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킴의 박람기

'풍경으로 보는 인상주의', 화폭에 담긴 일상의 놀라움

너의길을가라 2016. 1. 8.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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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두아르 마네, 아스파라거스 한 다발, 1880년, 캔버스에 유화, 46x55cm -


인상주의 화가들의 풍경화로 가득 채워진 전시회에서 과연 이 그림은 사람들의 이목을 얼마나 끌 수 있을까? 솔직히 말하자면, 도대체 이 그림이 왜 '풍경으로 보는 인상주의'라는 타이틀의 전시회에 걸려 있는지 의아했다. 게다가 이건 정물화(靜物畵)잖아? 물론 일반(사전)적인 의미에서 풍경화란 '자연의 경치를 그린 그림'이지만, 아스파라거스를 하나의 '풍경'이 되게 했다는 의미에서 받아들인다면 어떨까?


한편,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은 이 그림을 두고 "영혼을 치유하는 그림"이라 극찬하기도 했다. 아스파라거스는 19세기 프랑스 사람들이 자주 먹던 익숙한 식재료였다. 우리로 치자면 '배추' 정도 일까? 알랭 드 보통은 이 익숙한 식재료를 예술 작품의 주인공으로 다룬 마네의 상상력과 관점의 전환에 깊이 감탄한 것이다. 


또, 그는 "손목이나 어깨만으로도 우리를 흥분시켰던 사람이 눈앞에 벌거벗고 누워 있어도 무덤덤"한 순간이 찾아온다면서 마네의 「아스파라거스 한 다발」이 권태기에 빠진 오래된 연인이 그들의 관계를 회복시킬 수 있는 하나의 답을 제시한다고 말한다. 마네가 "겹겹이 쌓인 습관과 타성 밑에서 선하고 아름다운 면"을 발견했던 것처럼 말이다. 



이쯤되니 저 그림이 왜 수많은 풍경화들 사이에 걸려 있어야 했는지 이해가 된다. 그것은 단순히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영향을 준 마네의 그림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풍경으로 보는 인상주의'의 기획을 맡은 서순주 커미셔너는 인상주의 화가들의 풍경화가 많은 사랑을 받는 이유를 마네의 「아스파라거스」에 빗대서 이렇게 설명한다. 


"일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오브제들이 화면에 그려진 순간 일상과는 전혀 다르게 볼 수 있다. 일상의 삶속의 경험과 기억이 공감대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결국 예술은 삶의 부분이고, 정신활동의 산물이다. 예술작품이 감동을 줄 수 있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은 보편적 영혼의 개념과 상통하기 때문이다"


인상주의를 추구한 화가들은 기존의 모든 표현기법, 전통적인 회화기법을 거부한다. 이들에게 중요했던 것은 오로지 색채 · 색조 · 질감이었고, 그것을 표현하기에 최상의 도구였던 '자연의 빛'을 이용해 그림을 그려낸다. 그들은 자연 속으로 직접 뛰어들었고, 화폭에 '일상(日常)'을 담아냈다. 하지만 그 익숙했던 일상들이 화면에 그려지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일상이 아닌 것이 됐다. 마치 마네의 아스파라거스 한 다발처럼 말이다.


- 빈센트 반 고흐, 랑글루아 다리, 1888년, 캔버스에 유화, 49.5x64cm -


 - 클로드 모네, 팔레즈의 안갯속 집, 1885년, 캔버스에 유화, 73.5x92.5cm -


- 아쉴 로제, 강변 산책, 1888년, 캔버스에 유화, 34.5 x 44cm -


인상주의는 왜 등장할 수밖에 없었는가? 나는 인상주의 등장의 필연성(必然性)을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의 등장에서 찾는다. 1839년 발명된 '사진'은 끊임없이 미술을 압박했다. 붓으로 아무리 사실적인 묘사를 한다고 하더라도 사진의 사실성을 따라잡을 수 없다. 다시 말해 미술의 사실성이 더 이상 의미가 없어진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현실의 재현과 기록이 사진의 몫으로 돌아가자, 미술은 예술적 실험에 몰두한다. 형태나 색채의 본질을 연구하고, 시간과 속도와 같은 추상적인 영역을 화폭에 옮기기 시작한다. 이른바 역할분담이 이뤄졌다고 할까? 한가람 미술관에서 감상할 수 있는 '풍경으로 보는 인상주의'는 이와 같은 필연성 이후 인상주의의 등장과 그 발전에 대해 체계적으로 잘 정리한 전시다. 



1. 인상주의의 선구자

부댕, 쿠로, 용킨트, 쿠르베, 도비니, 드라 페나


2. 프랑스 인상주의

카유보트, 마네, 모네, 르누아르, 피사로, 모리조, 시슬리, 기요맹, 시다네


3. 후기 인상주의

세잔, 반 고흐, 고갱, 툴루즈 로트렉


4. 인상주의

쇠라, 시냑, 크로스, 핀치, 루스, 리셀베르그


5. 독일 인상주의

코린트, 리버만, 슬레포크트, 폰 우데


6. 나비파와 야수파

보나르, 마티스, 뷔야르, 모리스 드니, 반 동겐, 블라맹크, 마르케


서순주 커미셔너는 "풍경화를 통해 인상주의 역사를 되짚어보는 교육적인 의미가 깊은 전시"이자 "인상주의 미술의 모든 것을 풍경화라는 단일 장르를 통해 소개하는 국내 최초의 전시"라고 소개했는데, 인상주의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겐 진품을 눈앞에서 볼 수 있는 행복한 시간이 될 테고, 인상주의에 대해 잘 몰랐던 사람이라 할지라도 이 전시를 통해 많은 공부를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전시는 2016년 4월 3일까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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