든 집안일을 구혜선이 도맡아서 했지만, 점차 힘겨움을 느낀 그는 안재현에게 가사를 분담해서 할 것을 요구한다. 집안일은 여자의 몫이라는 가부장제의 인식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았던 안재현은 그동안 '도와준다'는 관점에서 접근했지만, 구혜선은 그런 모습이 마뜩지 않았던 것이다. 아내의 힘겨움을 그제서야 깨닫게 된 안재현은 구혜선의 요구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점차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서일까. 여전히 부족하다 말하는 아내에게 자신의 노력을 몰라준다며 서운함을 토로하기도 한다.


처음에는 누가 집안일을 더 많이 했는지를 두고 티격태격하던 두 사람은 차분히 대화를 이어나가며 서로를 이해하기 시작한다. 테이블에 마주 앉아 자신의 입장과 생각을 전달하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두 사람의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싸움으로 번질 여지가 충분했지만, 두 사람은 언성을 높이거나 서로를 감정적으로 자극하지 않았다. 길고 긴 대화 끝에 구혜선은 "처음엔 가사 일에 익숙하지 않은 리듬이 있었지만 분명한 건 자기(안재현)는 변해가고 있다. 앞으로도 일관성 있게 해 줘"라고 진심을 말하고, 안재현은 이를 수긍한다.


이처럼 자신들의 문제를 두고 '대화'를 통해 해결책을 모색하는 두 사람은 이상적인 부부의 모습을 보여줬다. 이와 같은 장면들은 '가상'으로는 결코 연출할 수 없는 부분들이었다. 진짜만이 보여줄 수 있는 것, 죽었다 깨어나도 <우결>은 그려낼 수 없는 날 것 그대로의 삶이었다. 예능의 최종 목적지가 결국 '인간극장'이라 여기고 있는 나영석 PD는 <신혼일기>를 통해 자신의 생각들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전의 그의 프로그램들이 그래했던 것처럼 <신혼일기>도 변주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이다.



<꽃보다 할배>가 <꽃보다 누나>로, 그리고 <꽃보다 청춘>으로 이어졌던 것처럼, 또 <삼시세끼>가 농촌 편에 이어 어촌 편으로 이어지며 히트를 쳤던 것처럼, <신혼일기>도 앞으로 <중년일기>, <황혼일기>로 발전할 수 었지 않을까? 그렇다면 현재 5%대에 그치고 있는 시청률도 더 높아지지 않을까? 자,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대중들은 '가상'을 원할까, 아니면 '진짜'를 원할까. 여전히 답은 쉽지 않다. 다만, 분명히 대답할 수 있는 것은 대중들은 '판타지'를 원한다는 것이다.


<신혼일기>는 '안구 커플'이라는 진짜 부부를 내세웠지만, 여전히 그들의 신혼 생활은 '비현실적'이다. 30대 초반의 나이에 '경제적 문제'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부부가 어디 있겠는가. 그들이 그려내는 '미니멀 라이프'는 '헬조선'을 살아가는 지금의 청춘들에게는 그야말로 꿈과도 같은 일이다. <신혼일기> 속 안구 커플의 알콩달콩한 신혼 생활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결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지만, 막상 눈을 돌려 '현실'을 직시하면 한숨만 줄기차게 나온다. 


두 사람의 귀여운(?) 갈등을 보여주며 '결혼은 현실이다'라고 강조하지만, 절실히 와닿지 않고 '몰입'이 되지 않는 까닭은 그마저도 '현실'과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우결> 등이 '가상이 그려내는 판타지'로 대중들을 매혹시켰다면, 나영석 PD의 <신혼일기>는 '진짜가 그려내는 판타지'로 대중들을 유혹하고 있는 셈이다. 어쩌면 '가상'이냐, '진짜'냐는 중요한 것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얼마나 매력적인 '판타지'를 그려낼 수 있느냐, 거기에 정답이 있는 것 아닐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