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킴의 극장

김기덕 감독이<판도라>를 '필요한 영화'라고 한 까닭은?

너의길을가라 2016. 12. 8. 14:27
반응형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허물어진 지 오래다. 영화 <내부자들>로 제37회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이병헌은 "<내부자들>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 '너무 과장된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보면 지금은 현실이 <내부자들>을 이겨버린 상황"이라는 수상소감을 남겼다. 현실이 영화의 상상력을 훌쩍 뛰어넘어버린 상황, 사람들은 당혹스러움을 느낀다. 작년 이맘때, 정경언 유착을 밀도 있게 그려내 호평을 받았던 <내부자들>을 지금에서 본다면 우리는 '시나리오가 좀 약하지 않아?'라고 말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12월 7일 개봉한 영화 <판도라>는 매우 시의적절한 타이밍에 개봉한 셈이다.



<판도라>는 지진 발생에 이은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고를 다룬 '재난 영화'다. 예고 없이(사실 예고와 징후는 숱하게 있었다. 단지 외면하고 회피하고 은폐했을 뿐.) 찾아온 초유의 재난과 그로 인한 극심한 혼란 양상을 다룬다. 이 영화가 기획되고, 촬영에 돌입했을 때 사람들은 '비현실적'이라 말했다. '원전 사고가 발생할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는 것이 정부와 한수원(한국수력원자력)의 주장이었고, 이것은 토를 달아서는 안 될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발전소에서 근무하며 원자력 발전의 효용성을 홍보하는 연주(김주현)도 그리 믿어 의심치 않았다. 


또, 누군가는 <판도라>를 두고 '껄끄럽다'고 말했다. 그도 그럴 법하다. 대한민국은 25기의 원전을 보유한 세계적인 원전 강국(!)이다. 미국(99기), 프랑스(58기), 일본(43기), 러시아(35기), 중국(32기)에 이어 무려 세계 6위다. 앞으로 33기까지 늘어날 전망 예정이라고 한다. 이러한 추세는 탈핵 · 탈원전을 추구하고, 그 실천 방안을 논의하는 세계적인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라 놀랍기만 하다. 설득력 있는 문제제기마저 모조리 '괴담'과 '루머'로 몰아가는 '윗분'들의 명쾌한 사고방식은 <판도라>가 흥행에 성공해 원자력 발전에 대해 의문을 갖는 상황이 끔찍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일을 어찌하랴. 개봉 첫 날, 박스오피스 1위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으니 말이다.



'비현실적'이고, '껄끄러운' 이 영화에 사람들은 어째서 호응하는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더 이상 사람들은 원전 사고를 '비현실적'인 일로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두 가지 충격적인 '사건'을 경험했다. 첫 번째는 후쿠시마 원자력 폭발 사고다. 지난 2011년 3월 11일, 일본 동북부 바다 밑에서 규모 9.0의 대지진이 발생했고, 그로 인해 최대 38.9m에 이르는 초대형 쓰나미가 원자력 발전소가 있는 후쿠시마를 덮쳤다. 제1원전 단지에서 수소 폭발이 일어났고, 방사능이 고스란히 유출됐다. 직간접 피해자가 2만 명에 이르고,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17만 명이 피난 생활을 하고 있다. 


일본인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만 피폭당한 것이 아니다. 앞으로 일본은 후쿠시마 사고로 인해 미국과 프랑스에 이어 태평양을 방사성 물질로 오염시킨 세 번째 나라로 세계인에게 회자될 것이다. 또한 대기권에서 원폭실험을 한 미국이나 과거의 소련과 함께 대기 중에 방서성 물질을 대량으로 방출한 나라의 일원이 되어 버렸다. 이렇게 된 이상 전 세계가 후쿠시마의 교훈을 공유해야 할 터이며, 사고의 경과와 책임을 포장하고 은폐하지 말아야 한다. 밝힐 것을 밝히고 더 나아가 솔선하여 탈 원전사회, 탈 원폭사회를 선언하고 그 모델을 세계에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 야마모토 요시타카, 『후쿠시마 일본 핵발전의 진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전 세계를 충격 속으로 몰아 넣었다.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라는 '달콤함'을 취하기에 원전은 지나치게 위험했다. '안전'이라는 문제에 있어 '만의 하나'라는 레토릭이 무의미하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내진 설계가 완벽하다던 원전이 폭삭 내려앉고, 방사능이 바다와 공기로 스며드는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목도한 상황에서 '제로에 가깝다'는 말은 '말장난'에 불과했다. 탈핵 · 탈원전 선언이 잇따랐고, 신재생에너지의 비중을 높이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일본의 바로 옆에 위치한 대한민국에선 여전히 '강 건너 불구경'하듯 했고, 남의 일처럼 여겼다. 



하지만 앞으로 이야기 할 두 번째 사건은 첫 번째 사건을 '현실'로 다가오게 만들었다. 지난 9월 12일 경주시 남남서쪽 8km 지역에서 발생한 5.8 규모의 강진은 온 국민을 충격에 빠뜨렸고, 더 이상 지진의 공포를 '비현실적'이라든지 '상상 속의 일'로 여길 수 없게 만들었다. 더 나아가 후쿠시마에서 발생했던 원전 사고 역시 '가능성 제로에 대한 희박한 문제제기'로 남겨두지 않았다. 왜냐하면 진앙지를 중심으로 반경 50km 이내에 원전 12기가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더 이상 한반도는 지진으로부터 안전하지 않고, 따라서 후쿠시마의 재앙이 재현될 가능성은 결코 제로에 가깝지 않다.


<판도라>는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면 어떤 재난이 발생하는지를 그려낸다. 활자로만 접하던 상황들을 영상으로 접할 때 실감은 배가될 수밖에 없다. 물론 영화적으로 볼 때, 이 영화에 높은 점수를 주긴 어렵다. <판도라>는 <터널>이 제시했던 재난 영화의 '새로운 접근'보다는 <해운대>나 <타워>와 같은 교과서적인 접근에 머문다. 평화로운 일상을 보여주고, 재난을 통해 이를 붕괴시키는 전개는 다소 상투적이다. 더 큰 재앙을 막기 위해 희생 정신을 발휘하는 재혁(김남길)을 비롯한 원전 직원과 급박한 상황 속에서 냉철함을 잃지 않고, 무능한 관료들과 맞서 싸우는 발전소 소장 평섭(정진영) 등 주요 캐릭터들은 지나치게 전형적이다.



또, 가족애를 강조하는 후반부의 몇몇 장면들은 눈물샘을 자극하기 위한 장치라는 것이 뻔히 들여다보인다. 무능한 대통령과 은폐를 시도하는 정부라는 설정도 더 이상 신선하지 않다. 그럼에도 '원전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룬 <판도라>는 김기덕 감독의 말처럼 "필요한 영화"가 분명하다. (공교롭게도 김기덕 감독이 연출한 후쿠시마 방사능 관련 영화 <스톱>이 <판도라>와 비슷한 시기에 개봉했다) <판도라>가 보여주는 것처럼, 원전으로 인한 재앙은 한 개인의 영웅적인 희생으로 극복될 수 없는 것이고, 발생하는 순간 아무런 대책과 해결책이 없다는 것이다. <판도라>는 이 부분을 놓친 채 '감동'에만 매달린다.


다소 아쉬움이 남지만, <판도라>의 대중적인 선택을 존중한다. 영화를 통해 더욱 많은 사람들이 '원전 사고'라는 재난이 남의 일이 아니라 우리에게도 닥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이 문제를 다양한 루트를 통해 공론화시켜 원전 정책을 재고하는 데까지 나아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니 말이다. <판도라>가 분명 그 역할을 할 것이라 믿는다. 경고등은 이미 여러차례 울렸다. 심지어 옆 나라는 재앙을 직접 겪기도 했다.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그리하여 문제들을 바로잡지 못한다면, 결국 '반복'되는 역사는 우리에게 되풀이될지도 모른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