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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시대> 강이나와 오종규, 우리가 그들을 아파해야 하는 이유

너의길을가라 2016. 8. 20.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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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살아간다. 거칠 것이 없다. 화려한 미모와 성적 매력은 강이나의 '무기'다. 그는 남자들(이른바 '스폰서')에게 용돈을 받으며 금전적으로 여유 있는 삶을 살아간다. 그는 반문한다. "왜 굳이 어렵게 살아야 해?" 가볍고 쉬운 삶. 누군가는 그를 '쿨'하다고 말하고, 또 어떤 누군가는 그를 향해 손가락질 한다. 강이나는 굳이 부정하지 않고, 오히려 스스로를 '걸레'라고 지칭한다.



삶에 정착하지 못하고 부유(浮遊)하던 강이나는 우연히 바(bar)에서 오종규를 만난다. 다른 남자들과 달리 자신의 몸을 탐하지 않는 그에게 친근감을 느끼고, 자신의 속내를 터놓기 시작한다. 한편, 강이나의 사진을 잔뜩 모아놓는 등 의뭉스러운 눈빛을 보내던 오종규는 처음에는 '스토커' 쯤으로 치부됐지만, 점점 그의 존재감은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게다가 강이나가 가지고 있던 것과 똑같은 팔찌를 소유하고 있는 비밀스러움이라니.


"우리 연애할래요?" 어느 날 강이나가 오종규에게 제안을 하자, 오종규는 강이나를 어디론가 데려간다. 그 곳이 '사고 현장'이라는 걸 알아챈 강이나는 당황한다. 오종규는 "사람을 죽였다는 말 무슨 뜻이야? 원래 이 팔찌를 갖고 있던 아이, 내가 그 아이의 아버지다"라며 강이나에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급기야 강이나의 목을 조르며 "네가 우리 소리 팔찌를 왜 가지고 있냐, 내 딸을 네가 죽였냐"며 몰아세웠고, 강이나는 간신히 도망쳤다.



의문은 풀렸다. 과거 선박이 불에 타는 사고가 발생했고, 강물에 빠진 강이나(류화영)는 오종규(최덕문)의 딸과 살아남기 위해 가방을 놓고 사투를 벌였다. 결국 강이나는 살아 남았고, 오종규의 딸은 죽었다. 강이나는 목숨을 건졌지만, '삶'을 잃었다. 눈 앞에서 죽음을 목도한 강이나는 생사(生死)의 허탈 속에 살아간다. 그는 10년 만기 적금을 넣는 사람을 가장 한심하게 생각한다. 강이나에게 '내일'은 없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도식화한다면, 강이나는 살아남은 자다. 그리고 오종규는 진실을 알고 싶어하는 아버지다. 누군가를 죽이고(상징적인 의미로 이해해도 좋다) 살아남을 수밖에 없었던 자와 그로 인해 자신의 딸을 잃었던 아버지, 과연 누구에게 '죄'를 물을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그들은 '죄 지은 자'처럼 살아가야 했다. 국가와 사회는 그들을 외면했다. 사고의 피해자였던 두 사람은 배척 당했고, 수용되지 못했다. 




오종규의 등장으로 죽은 채 살아가고 있는 자신을 마주한 강이나는 용기를 낸다. 그래서 오종규를 찾아가 묻는다. "그러니까 내가 아저씨 딸 죽였어. 아저씨, 나도 죽일 거예요?" 그 역시 그날에서 한걸음도 벗어나지 못한 오종규는 강이나를 견디지 못하고 '당장 꺼지라'며 절규한다. 한참 뒤 오종규는 강이나를 찾아가 '다시 부적으로 쓰라'며 죽은 딸의 팔찌를 건넨다. 앞을 향해 한걸음 나아가기로 결심한 두 사람은 이런 대화를 나눈다.


강이나 : 왜요? 아저씨 나 미워하잖아요?

오종규 : 네가 뭐가 밉냐. 그냥 일이 그렇게 된 거지. 잘 지내.

강이나 : 어디 가요?

오종규 : 건너 건너 아는 사람이 일을 좀 같이 하자고 해서 

강이나 :  그때 말이에요. 그날 그때, 나 대신 아저씨 딸이 살았더라면, 아저씨 뭐라고 할래요? 아저씨 딸한테. 

오종규 : 살라고. 죄책감 같은 거 갖지 말고. 살아난 건 부끄러운 게 아니니까. 살라고. 잘 살라고. 그렇게 살아가라고 


JTBC <청춘시대> 9회 중에서


사실 강이나는 '잘' 살고 있었던 게 아니다. 남들이 보는 것처럼 '쿨'한 것도 아니었다. 그는 여전히 그날의 사고(事故)에 묶여 있었고, 그 강물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었다. 그 살아남기 위한 절박함과 몸짓들, 처절함이 깃든 삶에 대한 의지가 오히려 그를 현실 속에서 냉담하게 만들었다. 수없이 묻고 싶었을 것이다. 끊임없이 되물었을 것이다. "내가 살아 있어도 되는 걸까? 내가 '잘' 살아도 될까? 나를 망가뜨리지 않고 살아도 되는 걸까?"


떠나가는 오종규를 쫓아가 "나 대신 아저씨 딸이 살았더라면, 아저씨 뭐라고 할래요? 아저씨 딸한테."라고 묻는 강이나에겐 다시금 절박함이 묻어 있었다. 다시 그날의 사고, 그 사고의 강물 속으로 들어간 듯 보였다. 그런 그에게 오종규는 진솔한 마음을 담아 "죄책감 같은 거 갖지 말고. 살아난 건 부끄러운 게 아니니까. 살라고. 잘 살라고. 그렇게 살아가라고."라고 답한다. 



"세월호 유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죽지 않고 살아 있어서 미안합니다. 그리고 단원고 기억교실을 역사의 장으로 승화시키지 못하고, 지켜내지 못하고 버텨내지 못해 미안합니다. 제가 수 없이 되뇌는 게 있습니다. 우리 아이와 가족들을 빼앗겼지만 그 죽음을 기반으로 안전한 교육의 장이 만들어질 때까지 울지 않겠노라고.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아들 찬호를 잃고, 찬호를 보내는 날에도 울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울지 못하고 있습니다. 진상규명과 안전한 사회를 만들 때까지 그리고 저희가 죽기 전까지는 어떠한 세력과 어떠한 정부도 저희들을 막을 수 없을 것입니다. 시민 여러분, 끝까지 함께해 주십시오." (전명선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


우리가 '강이나'를 통해, 그리고 '오종규'를 통해 '세월호'를 떠올리지 못한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JTBC <청춘시대>를 통해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게 된다. 혹시 우리는 너무 쉽게 '세월호'를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여전히 세월호는 바닷속에 갇혀 있고, 인양 작업은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세월호를 '진실'로, 인양 작업을 '진상 규명'으로 바꿔 말해도 말이 맞아 떨어진다. 9명의 미수습자에 대한 이야기는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 


세월호 참사가 있은 지 858일 만에 희생된 단원고 학생들이 사용했던 '기억교실'의 임시 작업이 시작됐다. 유가족들은 눈물을 터뜨렸다. 기억은 오롯히 남았지만, 그건 유가족들만의 것인 듯 하다. 살아남은 이들은 강이나처럼 삶에 정착하지 못한 채 살아갈지 모른다. 죽은 이들의 가족들은 오종규처럼 스스로를 자책하며 '진실'을 찾아 헤맬 지 모른다. 국가와 사회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면, 그 구성원들인 우리들이 함께 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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