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킴의 극장

<오빠 생각>, 이토록 착하고 예쁜 영화 속에 숨겨진 쓴맛

너의길을가라 2016. 1. 22.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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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착하고 예쁜 영화가 만들어졌다. 영화 <오빠 생각>은 한국전쟁(韓國戰爭, '6·25 전쟁'이라는 용어보다 전쟁의 성격을 잘 드러내는 '한국전쟁'이라는 중립적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당시 실존했던 '선린 어린이 합창단'을 모티브로, 모든 것이 상실(喪失)된 전쟁터 한가운데서 피어오른 '작은 노래의 위대한 기적'을 그린 영화다. 



전쟁의 포화(砲火)를 노래가 지워낸다. 전쟁이 흘리게 만든 눈물을 노래가 씻어낸다. 전쟁으로 상처받은 이들의 마음을 노래가 위로한다. 전쟁의 참혹함을 노래가 구원한다. 전쟁으로 가족을 모두 잃은 소위 한상렬(임시완)도,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이념의 갈등으로 아버지를 잃은 동구(정준원)와 순이(이레) 남매도 노래를 통해 아픔을 씻고 한 단계 성장한다.


전작(前作)인 <완득이>와 <우아한 거짓말>을 통해 세상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소외된 이들에 대한 포용(包容)이라는 가치관을 뚜렷하게 보여줬던 이한 감독은 <오빠 생각>에서도 그와 같은 태도를 고집스럽게 유지한다. 한편, <변호인>을 통해 가능성을 표출하고, <미생>을 통해 존재감을 드러냈던 임시완은 외유내강(外柔內剛)의 한상렬 역을 맡아 그 특유의 깊은 눈빛과 진지함을 캐릭터에 고스란히 담는 한층 더 성숙한 연기를 펼쳤다.



"워낙 연기를 잘해서 믿고 맡겼다. 이레는 순이 그 자체였다. 자꾸만 보게 되고, 계속 보고 싶어지는 배우다" (이한 감독)


"원래 생각했던 동구의 나이는 좀 더 높았지만 오디션을 본 뒤 캐릭터의 나이를 정준원 군에 맞춰 낮췄다" (이한 감독)


하지만 <오빠 생각>의 진짜 주역은 동구를 연기한 정준원과 순이 역을 맡은 이레라고 할 수 있다. 이 두 아역 배우의 열연(熱演)은 자칫 뻔할 수 있는 이야기에 숨을 불어넣는다. 동생을 지키려는 동구와 오빠와 함께 있는 것이 좋은 순이가 보여주는 뜨거운 남매애는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다. 정준원은 탄탄한 눈물 연기와 내면 연기를 선보이며 성인 연기자에 밀리지 않는 강력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영화 <소원>을 통해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던 이레도 풍성한 감성연기를 선보인다.


전쟁 고아들을 돌보는 자원봉사자 박주미 역을 맡은 고아성과 전쟁으로 한쪽 손을 잃고 '갈고리'를 달고 다니는 빈민촌 대장 갈고리 역을 맡은 이희준은 넘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캐릭터를 생동감 있게 살려냈다. 감초 역할이라 할 수 있는 조상사 역을 맡은 이준혁(<육룡이 나르샤>의 홍대홍이라고 하면 더 와닿을 것이다)도 편안한 웃음을 적재적소에 터뜨린다. 


어떤 관객들은 생각보다 성인 연기자들의 비중이 적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의 비중을 맞춰낸 것은 훌륭한 결정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역 배우들에 포커스를 맞추면서 전쟁의 참상 속에 아이들이 겪어야 했던 아픔이라든지, 그 고통스럽고 끔찍한 기억들을 결국 극복해내는 아이들의 순수한 힘이 잘 드러날 수 있었다. 그 모습을 통해 관객들도 자연스럽게 몰입하게 되고, 가슴 깊은 곳을 어루만지는 치유를 경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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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지적할 부분이 없는 건 아니다. 이념의 갈등도, 전쟁의 참상도 '아이들'과 '노래'를 통해 모두 치유할 수 있다는 생각은 어찌보면 매우 낭만적이고, 영화 속에서 이를 표현하는 방식과 이야기 전개 양상은 다소 식상한 편이다. 그럼에도 의도적인 신파로 나아가지 않은 점과 선을 넘지 않는 담담한 어조를 유지했던 것은 <오빠 생각>이 갖고 있는 장점이다.


다만, '포용(包容)'에 지나치게 천착하고 있는 점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가령, 아이들을 학대하고 그들을 착취하는 '갈고리'를 이해시키려고 하는 대목은 껄끄럽다. 그조차도 전쟁이 만든 희생자라는 관점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너무 쉽게 면죄부를 주도록 강요하는 것은 불편하게 느껴진다. 또, <오빠 생각>은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합창'을 시켜 얻고자 했던 것에 대해 정작 침묵한다. 



과연 아이들의 합창은 전쟁의 상흔을 치유했을까. 한상렬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위험한 전선으로 '위문 공연'을 떠나고자 한다. 그것은 자발적인 선택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억압된 상태에서 나온 강요된 선택은 아니었을까? 영화는 노래를 구원이라 말하지만, 정작 영화 속에서 '어른'들은 아이들과 노래를 전쟁의 도구로 이용했다. 


이 씁쓸한 괴리를 <오빠 생각>은 외면한 채 감동의 눈물로 메우려고 하지만, 순간순간 고개를 드는 이 쓴맛은 영화관을 떠난 후에도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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