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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를 듣는 귀

남자로 살기 힘든 대한민국? 그래도 남자라서 살기 좋은 대한민국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표의 7호 외부인사 영입 케이스인 양향자 전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플래시 개발실 상무는 '삼성전자 최초의 고졸 출신 여성 임원'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는 '그쪽' 업계에서는 그야말로 입지전적(立志傳的)인 인물이다. 광주여상을 졸업했던 그는 삼성전자 반도체메모리설계실 연구 보조원으로 입사한 후 설계팀 책임연구원, 수석 연구원, 부장 등을 거쳐 지난 2014년 상무로 승진했다. 


'언어'로 소개되는 이 간단한 이력(履歷) 앞에 우리는 '대단하다'는 감탄과 '부럽다'는 생각을 할 뿐이지만, "학력 · 성별 · 출신의 유리천장을 깨기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쳐 노력했지만 '나처럼 노력하면 된다'고 말하고 싶지 않"는 그의 눈물 섞인 고백은 '바닥'에서부터 성장해 '임원'에 이르기까지 그가 겪어야 했던 고통이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음을 짐작케 한다.



"우리 사회가 직장여성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독해지거나 하나를 포기하라'는 것뿐이었다. 출산이 출세를 막고, 육아가 경력단절로 이어지는 구조를 바꿀 책임이 정치에 있다" (양향자 전 상무)


"세상이 아무리 좋아져도 일과 육아를 같이 하긴 어려워. 워킹맘은 어디서나 죄인이지.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죄인이야. 결혼하지마. 그게 속편해" <미생>의 선 차장 -


지난 2014년 방송됐던 tvN 드라마 <미생>은 '비정규직'뿐만 아니라 치열한 경쟁을 감수해야 하는 직장인들의 공감을 자아냈는데, 그 중에서도 직장 여성의 어려움을 다뤘던 에피소드가 도드라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일상적으로 행해지는 성희롱뿐만 아니라 '남성적'인 직장 내의 분위기가 여성을 얼마나 억압하는지 잘 표현됐다. 




많이 달라졌다고는 하나 여전히 '남성'이 '중심'이 되어 있는 분위기 속에서 여성들의 목소리는 거세되기 십상이다. 양 전 상무의 말처럼 '독해지거나 하나를 포기하라'고 강요하는 사회 속에서 여성들이 발붙일 공간은 협소하기만 하다. 최근에 들어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졌다고는 하나 애초에 워낙 기울어져 있던 운동장이 아니었던가? 여전히 대한민국 사회는 여성들에게 배타적(排他的)이다. 


여성으로서 입지전적인 위치에 오른 양 전무조차 "나처럼 노력하면 된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는 현실 속에서 아래와 같은 기사를 접하는 것은 불쾌한 일이다. <헤럴드경제>는 [한국男 심리적 거세]라는 타이틀로 기획 기사를 써냈는데, 그 목적과 의도를 선해(善解)한다고 하더라도 이와 같은 얕은 시각과 접근은 아쉽기만 하다.


- 이런 사진들을 싣더란 말이지 -

 


총 3편으로 구성되어 있는 위 기획 기사는 결국 '기승전유리천장'으로 마무리되고 있지만, 이를 풀어내는 '언어'는 공정하지 못할 뿐더러 급기야 정신을 못 차린 채 방향을 잃고 왔다갔다 한다. 두 명의 기자(원호연 기자, 신동윤 기자)가 나눠썼기 때문일까? 무엇보다 관점의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여성과 남성을 적대적인 위치에 놓고, 성별 간 위화감을 조성하는 방식으로는 문제해결은 꿈도 꿀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에서 '아버지'와 '오빠'로 불리는 남성에 대한 사회적 인정과 지위는 철옹성처럼 굳건했다. 그러나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지고 이전까지 찾아보기 힘들었던 남녀 간 경쟁구도가 격화되면서 상대적으로 남성이 주눅들고 있다. 남성이 심리적으로 '거세'당했다는 푸념도 나온다'는 [한국男 심리적 거세①]의 도입부에선 피식 웃음마저 나온다. 


- <주간조선>, 남자로 살아남기 힘든 대한민국...심리적 거세 당하는 남자들 중에서 -


게다가 뜬금없이 '신체적으로' 덩치가 큰 여학생(초등학생)이 상대적으로 작은 남학생을 위축시킨다는 이야기로 전개되는 것도 황당스럽다. 그리고 남학생들이 학교 성적에서 '바닥'을 깔아주고, 여성이 공직사회에 진출하는 비율도 높아졌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 논리는 '군 가산점 도입'으로 이어지고, 아내에게 폭행을 당한 남편(아버지)의 서글픈(?) 이야기로 끝을 맺고 있다. 남성들이여, 과거의 영광은 어디로 갔는가!


물론 남성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모르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남성'이기 때문에 겪는 어려움일까, 라고 묻는다면 갸우뚱할 수밖에 없다. 남성에게 여전히 우호적인 대한민국 사회에서 남성이라는 이유로 가중되는 어려움은 사실상 없어 보인다. 여학생들의 성적이 우수하게 나오는 것을 비롯해서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는 이제야 겨우 '경쟁'을 해볼 수 있는 구조가 갖춰졌기 때문이라 봐야 하지 않을까?



[한국男 심리적 거세③]에서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세계경제포럼(WEF)가 발표한 '2015년 세계 성 격차(Gender Gap) 보고서(경제, 정치, 건강, 교육 등 4개 부문에서 남녀의 성 격차를 계량화해 순위를 매기는 것으로 성차별 보고서)'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145개국 중 하위권인 115위에 그쳤다. 그것도 계속 하락 중이다. 또, 지난 3월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OECD 28개 회원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유리 천장' 지수에서 대한민국은 꼴찌를 기록했다.


이것이 '현실'이다. 이런 현실을 타개하는 방법은 '날고 뛰는 여성, 고개 숙인 남성' 같은 식으로 편을 나눠 서로를 '으르렁'거리도록 만드는 것이 아니다. 가족 속에 은퇴한 아버지의 자리가 없는 것는 것이 '여성'의 잘못일까? 오히려 '권위'와 '위신'만을 강조했던 아버지 세대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남성'의 잘못은 아닐까? 가부장제에 길들여진 남성들이 '소통'을 게을리 했기 때문은 아닐까? 



누군가를 탓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적대감'을 키우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아니다. 변화하는 사회 분위기에 맞게 '가정'(내 구성원들의 역할과 관계)도 달라질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남성들은 여성들을 고전적인(왜곡된) 성 역할에 고정시켜두고 싶어한다. 맞벌이 부부의 경우에 집안일은 '안사람'의 몫으로 남겨지는 경우가 허다하지 않은가? 가슴에 손을 얹고 대답해보자. 가족을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관심을 가졌는가?


여성과 남성을 둘러싼 각종 갈등을 풀기 위해선 '가정'뿐만 아니라 '사회'의 노력도 절실하다. 양성 평등을 지향하는 정부의 정책도 뒷받침 되어야 한다. 상호 간의 자연스러운 양보는 필수적이다. 물론 '기득권'을 점하고 있는 남성의 입장에선 이것이 불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쨌거나 '빼앗긴다'는 인상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거듭 말하지만 그것은 빼앗긴 것이 아니라, 억압을 통해 빼앗았던 것을 돌려주는 것이라 봐야 하지 않을까? 



무엇보다 대한민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남성적'인 사회 분위기를 바꿔나가는 노력이 요구된다. 더욱 문제가 되는 건 '남성적'이라는 것이 무슨 말인지 모르는 남성들이 대다수라는 점이다. 안타깝게도 그것은 남성적인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동화되기 시작했던 여성들에게도 해당되는 문제다. 그들에게 정희진의 글이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남성적이라는 것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라는 질문에, "당연하지요. 세상에 그것밖에 없으니까요."라고 답한 프랑스의 철학자 뤼스 이리가레의 말대로, 세상에 하나의 목소리만 있을 때는 다른 목소리는 물론이고, 그 한 가지 목소리마저도 알기 어렵다. 의미는 차이가 있을 때 발생하며, 인식은 경계를 만날 때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 정희진, 『페미니즘의 도전』 -


그렇다. 우리는 '남성적'인 것밖에 없는 세상에서 살아왔고, 이제야 겨우 다른 목소리가 수면 위로 떠오른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겨우 의미가 발생되고, 인식이 만들어진 지금,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아직도 멀다. 하지만 진통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은 곧 무언가의 탄생을 예고하는 반가운 소식 아니겠는가? 다만, 그 진통이 '일베'와 '메갈리아'로 대표되는 '혐오'로 나아가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공존'을 위한 '대화'와 '소통', 우리의 지향점은 생각보다 뚜렷하고 명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