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듣는 귀

브렉시트에서 나타난 세대 갈등, 대한민국과 참 많이 닮았다

너의길을가라 2016. 6. 27.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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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낱 나비의 날갯짓조차 날씨를 변화시켜 지구 반대편에 폭풍을 야기한다는 데, '영국(United Kingdom)'이 스스로도 '무슨 짓'을 하는지 알지 못한 채 '신나게' 흔들어댄 날갯짓은 그 후폭풍이 얼마나 크고 광범위하겠는가. 혹자들은 과거의 영광을 잃어버린 조그마한 섬나라 하나의 선택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이냐고 애써 무시하려 들지만, 영국의 유럽 연합(EU) 탈퇴, 즉 브렉시트(Brexit)는 그리 간단히 넘길 일은 아닌 듯 하다.


'원인'을 진단하고, '결과'를 예측하는 시도들이 끊임없이 진행되고 있고, 그러한 다양한 이야기들이 뉴스를 통해 끊임없이 전달되고 있다. 기존의 글에서도 여러 차례 언급했지만, 하나의 사건(현상)이 발생하는 데 있어 '단일한' 원인만 존재하는 경우는 없다. (자신만의) 정답을 찾아내 그 탓(덕분)이라 규정하면 편하고 좋겠지만, 복합적인 층위를 이루고 있는 '까닭'들을 무 자르듯 명쾌하게 잘라내긴 어렵다.


ⓒ 아시아경제


발생한 사건의 이유를 찾는 일도 이처럼 어려운데, 일어나지도 않은 '결과(예측)'들을 정리하는 건 얼마나 난해한 일이겠는가. 게다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진단과 분석, 예측이라고 하는 인간의 작업들은 죄다 '그들이 가진 눈'을 통해 이뤄진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제각각'일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최대한 다양한 관점의 정보들을 종합적으로 습득할 필요가 있다. 공부에 있어 좌 · 우, 진보 · 보수의 담을 쌓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그 누구보다 절체절명의 위기에 봉착한 것은 다름 아닌 '브렉시트'의 장본인, 영국일 것이다. '백짓장도 맞들자'는 심정으로 머리를 맞대로 궁리를 해야 할 처지인데 그마저도 녹록치 않아 보인다. 왜냐하면 어느 한 쪽의 일방적인 승리가 아니라 (탈퇴) 찬성 51.9%, 반대 48.1%라는 박빙의 결과가 나왔기 때인데, 영국 내부의 묶은 갈등들이 여기저기에서 분출되고 있는 양상으로 진행되고 있다.


중앙일보


▶ '브렉시트' 개표 후 영국 구글에서 가장 많이 검색된 질문 1, 2위

"EU가 뭐예요?(What is the EU?)"

"EU를 떠나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What does it mean to leave the EU?)"


'브렉시트'와 관련해서 흥미로운 부분은 투표율이 72%에 달했지만, 정작 '브렉시트'에 대한 영국인들의 '이해'가 그다지 높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혹자들은 '대중의 무지'를 지적하는 한편 '직접 민주주의의 한계'를 꼬집기도 한다. 그렇다고 '대의제'를 통해 선출된 '대표'들은 무지로부터 자유로운가? 하나의 사안을 놓고 우물 안 개구리 식의 논평밖에 내놓지 못하는 식자(識者)들이 대중보다 월등한 존재라 말할 수 있을까?


투표 결과에서 무엇보다 눈에 띄는 부분은 '연령대별 투표 성향'이다. 연령이 낮을수록 '잔류'가 압도적으로 높고, 연령이 높을수록 탈퇴가 많아진다. 이른바 '베이비붐 세대(1946년~1965년) VS 밀레니엄 세대(1980년대 초반~2000년대 초반)'의 세대 갈등이 표출된 셈인데, 젊은층들은 "다음 세대의 미래를 결정하는 데 왜 80세 이상이 투표하는지 모르겠다", "젊은이들은 미래를 빼앗겼다"며 분노를 쏟아내고 있다고 한다. (<중앙일보>, 젊은층 "왜 80대가 우리 일 결정하나, 미래 빼앗겼다" 분노



브렉시트 연령대별 투표 성향은 대한민국의 연령대별 투표 성향과 묘하게 맞닿아 있다. 어느 선거를 예로 들어도 무방할 정도로 매번 같은 결과가 나오지만, 지난 2012년 치러졌던 18대 대통령 선거 연령대별 득표율(방송 3차 출구조사 기준)을 한번 살펴보자. 당시 민주당의 문재인 후보는 20대 이하와 30대로부터 압도적인 지지를 얻었고, 40대에서도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를 앞질렀다. 반면, 박근혜 후보는 50대 이상으로부터 몰표를 받았다. 


'패배'를 경험한 40대와 수적으로 '열세'에 놓여 있는 2, 30대 청년층은 자신들의 표가 결과로 반영되지 않는 현실에 분노를 느끼고 있다. 나이가 들수록 정치적 성향(뿐만 아니다)이 보수화되는 것은 지극히 '인간적'인 추세라고 볼 수 있고, 이는 대한민국에 국한된 현상도 아니다. 이를 '인류' 차원의 '공통점'이라 말해도 무방할 정도다. 출산율은 지속적으로 낮아져왔고, 결국 젊은 세대는 '쪽수'에서 밀릴 수밖에 없게 됐다.



자연스럽게 국가 혹은 그보다 큰 공동체의 '결정권'을 '노인층(이라 부르면 기분 나빠할 연령대도 있겠지만)'이 잡게 됐다. 젊은 세대의 입장에선 이를 막을(혹은 뒤집을) 방법이 마땅치 않다. 그래서 영국의 경우에는 16세에게도 투표권을 줘야 한다는 청원 운동을 벌이고 있고, 대한민국도 18세에게 투표권을 주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다음 세대의 미래를 결정하는 데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노인들의 의견에 좌지우지되야 하는 현실에 대해 '의문'을 가지는 건 당연하다. 물론 tvN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는 그들에게도 '지금'이 가장 '찬란한 시절'이고, '오늘'을 살아가는 데 '젊음'과 '나이 듦'이 '차별'을 두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줬지만, 막상 (투표와 같은) 현실에서 접하는 괴리는 상당히 크고 절박하고 첨예하다.



'나이듦'이 '보수화'로 귀결되는 인류적 현상처럼 '세대 교체' 역시 인류가 수 천년을 살아온 방식 중 하나였다. 의학이 발달하고 삶의 양태가 과거와 달라졌다 하더라도, 나이가 들면 물리적 힘이 약해지고 사고의 경직성도 두드러진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다음 세대에게 자신들이 차지했던 자리를 물려주고, '관록'과 '경험'을 통해 '조언자' 역할를 자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처럼 '18세에게 투표권을 줘야 한다'를 비롯해 자라나는 세대에게, 미래를 살아가야 할 주체인 청년들에게 '더 많은' 결정권을 줘야 한다는 주장들은 제법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때로는 그 주장에 '비릿한 냄새'가 배어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된다. 가령, '정치(선거)'와 같은 큰 담론 속에서 그런 주장들이 상당히 격렬하게 다뤄지지만, 정작 그들이 절실히 요구하는 사안들에 있어서 사회는 그 주체들을 충분히 존중하고 있는지 의문스럽다.




가령, 학교의 주인은 누구인가? 누구나 '학생'이라 쉽게 말하겠지만, 정작 학교라는 사회 속에서 학생들은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감옥의 수형자에 불과하지 않던가. 그들에게 선택권이라는 게 있을까. 보수적인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온갖 규율들은 학생들을 억압하고 통제한다. 거기에서 벗어나면 '비행' 혹은 '불량'이라는 딱지가 붙는다. 조금만 제 목소리를 내면, '어린 게 뭘 알아!'라며 타박하기 일쑤다.


가정이라고 다를까? 자녀들에게 '의사 결정권'이 주어지는 수평적 구조를 지닌 가정이 얼마나 될까? '엄마가 시키는 대로 해!', '아빠 말 들어!'의 명령과 그에 대한 수용밖에 없는 수직적 관계가 아니던가. 브렉시트 결과를 두고, 영국의 젊은층의 분노를 부고 대한민국의 진보 성향(이라고 믿는) '댓글러'들은 '우리와 같다'며 혀를 찬다. 그들의 나이를 주로 40대(중간층)로 추정해본다면, 과연 그들이 실생활에서 얼마나 '젊은 세대'를 인정해왔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제법 '진보적'이니까, 선거에서는 유용한 존재라 여기는 것일까? 투표 연령층을 더 낮춰야 한다는 주장에 적극 동의하면서도, 미래를 살아가야(짊어져야) 할 젊은층의 의견이 보다 주도적으로 개진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적극 찬동하면서도, 실생활에 있어 그들을 전혀 존중하지 않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 소위 젊은층을 이용하려는 모습은 심히 불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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