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꺼이 이방인이 되는 '다른 삶'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건네는 응원
삶은 선택의 연속이고, 그 결정의 순간에는 어김없이 두려움이 깃든다. 물론 설렘과 열정, 의욕이 앞서는 사람도 있겠으나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것을 맞닥뜨렸을 때 주춤하고 머뭇거리기 마련이다. 공부를 위해 머나먼 타국으로 향한다든지, 다른 직업을 찾고자 현재의 삶을 포기한다든지, 새로운 사람을 만나거나 혼자만의 여행을 떠나는 건 모두 '다른 삶'을 사는 것이다.
그 어떤 종류의 '다른 삶'이든 간에 자발적 선택을 해야 할 상황을 마주한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책이 있냐고 묻는다면 주저없이 곽미성의 <다른 삶>을 선택할 것이다. 저자는 스무 살이 채 되기 전 영화 공부를 위해 프랑스로 떠났고, 그곳에서 프랑스 남자를 만나 결혼 후 취직까지 했다. 모국어의 세계를 떠난 저자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낭만적인 프랑스에서의 로맨틱한 삶이었을까.
"새로운 삶을 만들어 간다는 것은, 독립적으로 개인의 삶을 산다는 의미다. 나는 개인의 삶들이 다양해질수록 세상이 섬세해지고, 우리 각자가 선택할 수 있는 삶의 스펙트럼도 넓어진다고 믿는다." (p. 7)
물론 현실은 영화가 아니다. 네 살 수준의 프랑스어를 구사하는 저자는 낯선 땅에서 생존해야 했고, 유창한 모국어를 구사하는 또래들과 학교에서 경쟁해야 했다. 이방인에 대한 교묘한 차별은 또 얼마나 마음에 생채기를 냈을까. 다행히 시간은 많은 걸 변화시켰다. 언어는 점점 확장됐고, 프랑스 문화에도 익숙해졌다. 이제 저자는 프랑스 사람이 되어 버렸다고 할 수 있을까.
하지만 모국어의 세계를 떠난 저자의 삶은 뿌리가 허약했다. 정착하지 못하고 부유하는 감각은 얼마나 불안할까. 하지만 저자는 자신만의 중력을 감각하는 데 이르렀고, 조절하는 법을 배워나갔다. 매 순간 자신이 소수자이고 약자라는 걸 체감해야 하는 삶임에도 "약자였던 경험과 당연하지 않은 배려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은 내 안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고 회상한다.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이방인으로의 정체성은 곧 소수자, 약자로서의 감각을 놓치지 않게 했다. 성 정체성으로 고민하는 동료의 친구, '보통의 가족'과 달리 아이가 없는 삶과 반려동물인 고양이 로미와 함께 하는 삶 등 특별한 이야기를 읽고 있노라면 삶의 스펙트럼이 넓어지는 걸 경험한다. 또, 프랑스에서 집을 사는 과정에서 겪었던 생활감 가득한 에피소드들은 흥미롭게 읽힌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발적인 이방인이 되기를 다시 꿈꾸는지도 모른다. 모르는 도시의 길목에서,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온전한 '나'로 존재하는 일의 짜릿함을 알고 있으니까." (p. 86)
저자는 타인의 시선과 실패를 두려워한다면 결국 우리는 아무것도 시도하지 못하게 될 거라며 '다른 삶'에 뛰어드는 선택을 말 없는 미소로 옹호한다. 물론 '다른 삶'을 선택한 이후에는 고통이 따르겠지만, 그것은 분명 자신을 찾아가는 고통이기기에 그 끝에는 황홀함이 있으리라 단언한다. 이런 조언들은 저자가 체험을 통해 획득한 언어이다보니 훨씬 더 밀도 있고 단단하다.
그렇다면 '다른 삶'을 선택하는 건 저자처럼 잠재력이 무궁무진한 10대 후반에나 가능한 일일까. 혹은 열정 넘치는 20대에나 엿볼 수 있는 걸까. 저자는 자신의 남편의 케이스를 소개하며 책을 끝맺는다. 공부를 잘했던 남편은 교수나 학자를 꿈꾼 적 없지만, 그 궤적을 따라 걷게 됐고 논문을 쓰는 지옥 같은 시간을 보냈다. 문제는 그 다음의 숨막히는 삶을 상상하는 일이었다.
평소 와인에 관심이 많았던 남편은 뒤늦게 와인 전문가 자격증을 따고 유통 회사에 입사했다. 뒤늦게 새로운 삶에 뛰어든 저자의 남편은 어떻게 됐을까. 저자는 "늦깎이 회사원이지만 워낙 좋아했던 분야다보니 금세 적응했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며 그의 선택이 옳았다고 기뻐한다. 흥미로운 건 저자의 남편 외에도 비슷한 경로로 와인 회사에 들어온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타인의 다른 삶을 존중해야 나의 다른 삶 또한 가치 있"다며 "'다름의 연대감'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저자는 '다른 삶'을 살기 위해 누군가는 기꺼이 이방인이 된다며 자신을 그리고 우리를 독려한다. 이 기분 좋은 응원에 힘입어 기꺼이 다른 삶을 상상하는 이방인이 되어보리라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