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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는 가해자 잘못", 곽현화의 일침을 응원한다

너의길을가라 2016. 6. 28.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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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매(건강미)'를 강조하고, 섹스 어필(sex appeal)에 치중하는 개그우먼(을 부정적으로 보는 건 아니다)으로'만' 여겼던 그를 다시 생각하게 된 건 몇 년 전에 <나는 딴따라다>라는 제목의 '팟캐스트(podcast)'를 듬성듬성 들으면서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생각에 대한 동의 여부와는 별개로 자신만의 생각들을 또렷하게 전달하는 것을 보면서 굉장히 건강한 사고(思考)를 하는 여성이라 그의 이미지를 재설정하게 됐다.


그리고 한참동안 그 이름을 잊은 채 지냈다. 팟캐스트와 거리가 멀어진 탓도 있었지만(그는 꾸준히 팟캐스트 쪽에서 활동했던 것으로 보인다), '정치적 성향(과는 무관하게 그녀의 생각들은 건강하다)'이 찍힌 그녀가 메이저 방송으로 복귀하는 게 만만치 않았던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오랜만에 그의 '목소리(글)'를 듣게 됐는데, 애석하게도 나쁜 소식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그는 '건강'했고, 그에 힘입어 응원의 글을 쓰고자 한다.



지난 6월 25일 곽현화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장문의 글은 남겼다. (페이스북에 로그인할 수 있다면 직접 전문을 확인해보는 편이 좋겠다. https://www.facebook.com/hyunhwakwak/?fref=ts) 그는 자신이 출연했던 영화 <전망 좋은 집(2002)>의 노출 장면을 아무런 동의 없이 공개한 감독 이수성을 고소했고, 그 소송을 몇 년 동안 이어오고 있었다. 


그는 "소송하는 몇 년 동안 너무 힘들어서 사람들이 뭐라고 떠들든 일절 신경쓰지 말자고 생각"했지만, "쏟아지는 기사와 댓글을 무시하지 못하고 읽"고 "너무 마음이 아"프고 "속이 상"했다고 심경을 밝혔다. 소송의 내용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함부로 떠벌리는 말들이 당사자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줬겠는가. 충분히 짐작할 만 하다. 




"말의 힘이란 것이 얼마나 강한지, 한 줄의 댓글이 사람에게 얼마나 상처를 줄수 있는지 다시금 깨닫게 되"었기에 사건의 경위를 차분하게 짚어나갔다. 곽현화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그는 이수성 감독와 '뒷태'만 촬영하기로 합의를 하고 촬영에 들어갔지만, 노출 장면을 찍기 며칠 전부터 이수성 감독이 "노출신은 극의 흐름상 필요하다. 곽현화씨는 배우로써 나중에 후회할 수 있다. 연기자로서 자리매김하고 싶지 않느냐"면서 설득을 했다고 한다.


뭘 후회할 수 있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곽현화는 그 제안에 "싫다"고 거절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감독의 "촬영 후 편집 과정에서 제외 여부를 결정하자"는 후속 제안을 수용했는데, 그 이유는 "첫 영화였고, 연기에 대한 욕심도 났"고, 또 "이 감독의 약속을 믿었기" 때문이었다. 극장판에서는 곽현화의 요구가 반영돼 노출 장면이 빠졌지만, 몇 년 후 그 노출 장면이 IPTV에 영화 '감독판'으로 나오는 것을 확인하고 소송을 진행하게 된 것이다.


곽현화의 주장을 고스란히 옮겨왔는데, 그가 이수성 감독이 "곽현화씨 내가 잘못했다. 동의없이 그 장면을 넣었다"고 말한 녹취록 증거가 있다고 주장하므로 그것이 사실이라는 전제하에, 글의 개연성 및 설득력과 신빙성은 충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감독의 편집권'을 강조하면서 곽현화를 탓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합의'가 우선이고, 그 다음이 '편집권' 아닐까? 기존의 합의를 무시하는 감독의 재량은 월권일 뿐이다.


http://young.hyundai.com/magazine/life/detail.do?seq=13273YOUNG HYUNDAI 글로벌 기자단 OOO이 쓴 글에서 발췌한 것인데, 내용에 위 문구에 대한 비판이 실려 있지 않아 살짝 당혹스럽다.


또, 곽현화는 자신의 상황을 빗대서 성범죄에 대한 왜곡된 시선들을 집어냈다. "성범죄는 범죄입니다. 가해자의 잘못입니다. 피해자의 잘못이 아니"라고 일갈하면서, 자신의 경우에도 "감독의 잘못이지, 작품 선택을 잘못한 배우의 탓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절도와 같은 다른 범죄들과는 달리 성범죄에 대해서만 유독 사람들이 '피해자'의 탓을 하고, 피해자에게 귀책 사유를 전가하는 사회 전반의 불합리를 지적한 것이다.


"그러니 왜 짧은 치마를 입었냐, 왜 술을 많이 먹었냐, 니가 처신을 잘못한거다"라는 말로 성범죄를 '합리화'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누구'의 편에 서 있는가. (어쩌면 그들은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정확히 모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왜 우리는 애써 가해자를 두둔하고, 피해자를 상처입혀 두 번 죽이는가. '짧은 치마'와 '술에 취한 상태'가 성범죄를 야기한다고 생각하는 '관점'에 유독 '남성의 입장'이 진하게 배어있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성욕을 주체하지 못하는' 미성숙한 개체를 왜 우리가 배려하고 존중해줘야 하는 걸까? 왜 '짐승'에 불과한 그들을 우리가 이해해줘야 하는 걸까? 짧은 치마를 입은 여성을 보면(혹은 술에 취한 여성을 보면) 남성들은 죄다 눈이 훽 돌아서 '성범죄'를 저지르는가? 이 입장을 수용하는 건, 남성 스스로도 창피스러운 일이다. 따라서 성범죄의 원인을 피해자의 무엇으로부터 찾으려는 시도들은 멍청한 짓이다.


'처신을 잘못한 거야', '여자는 조신해야지'라는 표현에는 남성중심적 사고방식이 짙게 깔려 있다. 도대체 처신을 잘못한 것은 누구일까? 가해자(범죄자)일까, 피해자일까? '여자는 조신해야 한다'는 사고방식의 주체는 누구인가. 여성 스스로 자신들을 '조신'이라는 틀 속에 가둬야만 했다면, 그건 사회에 만연한 '가부장제'와 연관이 있을 것이다. 과연 왜 그래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 어떤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대답을 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곽현화는 "예전에는 '내가 이런 직업을 가졌으니 어쩔수 없는 문제'라고 자신을 다독였겠지만 이건 아닌 것 같다"며 "인격모독, 허위사실을 적은 댓글은 고소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마음 고생을 하며 힘들어했을 그가 자신의 목소리를 개진한 것을 응원한다. 대중의 사랑을 받고 살아가는 연예인이라고 해도 '감내할 수 있는 선'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범죄'의 대상이 되는 '댓글'까지 용인할 이유는 없다. 마찬가지로 '내가 여자니까 어쩔 수 없는 문제'라며 자신을 다독여야 했을 수많은 여성들에게 이 사회는 반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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