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킴의 극장

<나를 잊지 말아요>, 눈물 없는 멜로와 궁금하지 않은 미스터리

너의길을가라 2016. 1. 10.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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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사고로 10년 간의 기억을 잃어버린 남자 석원(정우성)과 그의 앞에 나타나 눈물을 흘리는 정체불명의 여자 진영(김하늘). 두 사람은 서로에게 이끌리는 자석처럼 순식간에 사랑에 빠지고 만다. 하지만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완전성을 추구하는 것은 모든 존재의 본능이다. 불완전한 기억도 마찬가지다.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기 위해 애쓰는 석원과 이를 불안하게 여기는 진영은 결국 충돌한다. 


멜로와 미스터리의 특성을 동시에 갖고 있는 <나를 잊지 말아요>는 흥미로운 출발로 관객들의 호기심을 유발한다. 자신의 실종신고를 하는 석원의 모습과 도입부를 가득 채운 정우성의 목소리는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한층 끌어올린다. 물론 '거기까지'라는 것을 알아채기까지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진 않다. 최루성 멜로에 대한 기대는 지루함으로 변해가고, 미스터리에 대한 궁금증은 영화 자체에 대한 의문으로 바뀌어간다. 



'석원이 기억을 되찾아가는 과정'은 곧 '진영이 안고 있는 비밀이 밝혀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퍼즐의 윤곽은 얼핏 드러난다. 진영은 '가해자'인가, 혹은 또 다른 '피해자'인가. 이윤정 감독은 이 물음표를 두고 관객과 줄다리기를 한다. 실마리가 하나 둘씩 던져지고, 결국 드러난 '진실'은 반전의 성격을 띤다. 솔직히 그것이 충격적이라고 말하긴 어려울 것 같다. 


멜로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는 '감정선'이다. 차곡차곡 쌓여가는 시나리오의 흐름과 조응(照應)한 배우들의 연기를 통해 자연스럽게 고조(高調)되기 시작한 감정들이 어느 지점에 폭발하게 되는 것이 멜로의 미덕(美德)일 것이다. 안타깝게도 <나를 잊지 말아요>는 이 두 가지에서 한계를 드러낸다. 단편영화(이윤정 감독은 동명의 단편영화를 장편으로 기획했다)로 출발했기 때문일까. 이야기의 허술함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정우성과 김하늘의 만남으로 화제를 일으켰던 만큼 두 배우가 보여줄 케미(Chemi)에 대한 기대도 컸지만, 영화 속에서 두 사람은 화학적으로 융화되기보다는 겉돈다는 인상이 강하다. 정우성의 목소리는 관객들이 캐릭터에 몰입하는 데 있어 여전히 위화감을 제공한다. '멜로의 여왕'이라 불릴 만큼 특화된 능력을 자랑하는 김하늘의 애씀도 '설득력'을 잃어버린 영화를 구출하긴 버거워보인다.


또, 주변 인물들을 '병풍'으로 만든 것도 아쉬운 부분이다. 석원의 의뢰인으로 등장하는 사모님(장영남)은 제법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석원이 달라졌다'는 정도의 이야기를 하는 데 그친다. 또, 신부님으로 출연한 온주완은 사실상 극 중에서 불필요한 캐릭터로 보인다. 2015년 '다작 요정'에 등극한 배성우가 소소한 웃음을 제공하지만, 평면적인 역할에 그친 것은 역시 아쉬운 대목이다.



"비주얼과 음악에서도 도시의 차가운 감성과 두 남녀가 지닌 따뜻한 정서가 함께 공존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물들이 처한 상황, 감정의 변화를 최대한 자연스럽게 그려내고 싶었고, 이를 통해 몇 년 후에 다시 봐도 좋은 현대적 감성의 멜로를 만들고자 했다" (이윤정 감독)


다만, 배우들의 비주얼만큼이나 영화 속 장면들의 비주얼에 신경을 쓴 것은 분명해보인다. 석원이 살고 있는 고층 아파트와 도심 한복판이 주는 차가운 이미지는 기억을 잃은 채 고립되어 있는 석원의 심리를 잘 대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석원의 심리적 변화 혹은 상황의 변화에 따라 그에 최적화된 공간을 화면 안에 담아내고자 했던 노력들이 발견된다. 


그럼에도 <나를 잊지 말아요>에 대해선 눈물이 없는 멜로, 궁금하지 않은 미스터리라는 혹평을 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물론 이 영화를 통해 '기억이란 무엇인가?'라는 고상한 질문을 애써 찾을 수도 있겠지만, 그러기엔 이 영화로부터 얻은 소스가 지나치게 적다. <나를 잊지 말아요>는 아이러니하게도 제목과는 달리 빨리 잊어버리고 싶은 영화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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