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킴의 극장

<로봇, 소리>, 딸을 찾아나선 아빠의 가슴 뭉클한 여정

너의길을가라 2016. 1. 28.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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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면서도 낯익다. 영화 <로봇, 소리>는 2003년 2월 18일 실제 발생했던 대구 지하철 참사를 모티브로 부성애(父性愛)라는 주제를 담고 있다. 하지만 로봇이라고 하는 SF적인 요소를 집어넣으면서 전형성을 탈피했다. 지극히 한국적인 정서를 바탕으로 하고 있음에도 이 영화가 '낯설다'는 인상을 주는 까닭은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의 참신함 덕분이다. 거기에 로봇, '소리'의 역할이 큰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죽는 일을 참혹할 참, 근심할 척을 써서 '참척(慘慽)'이라 하고,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부모의 고통을 '참척지통(慘慽之痛)'이라고 부른다. 참혹한 고통과 심장을 파고 드는 근심, 그 어떤 고통보다도 끔찍한 아픔일 것이다. 자식을 잃은 부모를 가리키는 호칭이 딱히 없는 것은 그 아픔이 지나치게 크기 때문이라고 한다. 감히 어찌 헤아릴 수 있겠는가.



"딸 아이가 다 커서 혼자 여행가겠다고 할 때에 대한 마음의 준비도 하고 있어요. 언젠가 결혼도 하겠죠. 자식이 혼자서도 설 수 있게 되면 품에서 떠나보내야 하는데, 영화에선 해관이 그걸 못했어요. 그래서 해관에겐 소리를 잘 보내주는 것이 중요한 의식이었죠." (이성민)


아빠 해관(이성민)은 무려 10년동안 실종된 딸 유주(채수빈)을 찾아 전국을 헤맨다. 곳곳에 실종 전단지를 붙이고, 이를 본 시민들의 제보를 듣고 외딴 섬까지 발길을 옮긴다. 신빙성을 따지지 않고, 아주 작은 실마리조차 놓치지 않으려는 그의 모습에서 절박함이 느껴진다. 그의 처절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해관을 제외한 모든 사람(관객도 포함된다)은 딸인 유주가 실종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어쩌면 그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단지 외면하고 싶었을 뿐.


10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해관이 그토록 피하고 싶었던 '진실'은 우연한 기회에 로봇 '소리'를 만나게 되면서 조금씩 수면 위로 떠오른다. 세상의 모든 소리를 기억하고, 위치 추적과 감청까지 가능한 인공지능이 탑재된 로봇 '소리'가 주는 '힌트'를 따라 딸의 발자취를 쫓아가면서 해관은 그 진실들과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깨닫게 된다. 내가 알고 있는 딸이 유주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평생을 먹이고 재우며 키운 딸이라 할지라도 끊임없는 대화와 이해, 그러한 노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결코 서로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해관은 딸과 진정한 화해를 하게 된다. 이처럼 <로봇, 소리>는 화해와 치유를 이야기한다. 또, 부모의 역할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묻는다. '보호'의 의미에 대해서 고민하게 한다.


"보호는 고마운 겁니까?"

"고맙습니다. 보호해줘서!"


"보호는 고마운 겁니까?"라고 묻는 '소리'의 질문은 딸의 '보호자'로서만 존재했던 해관의 가슴을 아프게 했을 것이다. 그것은 마치 10년 전에 잃어버렸던 딸이 건네는 물음처럼 들려왔을 것이다. 지키지 못했던 딸에 대한 부채감이 더해져 해관은 '소리'를 끝까지 지키려고 애쓴다. 그 과정에서 그는 '소리'가 하고 싶은 일, 해야 하는 일을 이루도록 도와주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보호'라는 것을 깨닫는다. 



"근데 어떡하지? 우리 화해할 시간이 없을 것 같아. 늘 아빠 지켜보고 있을게, 사랑해요"


<로봇, 소리>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무뚝뚝한 해관과 여성성을 지닌 로봇 '소리'가 만들어가는 따뜻하면서도 견고한 소통이다. 과학적인 허술함이라는 핸디캡을 안고 있지만, 그 부분에 살짝 눈을 감는다면(영화 전반에 흐르는 유머 코드는 이를 위한 것으로 보인다) 해관과 '소리'가 보여주는 감동은 생각보다 진하게 다가온다. 


특히 딸의 흔적을 찾아 떠나는 동행에 나선 '동료'에서 어느새 10년 전 잃어버렸던 '딸'이 투영되면서 '치유'로 나아가는 장면들은 눈시울을 붉히기에 충분하다 . '연기를 할 수 없는(물론 나름의 연기를 하긴 한다)' 차가운 로봇에 따스한 생명력을 불어넣고, 놀라운 연기 호흡(!)을 연출해낸 것은 오로지 이성민의 공이다. 특유의 일상성을 녹여낸 연기를 선보이는 이성민은 <로봇, 소리>에서도 그만의 호소력 짙은 연기로 관객들을 몰입시킨다.


이야기가 단순하고 개연성이 떨어지는 측면이 있지만, '신파'로 흐를 소지가 다분한 주제를 참신한 소재를 통해 색다르게 풀어낸 점엔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러면서도 영화를 통해 말하고 싶었던 메시지를 놓치지 않고 관객들에게 전달한 것도 칭찬하고 싶다. 마지막 순간, 딸이 아빠에게 남겼던 한마디. 기실 거기에 모든 것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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