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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운 우리 새끼> 짧았던 5분, 김제동은 어떤 '대답'을 남겼나?

너의길을가라 2016. 9. 10.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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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동의 어머니는 계속해서 등장했지만, 더 이상 김제동의 출연 분량은 없었다.' 


SBS <다시쓰는 육아일기! 미운 우리 새끼> (이하 미운 우리 새끼) 1회를 보고나서 들었던 '의심'은 2회가 방송되자 '확신'으로 바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일이었다. 심지어 스튜디어 전체를 비추는 카메라에는 계속해서 김제동의 얼굴이 다른 출연자들과 함께 담겨 있었다. 그런데도 방송에 나오지 않는다? 의도적인 편집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의혹'이 제기되는 건 당연했다. 



<미운 우리 새끼>가 파일럿으로 방송 됐던 7월 20일과 <미운 우리 새끼>가 정규 편성돼 처음 전파를 탔던 8월 26일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자연스러운 사고의 흐름이었다. 그리고 한 가지 단서를 찾아냈다. 8월 5일, 김제동은 경북 성주 군청으로 달려갔다. 그 곳에는 '한반도 사드 배치 철회 촛불집회'가 열리고 있었고, 결국 김제동은 '신물이 난다는' 마이크를 잡고야 말았다. 그는 억수로 겁이 난다면서도 '죽을 때 이런 이야기 안 하면 쪽팔릴까 봐' 그 자리에 섰다고 말했다.


대본도 없이 무대 위에 오른 김제동은 막힘 없이 자신의 생각을 토해냈다. 그는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의 위법성'을 지적하면서 이 지긋지긋한 논쟁을 끝낼 해법을 제시하기도 했다. 또, '외부세력'에 대한 새로운 해석은 '해갈'을 느끼게끔 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김제동의 발언은 철저히 '대한민국 헌법'에 근거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흠 잡을 구석이 없었다. 논리적 전개는 물 흐르듯 했고, 호소력 있는 전달력은 경이로울 정도였다. 



'외압이 아니냐!'


누군가가 자신의 소신을 밝혔다고 해서 '탄압'을 받아야 하는 시대는 지나갔다고 믿었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위기'가 실체적으로 다가오는 작금의 대한민국에서 그와 같은 믿음은 세상 물정 모르는 철 없는 소리처럼 들린다. 물리적인 탄압은 없어졌을지 모르지만, 괴롬힘은 더욱 교묘해졌다. 어떤 식으로든 '사라지게 만드는' 건 똑같다. 김제동의 '삭제'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일이었다. 


다른 출연자의 촬영 분량이 아무리 많더라도 2회에서까지 등장하지 않는 건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었다. 결국 SBS <미운 우리 새끼> 측은 김제동의 하차 소식을 전하기에 이른다. "외압 같은 건 전혀 없었다. 김제동씨가 너무 바빠 촬영 스케줄을 맞추기 힘들었다. 여건이 되면 다음에라도 출연을 희망한다"는 것이 프로그램을 연출한 곽승영 PD의 대답이었다. 실미도의 명대사가 떠오르는 순간이다. "비겁한 변명입니다!"



김제동이 등장한 3회, 그러나 짧았던 5분 남짓의 분량.


결국 김제동은 3회에 가서야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고작 5분 남짓의 짧은 분량(전체 약 90분 방송에 김제동의 분량은 10분 정도에 불과했고, 그나마 김제동의 출연 분량은 5분 정도였다)이었다. 그리고 그의 빈자리를 토니안이 채웠다. 예고됐던 배턴 터치가 이뤄진 느낌이다. 다시 곽승영 PD의 대답으로 돌아가자. 사실 그건 '대답'이라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이미 촬영해둔 영상을 왜 3회에 가서야 방송한 것이란 말인가. "도대체 왜 3회인가?"라는 질문에 그 어떤 답도 주지 못한 것이다. 


물론 곽승영 PD의 '선의'를 믿는다. 그는 <힐링캠프> 때부터 김제동과 함께 방송을 해왔다. 새로 만든 프로그램에서도 김제동과 함께 하기로 했던 것을 보면, 두 사람 간에는 인간적인 유대 혹은 신뢰가 형성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김제동의 소속사 측도 "원래 파일럿(시범제작)에만 참여하기로 했는데 당시 촬영했던 미방송분을 3회에 내보내는 것"이라며 '쉴드'를 쳐주는 것 아닐까?



고작 5분의 방송이었지만, 김제동을 향한 곽승영 PD의 '미안함' 만큼은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다. 곽 PD는 짧은 시간에 '김제동'이라는 시대적 아이콘의 의미와 메시지를 담아내고자 애썼다. "손주가 아들의 이것만은 닮지 않아쓰면 좋겠다"는 질문으로 시작한 3회는 김제동의 엄마의 먹먹한 한마디로 이어졌다. "세상 다니면서 바른 소리 하면서 부모 간장 다 녹이는 거. 말을 마 대구 아가 총 쏘듯이 쏘댄다 하면서 좔좔좔좔좔좔~ 와 저카고 댕기노 참말로 내가"


이 부분을 굳이 편집하지 않고 김제동 엄마의 '바른 소리'라는 발언을 고스란히 내보낸 건, 어쩌면 곽 PD가 김제동에게 보내는 '믿음'처럼 보였다. 또, 아들을 바라보는 엄마의 진심을 김제동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마음도 담겨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너는 속이 시원할지 몰라도 엄마는 속 터진다"는 자막은 '엄마'의 마음이자 한편으로는 그를 잘 아는 동료인 곽 PD의 걱정이기도 했다. 



매니저 아들의 돌잔치에 참석한 김제동은 '한마디 해달라'는 거듭된 요청에 머뭇거리며 앞쪽으로 나가더니, 느닷없이 '오렌지'를 하나 집어 돌잡이에 놓았다. 그러면서 "제가 돌잔치 다닐 때마다 느낀 건데, 판사봉, 청진기도 좋은데요. 저는 유준이 인생이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이 (오렌지의) 상징은 행복의 상징으로, 혹시 유준이가 저걸 잡는다면 행복으로, 그랬으면 좋겠어요"라며 아이의 행복을 진심으로 빌어줬다. 


김제동이 지나가는 아이들마다 붙잡고 "밥 먹었냐?"라며 한마디씩을 건네는 이유가 '세월호 사건' 때문이라는 건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는 JTBC <김제동의 톡투유-걱정 말아요 그대>에서 '소개팅 비매너' 논란과 관련해 "세월호 사건 이후 지나가는 아이들 말 한마디 놓치지 않고 밥 사주는 게 내 인생의 목표가 됐다"고 밝힌 바 있다. 이제 막 돌을 맞이한 아이에게 무엇보다 '행복'을 빌어주는 그의 모습에서 일관성을 느끼는 동시에 깊은 감동을 받게 된다. 



"세상 다니면서 바른 소리 하면서 부모 간장 다 녹이는 것"을 담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김제동 엄마의 말은 故 노무현 대통령이 2002년 대통령 출마 연설에서 "제 어머니가 제가 남겨주셨던 제 가훈은 '야 이놈아 모난 돌이 정 맞는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눈치 보면서 살아라!'"였다고 말한 대목과 묘한 기시감을 이룬다. 꽤나 많은 세월이 지났지만, 그 '가훈'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故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 여부를 떠나서) 그 분이 '민주주의'에 있어 하나의 훌륭한 '대답'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것처럼, 김제동도 '엄마에게 늘 감사하고 미안하다'면서도 '내 인생이 있는 것이다. 스무 살이 넘었으니 엄마의 뜻대로만 살 수 없다'며, '엄마와 자식'이라는 어렵고도 힘든 관계에 또 하나의 명쾌한 '대답'을 남기고 <미운 우리 새끼>를 떠났다. 


이 글에서 '외압설'의 실체에 대한 명확한 답을 내릴 순 없다. 하지만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건 SBS 측의 태도가 엉성하고 미심쩍다는 것이다. 방송은 방송으로 말해야 한다. 최소한 김제동의 거취에 대한 설명을 덧붙였이는 게 '시청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겠는가? (곽승영 PD의 진심과는 별개로) 이런 식으로 도망가듯 문제를 회피하는 태도는 결국 '외압설'에 대한 의혹을 더욱 공고해지는 것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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