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킴의 극장

<수어사이드 스쿼드>, 무한한 가능성은 다 어디로 사라졌나

너의길을가라 2016. 8. 6.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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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히어로'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어쩌다가 악당(villain)들에게까지 인류의 미래를 기대야 하는 신세가 된 걸까. 인간들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그래서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눈앞의 불가해한 현상을 마주하고 한없이 무기력해진 채 '히어로'들의 등장만을 간절히 바라는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기보다 특수한 능력을 지닌 메타휴먼을 제어하기 위해 그들의 약점을 잡고 흔드는 '악랄한' 인간의 모습에 주목한다.



영화 속 악당들보다 더 악당스러운, 그러니까 실질적인 악역인 아만다 월러(바이올라 데이비스)는 정부 기밀 요원이다. 그는 국가 시스템을 강화한다는 명목으로 일명 자살 특공대를 조직하는 태스크 포스 X 프로젝트를 기획한다. 그리고 데드샷(윌 스미스), 할리 퀸(마고 로비), 캡틴 부메랑(제이 코트니), 킬러 크록(아데웰 아킨누오예 아바제), 엘 디아블로(제이 헤르난데즈) 등 최고의 능력을 지닌 악당들을 모집한다. 


와우, DC코믹스의 대표적인 빌런 캐릭터들이 한 데 모인 셈이다. 미국 정부는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에서 그려진 슈퍼맨과 배트맨의 대결로 인해 상당한 충격에 빠져 있는 상태에서 무기력하게 아만다 월러의 계획을 승인한다. '어벤져스'를 UN에 등록해 제약을 받도록 하는 '슈퍼히어로 등록제'라는 묵직한 고민을 던졌던 마블에 비해 DC코믹스의 세계는 아직 '어린애' 수준이다.



'나쁜 놈들이 세상을 구한다' 


악당들을 통해 더 나쁜 악당을 제거한다?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히어로들이 할 수 없는 특수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는 선택이라 변명한다. 물론 그런 '발상의 전환'이 유용한 지점도 있다. 가령, 정의롭기만 한 '히어로'들은 결코 할 수 없는 방법, 그러니까 탈(脫) 윤리적인 해결책으로 '악'을 제압하고자 한다면 악당들이 제격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두 가지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동안 '히어로'들이 보여준 문제 해결 방식이 그다지 '윤리적'이지 못했다는 점이다. 괜히 마블의 히어로들이 '슈퍼히어로 등록제'를 두고 갈등을 벌인 게 아니다. 또, 배트맨이 슈퍼맨을 견제하려고 했던 이유도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히어로들이 할 수 없는 특수 미션'이라는 게 무엇인지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전혀 설명하지 못했다. 


<수어사이드 스쿼드>가 택한 설정이 새삼스러운 건 아니다. 지난 2014년 방영된 화제의 드라마 OCN <나쁜 녀석들>은 '형량을 줄여준다'는 미끼로 소위 '쓰레기'로 불리는 범죄자들을 모아 더 나쁜 악을 제거하는 이야기를 다룬 적이 있다. 오구탁(김상중)을 중심으로 전설의 조폭 박웅철(마동석 분), 살인청부업자 정태수(조동혁 분), 천재적 두뇌를 가진 연쇄 살인범 이정문(박해진 분)이 팀을 이뤄 거대한 악과 맞서 싸운다.




이 때 시청자들은 각자의 '사연'을 갖고 있는 '악당'들의 싸움에 왠지 모르게 동화되고, 심지어 그들을 응원하게 된다. <수어사이드 스쿼드>가 보여주는 발상의 전환도 이와 같다. 다만, <나쁜 녀석들>이 설득력 있게 그 과정들을 설명했다면,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뉘앙스'만 가져다 쓰는 정도다. 데드샷의 절절한 부성애와 엘 디아블로의 가족에 대한 사랑이 표현되지만, 그 장면들이 오히려 영화의 흐름을 깨는 장애물로 작용하는 건 왜일까? 게다가 '조커'에 길들여진 비련한 할리퀸의 모습은 영화의 옥의 티에 가깝다.


영화의 세부적인 부분들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계속해보자. 우선, 이 영화의 '절정'은 놀랍게도 '초반'에 있다. 각각의 캐릭터들을 소개하는 부분에서 모든 '테크닉'을 소진한 듯 이 영화는 그 이후로 거침없는 내리막길을 내달린다. 개별적으로 놓고 봤을 땐 제법 매력적이었던 캐릭터들이 한 자리에 모였는데도 긴장감을 유발하지도, 특별한 시너지를 발휘하지도 못한다. 이건 시나리오의 함량 미달, 연출의 실패라고밖에 볼 수밖에 없을 듯 싶다.



개봉일을 맞추기 위해 감독(데이비드 에어)에게 각본을 작업할 수 있는 시간을 6주만 줬다는 뒷이야기는 이 영화의 허약한 뼈대를 보면 실감할 수 있다. 또, <배대슈>가 지나치게 어둡다는 혹평과 기대 이하의 흥행 성적(겨우 손익분기점인 8억 달러를 맞췄다) 때문에 편집 방향을 '유머러스한 톤'으로 급전환한 것은 오히려 독이 됐다.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재료를 가졌음에도, 충분한 준비 없이 성급히 제작된 영화가 얼마나 '재앙'이 될 수 있는지 잘 보여준다.


그렇다면 악당들이 상대해야 하는 더 큰 악당인 인챈트리스(카라 델레바인)과 그의 오빠는 어떨까? 마치 <엑스맨: 아포칼립스>의 '아포칼립스'를 연상시키는 '악'의 존재는 너무 뻔하고 지루하다. 상상력의 한계를 드러낸 것일까. 이미 크리스토퍼 놀란은 가장 무섭고 두려운 적은 오히려 '인간(조커)'라는 사실을 명징하게 보여줬지만, 이후의 히어로 영화들은 그 진리를 무시하고 고루한 옛 추억에 잠겨 버렸다. 



이야기에서 색다른 면을 보여주지 못하는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결국 '캐릭터'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를 가지고 있음에도 캐릭터들은 조화되지 못한 채 부유하고, 그나마 매력적인 캐릭터를 찾기도 힘들다. '히어로물'의 특성을 전혀 살리지 못한 것이다. '데드샷'은 리더의 역할을 하느라 평범한 느낌을 벗어나지 못하고, 간간히 등장하는 '조커'의 연기는 다소 과잉으로 보인다. 


역시 가장 돋보이는 건 '할리 퀸'인데, 마고 로비는 <레전드 오브 타잔>에서의 청순함과는 180도 다른 연기를 펼친다. 팔색조라는 표현이 적절하다. 물론 '섹스 어필'에 치중한 점과 그를 향한 '성희롱' 등이 난무하는 장면들이 상당히 포함돼 있어 보기에 따라서는 불만이 제기 될 여지가 충분하다. 그럼에도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할리퀸'을 위한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마고 로비는 독보적으로 빛난다. 여러 캐릭터들이 총 등장하는 데, 고작 하나만 각인시키는 정도라면 손해 보는 장사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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