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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 발언, '누가' 김무성에게 '어떤' 돌을 던지나

너의길을가라 2016. 1. 31.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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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조선'에서 임신(妊娠)과 출산(出産)은 점차 죄악처럼 여겨지는 추세다. '마치 지옥과도 같은 이 나라에 내 아이를 던져놓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라는 의문이 부모들을 끊임없이 괴롭히고 있는 것이다. 경쟁은 살인적으로 치닫고 있지만, 복지를 비롯한 사회 안전망은 점차 허약해지고 있다. 이른바 '금수저와 흙수저'로 대변되는 학력 · 계층 · 직업 세습의 고착화(固着化)는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사회통합 실태진단 및 대응방안Ⅱ' 연구보고서를 통해 직업 지위와 계층의 고착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고 밝혔다. ('금수저 흙수저' 사실이었네..학력·계층·직업세습 고착화) 전근대 사회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계급 사회'의 도래가 재현되고 있는 셈이다. 물론 애초에 계층(階層)을 계급(階級)과 동의어로 받아들였던 이들에게 이러한 소식은 별로 놀랄 일은 아니다.


토머스 로버트 맬서스(Thomas Robert Malthus)는 『인구론』에서 인구 증가(기하급수적)가 식량 공급(산술급수적)을 추월하기 때문에 인류의 운명은 비관적일 수밖에 없다고 단언했다. 맬서스의 비관적인 관점들은 경제학의 특유의 낙관주의를 견제하는 역할을 했고, 최저생계비를 임금책정의 기준으로 삼는 임금이론을 정당화하는 구실이 되기도 했다. 



인구 증가에 대한 그의 부정적 예언을 수용한 인류는 산아제한 등을 통해 인구 증가를 철저히 통제(아프리카를 비롯한 제3세계는 제외)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는 오히려 정반대의 고민을 낳았다. 바로 '저출산 문제'다. 물론 저출산 문제는 대한민국만 겪고 있는 진통은 아니다. 가까운 일본뿐만 아니라 유럽도 이미 저출산 · 고령화 문제를 경험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와 시민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했다.


출산 장려에서부터 복지 정책까지 다양한 정책들이 시행됐고, 일부 유럽 국가의 경우에는 '이민 정책'을 본격적으로 활용(그에 따른 부작용으로 곤란을 겪고 있다)하기도 했다. '기회의 땅'이라는 이름으로 이민에 가장 활발히 대처했던 미국의 예를 본받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어떻게 할 것인가? '저출산 문제'에 대해 정부는 어떤 준비를 하고 있을까?



지난 29일 국회에서 '저출산대책특별위원회 제7차 회의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새누리당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를 비롯해서 유일호 기획재정부 장관, 이준식 교육부 장관을 비롯해 각 정부부처 수장이 참석했다. 그야말로 메머드급 회의가 마련됐던 셈인데, 저출산 문제를 풀어내기 위해 여러가지 정책들이 논의됐지만 정작 모든 스포트라이트는 김무성 대표에게로 집중됐다. '조선족을 대거 받아들여야 한다'는 그의 발언 때문이었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은 저출산ㆍ고령화의 이유가 가장 크다. 더 큰 문제는 일본의 출산율이 최악일 때 1.2명이었는데, 우리나라는 이 수치가 1.08명까지 떨어졌다는 것이다. 독일 역시 출산율이 1.34명까지 떨어져 이민정책을 시행했으나 터키인 400만명이 몰려들어 결국 문을 닫았다. 우리는 조선족이 있어 문화쇼크를 줄일 수 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십자포화(十字砲火)를 연상케 할 정도의 엄청난 비난을 받았던 김무성 대표의 발언 내용이다. SNS를 비롯한 각종 커뮤니티의 네티즌들 사이에서 '중국동포에 대한 비하 발언'이라는 반응부터 '여성에 대한 차별적 발언'이라는 비판, '저출산 문제의 근본적인 대책이 아니'라는 지적도 이어졌다. 야당의 반응도 쌀쌀하긴 마찬가지였다. 


불어민주당의 김성수 대변인은 "저출산 대책으로 조선족을 받아들이자니 황당무계하다. 새누리당의 저출산 문제에 대한 천박한 인식을 확인하는 것 같아 기가 막히다"고 쏘아붙였고, 국민의당 최원식 대변인은 "여성들을 출산만을 위한 존재로 격하시키는 시대역행적 인식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김 대표의 차별적이고 비하적인 발언에 대한 사과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조선족이 애 낳는 기계도 아닌데, '연탄색깔' 인종비하에 이은 조선족 비하"라며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지난 2015년 12월 연탄배달 봉사황동 도중 나이지리아 출신 유학생에게 "니는 연탄 색깔하고 얼굴 색깔이 똑같네"라는 인종비하 발언을 했던 것을 꼬집은 것이다. 김무성 대표의 '수준'이야 굳이 재론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조선족을 대거 받아들이자'는 이번 발언은 달리 생각할 부분이 있다. 우선, '출산율'과 '조선족'이 겹쳐지면서 오해가 생겨났다. 김무성 대표의 발언은 '조선족을 받아들여 애를 낳게 하자'는 것이라기보다는 생산 인구의 감소를 해결하기 위한 이민정책의 일환으로 해석해야 한다. 그 스스로도 "조선족을 대거 받아들여 내년부터 감소세가 시작될 생산인구 감소 등의 문제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중국 동포가 200만 명으로 추산할 때, 경제활동 인구의 40% 이상에 해당하는 65만 명이 이미 대한민국에 거주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김 대표의 주장이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으로 보긴 어렵다. 따라서 비판의 초점은 여기에 맞춰져야 한다. 자신의 주장에 대한 구체적인 점검조차 하지 않은 여당 대표의 무책임함과 무능함이랄까?  



조선족 


(朝鮮族,중국어 간체: 朝鲜族, 정체: 朝鮮族, 병음: Cháoxiǎnzú, 영어: Korean Chinese, Chinese people of Korean descent)은 중화인민공화국에 거주하는 중화인민공화국 국적의 한민족들을 가리키는 용어로, 중화인민공화국 정부의 민족 분류에서는 중화인민공화국의 56개 민족 가운데 하나인 조선족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 법무부의 출입국 외국인 정책본부가 작성하는 통계 자료에서는 ‘한국계 중국인’(韓國系中國人)이라고 표기하고 있다. (위키백과)


김무성 대표의 발언을 선해(善解)한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문제는 남는다. 우선, '조선족'이라는 표현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흔히 사용하는 '조선족'이라는 지칭어는 공식적인 자리에서 여당의 대표가 쓰기엔 부적절하다.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의 지적처럼, ''조선족'이란 중국인들이 중국 내 소수민족의 하나인 조선인을 부르는 이름'이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이 '조선족'을 부를 때는 '중국교포, 재중교포, 중국동포'라고 불러야 한다.


물론 일반 시민들이 일상적인 대화 속에서 이를 명확히 구분해서 사용하진 않는(경우가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오히려 '조선족'이라는 표현이 훨씬 더 귀와 입에 익을 것이다. 이는 필자도 반성해야 할 부분이다. 하지만 일반 시민들의 언어와 여당의 대표의 공식적인 석상에서의 언어를 같은 선상에서 놓고 평가할 수 있겠는가. '조선족'이라는 말에 담겨 있는 부정적인 뉘앙스를 인지했다면 더욱 조심했어야 했다. 게다가 '이민 정책'의 방안으로 제시할 것이었다면 말이다.



오원춘 보는듯한 시선에 절망하는 조선족 <한국일보>, 2015. 12. 19.

"다 나쁜 사람은 아닌데.." 중국동포 사회 전전긍긍 <JTBC>, 2015. 4. 9. 

20·30대 청년 10명 중 6명, '조선족'에 부정적 <뉴시스>, 2015. 11. 13.


이처럼 언론도 '조선족'이라는 지칭어를 무분별하게 사용하고 있다.


'조선족 대거 유입'이라는 여당 대표의 발언에 시민들이 더욱 분노하는 것은 '중국 동포'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더불어 '다문화정책'에 대한 비판적인 인식 때문일 것이다. 오원춘, 박춘풍을 비롯해 김하일까지, 대한민국 사회를 떠들썩했던 흉악 범죄의 범인이 중국 동포로 확인되면서 그들을 향한 사회적 시선은 싸늘하게 변해갔다. 모든 중국 동포가 흉악 범죄의 가해자가 아님에도 어쩔 수 없이 '이미지'는 굳어져갔다. 


또, '외노자' 100만 시대를 맞이하면서 일자리 경쟁을 벌여야 하는 세대의 입장에서 중국 동포는 부담스러운 존재가 되어 버렸다. 과연 어디까지, 얼마나 받아들여야 하는가에 대한 가이드 라인이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다문화정책'은 다수의 시민들에게 '공포'로 다가왔다. 급변하는 사회적 분위기, 이민 정책의 필요성 못지 않게 제도적 장치 마련과 시민 의식의 성숙이 뒷받침되어야 했지만, 그에 대한 준비는 미흡했던 것이 사실이다. 



무엇보다 김무성 대표의 발언이 건드린 역린(逆鱗)은 그것이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는 본질적인 해답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이민 정책을 시도하는 것은 하나의 돌파구가 될 수 있지만, 사회적 공감대를 쌓기 전에 성급하게 적용하기는 무리가 따를 뿐더러 저출산의 원인에 대한 고민이 결여되어 있는 발상이라는 점이 더욱 문제다. 저출산은 무엇 때문에 생기는가. 그것은 '헬조선'이라는 말로 표상되는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비롯된다.


비정상적인 경쟁 구도, 세대 간 갈등, 복지의 허약화, 사회적 안전망의 부실화, 부패와 비리로 점철된 사회, 이를 풀어낼 정치의 상실이야 말로 저출산의 근본 원인이 아니던가? '노오력'으로 극복할 수 없다는 무력감과 허탈감이 '저출산'으로 이어진 것 아니냐는 말이다. 이에 대한 고민 없이 덜컥 '조선족을 데려오면 된다'는 여당 대표의 발언은 무책임하게 들릴 수밖에 없다. 


김무성 대표의 발언에 오해의 소지가 있었고, 이에 대한 비판들도 곡해에서 비롯된 것이 있었다. 당사자는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김 대표의 고민의 깊이가 '천박'했던 것은 따질 필요도 없는 사실이다. 또, 발언의 경박성도 분명 비난받아야 마땅하다. 한없이 가벼웠던 여당 대표의 얕은 고민들이 안타깝기만 하다. 자, 이제 제대로 된 '돌'을 김무성에게 던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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