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듣는 귀

순천 뇌사.. 체벌이란 이름의 폭력, "왜 그랬어요?"

너의길을가라 2014. 2. 22. 0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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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BS에서 발췌 - 


순천 뇌사 고교생 담임이 머리채 잡고 "벽에 쾅쾅" <연합뉴스>


꼭 그랬어야만 했을까? 지각을 했다는 이유로 학생의 머리를 잡고 교실 벽에 '쿵' 소리가 날 만큼 세게 부딪쳤던 그 고등학교 선생님에게 묻고 싶다. "왜 그랬어요? 그랬어야만 했나요?


지난 18일, 순천의 한 고등학교의 학생 A군이 갑자기 쓰러졌다고 한다. 학교를 마친 뒤 태권도장에 갔다가 의식을 잃은 것이다. 도대체 무슨 까닭일까? A군의 가족들의 주장에 따르면, A군의 담임교사는 지각을 한 A군에게 스스로 교실 벽에 머리를 박도록 지시했고, A군이 머리를 살작 부딪치자 "그래가지고 되겠느냐"면서 A군의 머리를 잡고 2차례나 벽에 부딪쳤다는 것이다. A군의 가족들은 당시의 상황에 대한 학생들의 진술이 담긴 영상을  순천경찰서에 제출했다고 한다. 학생들의 증언이 있는 만큼 기본적인 사실들은 '팩트'라고 봐야 할 것 같다. 현재 A군은 뇌사 진단을 받고 의식불명의 상태에 빠져 있다. 


물론 A군의 머리에 대한 담임교사의 체벌이 A군의 뇌사에 직접적인 원인이 아닐 가능성도 있다. 체벌이 있은 지 13시간 후(최근 보도에 따라 정정)에 발생한 일이기에 쉽사리 단정짓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현재까지 드러난 정황들로 미뤄보면 관련성이 전혀 없다고 말할 수도 없다. A군의 뇌사 이전에 머리에 강력한 충격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니까 말이다. 물론 다른 요인들(가령 태권도장에서 충격을 받은 일은 없었는지 등)이 없는지도 꼼꼼하게 확인해 볼 일이다. (역시 최근 보도에 따르면 10분간 몸풀기 운동을 마치고 발차기 연습을 하다가 쓰러졌다고 한다) 한편, 담임 교사는 체벌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뇌사와의 직접적인 관련은 부인하고 있다. 이처럼 양 측이 인과관계를 두고 이견을 보이고 있어 이 문제가 법정까지 가게 된다면, 보다 엄밀하게 상당인과관계를 따지게 될 것이다.




- <세계일보>에서 발췌 - 


법적인 문제를 떠나서, '체벌'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수많은 폭력들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만 한다. 학창시절 선생님들에게 '체벌'을 당했던 기억은 이상하리만큼 또렷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물론 그 빈도가 잦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가끔씩 그 당시의 순간들이 떠오르곤 한다. 정말 씁쓸한 기억이다. 사실 '체벌'이라고 표현했지만, 지금까지 기억을 하고 있는 것이라면 단순한 체벌이라고 할 순 없다. 체벌을 가장한 폭력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가장 오래된 폭력의 기억을 떠올려보자면.. 초등학교 시절, 하루는 수학경시부를 '땡땡이' 친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나는 혹독한 대가를 치뤄야 했는데, 엉덩이를 무려 20대나 맞아야 했다. 열살 남짓의 꼬마 아이가 맞기에 20대는 좀 가혹한 것 아닐까? 눈물이 찔금 났지만, 친구들에게 보일 수는 없었다. 아무렇지 않은 듯 씩 웃었지만, 내 엉덩이에는 피멍이 들었다. 


그 다음 떠오르는 폭력도 역시 수학경시부와 관련이 있는데, 이번에는 공식적으로 수학경시부 자습이 없다는 것이었다. 수학경시부는 학교 수업이 다 마친 뒤 남아서 공부를 했기 때문에 나로서는 정말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아싸~!" 소식을 전해듣자마자 기쁜 마음에 들고 있던 두꺼운 잠바를 위로 던져버렸다. 옷은 천장까지 올라갔고, 이내 내 품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런데 갑자기 등장한 담임 선생님! 나를 보고 앞으로 나오란다. 그리고 냅다 따귀를 날리는 게 아닌가? 그것이 내 인생의 첫 따귀였다. 지금 생각해도 그 폭력의 이유를 도무지 모르겠다. 



-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영화 <친구>의 한 장면 - 


고등학교 시절에는 감정의 기복(?)이 굉장히 심한 선생님이 있었다. 보통 때는 학생들에게 상당히 관대한 태도를 보였지만, 어느 순간에는 갑자기 돌변했다. 그럴 때 가하는 체벌은 어린 학생들의 눈으로 보기에도 명백한 '폭력'에 가까웠다. 마치 학생들에게 화를 푸는 것만 같았다. 나중에 교무실 청소를 하면서 그 선생님의 종잡을 수 없었던 감정의 기복의 이유를 알아버렸다. 청소 도중에 우연히 보게 된 선생님의 컴퓨터 화면에는 '주식'과 관련된 정보들이 떠있었다. '아, 이거였어!' 그렇다. 아마도 폭력에 가까운 체벌을 통해 학생들에 자신의 분을 푼 날은 주식이 하한가를 치고 있었을 때였을 것이다. 물론 주식이 오른 날이나 상한가를 친 날은 그럴 일이 없었을 테고. 혹시 내 뺨을 친 초등학교 담임도 주식을 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사랑의 매'라는 말은 그야말로 말장난이다. 사랑한다면 때려서는 안 된다. 잘못과 폭력이 교환되는 것은 최악이다. 다른 방법의 제재 수단은 얼마든지 있다. 교사에게는 폭력을 사용하지 않고 학생들을 지도해야 할 의무가 있다. 연구하고 고민해야 한다. 이런 노력 없이 교권의 추락이라는 말로 자신들의 처지를 곤궁하다 위장하는 일은 비겁한 일이다. 이는 학교뿐만 아니라 집에서도 마찬가지다. 아이의 잘못을 '매'로 쉽게 넘기려 하지 말길 바란다. 아이가 자신의 잘못을 '매'라는 방식으로 '때우도록' 하지 않길 바란다. 그것이 올바른 교육일 리가 없다. 단지 선생님의 입장에서, 부모의 입장에서 '편하고 쉬운 교육 방법'일 뿐이다. 폭력으로 얻어낸 침묵과 고요를 아름답다고 할 수 있겠는가. 


배수아는 자신의 책 『내 안에 남자가 숨어 있다』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폭력의 기억은 사랑의 기억보다 선명하고 오래 지속된다. 그리고 미래의 시간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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