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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제대로 읽은 <한끼줍쇼>, 붕괴된 도시의 저녁을 담아내다

너의길을가라 2016. 10. 20.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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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프로그램은 정글과도 같은 예능 생태계에서 국민MC라 불렸던 두 남자가 저녁 한 끼를 찾아 떠나는 여정을 담은 다큐멘터리이다" 


▲ <한끼줍쇼>의 관전 포인트 두 가지


1. 23년 만에 결성된 규동(이경규+강호동)이 보여주는 극과 극의 케미스트리

2. '도시의 저녁'과 '한 끼 식사'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식(食)큐멘터리



이경규와 강호동이 만났다. '처음'이란다. 이경규가 강호동을 데뷔(1993년)시킨 깊은 인연을 고려하면, 그조차도 신기한 일이다. 두 사람 모두 '최고'의 자리에서 한두 단계 내려왔다. '전(前) 국민MC'라는 호칭이 더 이상 낯설지 않다. '늙은' 아저씨와 '힘센' 아저씨의 만남. 그들이 숟가락 하나만 달랑 들고, 저녁 한 끼를 얻어먹기 위해 도심을 헤맨다. 제법 신선한 설정이다. 첫 회 시청률 2.822%(닐슨코리아 기준)은 성공적이다. 그동안 JTBC 예능프로그램이 거둔 첫 성적으로는 최고 수치다. 게다가 화제성도 높다. 


드디어 뭉친 두 사람은 제작진이 제시한 저녁 한 끼를 얻어 먹는 미션을 성공할 수 있을까? 이름이 많이 알려진 유명한 연예인이니까, 사람들은 흔쾌히 문을 열고 자신들의 '은밀한' 식탁으로 그들을 초대할까? O tvN <예림이네 만물 트럭>에서 딸 예림이와 함께 시골을 돌아다니며, 어르신들의 따뜻한 정을 체험했던 이경규는 미션을 아주 쉽게 생각했을지 모른다. 또, 오랫동안 KBS <1박 2일>을 하며 전국을 누볐던 강호동도 저녁 한 끼 얻어먹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니라 여겼을 것이다.



규칙

1. 오후 6시부터 8시까지 초인종을 누른다

2. 이미 저녁을 먹은 집은 제외한다

3. 한번 거절당한 집은 제외한다


규칙도 정했다. 마을을 '염탐'하며, 초인종을 누를 집을 '찜'하기도 했다. 의욕적이었던 그들이었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망원동 주민들은 이경규와 강호동의 초인종을 외면했다. 거듭된 거부에 다급해진 두 사람은 더욱 처절하게 매달렸지만, 결국 저녁 식사에 초대되지 못했다. 망원동 주민을 야박하다 탓할 일은 아니다. 누구라도 마찬가지 아닌가? 아무런 예고도 없이, 특별한 음식도 없이, 100% 리얼로, 자신의 식탁을 공개할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게다가 이 곳은 '시골'이 아니라 '도시'란 말이다!


'당연히' 그럴 리가 없었다. 사전 인터뷰에서는 '(저녁을) 준다'와 '안 준다'가 팽팽하게 맞서는 듯 보였지만, '준다'고 대답한 사람들이 어린 여학생과 아저씨들이었다는 점을 떠올려보면, 현실적이진 않은 의견인 셈이다. 그들이 저녁 시간에 집에서 식사를 준비하고 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애초에 '저녁 시간(18시~20시)'에 불이 들어와 있는 집조차 드물었다. 망원동에 거주하는 도시의 노동자들은 그보다 더 늦게 퇴근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이건 '인심'의 문제라기보다는 도시의 저녁이 얼마나 '붕괴'되었는지에 대한 문제인 셈이다.




"새로운 콘텐트의 예능을 만들기 위해 집중했다. 가장 리얼하고 가장 난감한 상황에 놓였을 때 이걸 풀어내는 MC들의 모습을 집중해서 볼 수 있다. <한끼줍쇼>는 예능이기도 하면서 다큐멘터리이기도 하다. 여러 장르가 보이는 프로그램이다." (방현영 PD), <일간스포츠>, [현장is] 이경규X강호동 뭉친 '한끼줍쇼' 강점 '셋'


<한끼줍쇼>에 대한 의견을 담은 어떤 기사는 '시대를 잘못 타고 난 예능'이라 혹평(안타까워했다고 할까?)했지만, 오히려 <한끼줍쇼>는 시대를 읽은 탁월한 예능 프로그램이다. 제작진은 두 MC가 '실패'할 줄 몰랐을까? 지금의 결과에 당혹스러워하고 있을까? 그리 순진한 접근을 했을 리가 없다. '식(食)큐멘터리'라는 타이틀은 프로그램에 담겨 있는 '진지함'을 드러내고 있다. 제작진은 '저녁 식사'가 갖고 있는 '상징성'에 대해 짚어보고, 특히 '도시의 저녁'의 풍경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고 싶었던 게 아닐까. 


다시 말해서 <한끼줍쇼>가 의도했던 그림은 1회 방송분처럼, 두 사람의 거듭된 실패였던 것이다. "신랑은 아침 8시에 눈뜨지마자 바로 출근하고 야근까지 하면 저녁 9시 돼서 퇴근하니까..." 지하철에서 만난 한 여성의 말처럼, 맞벌이 부부는 같은 식탁에 마주 앉아 한 끼를 먹기도 어렵다. 우리는 그런 세상에 살고 있는 셈이다. 마이클 무어의 <다음 침공은 어디?>에서 독일인들이 오후 2시에 퇴근해 개인적 삶을 즐기는 것과는 정말이지 하늘과 땅 차이다. (대한민국 노동자들의 연 평균 노동시간은 2,124시간으로 OECD 가입국 중 2위다.)



미션을 성공하지 못한 두 사람은 편의점에서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이리저리 헤매다가 컵라면을 먹고 있는 여고생들을 발견하고 함께 식사를 하게 된다. 이 장면은 <한끼줍쇼>의 의도치 않은 화룡점정(畵龍點睛)이라 할 만 한데, 고등학교 1학년인 두 학생은 학원 수업이 끝나고, 다음 학원에 가는 사이에 편의점을 들러 컵라면과 김밥으로 저녁을 대신하고 있었다. 어른이고 아이고 할 것 없이, 이미 저녁은 상실된 상태였다. 그날 이경규와 강호동이 만난 건, 도시의 차가운 인심이 아니라 바로 붕괴된 도시의 저녁이었다. 


만약 두 사람이 초인종을 누르자마자 저녁 식사를 얻어먹을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것이야말로 '실패'라 할 만하지 않을까? 그래서 <한끼줍쇼>는 시대를 잘 타고 난, 시대를 정확히 읽은 예능 프로그램인 것이다. 게다가 걱정할 필요도 없다. '실패'는 예능적으로도 매우 재미있는 그림이다. 이경규와 강호동의 당혹스러운 표정과 어찌할 바를 모르는 행동들이 웃음을 유발하고, 티격태격하는 모습이 의외의 재미를 가져온다. 오히려 '문제'는 한 끼를 얻어 먹지 못하는 게 아니라, 한 끼를 얻어 먹은 후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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