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킴의 극장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 겁 없는 홍길동이 던진 승부수

너의길을가라 2016. 5. 6.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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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 드라마/액션

국가 : 한국

감독 : 조성희 

제작/배급 : 비단길/CJ엔터테인먼트

닝타임 : 125분

등급 : 15세이상관람가


줄거리 : 나쁜 놈들이 판치는 세상, 새로운 히어로가 온다! 사건해결률 99%, 악당보다 더 악명 높은 탐정 홍길동에게는 20년간 찾지 못했던 단 한 사람이 있다. 그것은 바로 어머니를 죽인 원수 김병덕. 홍길동은 오랜 노력 끝에 드디어 그를 찾아내지만, 김병덕은 간발의 차로 누군가에게 납치되어 간 이후이고, 그의 집엔 두 손녀, 동이와 말순이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느닷없이 껌딱지처럼 들러 붙어 할아버지를 찾아달라는 두 자매를 데리고, 사라진 김병덕의 실마리를 쫓던 중, 홍길동은 대한민국을 집어 삼키려는 거대 조직 광은회의 실체를 마주하게 되는데.... 기다렸던 복수의 순간, 성가시게 판이 커져버렸다!



왼쪽 다리에 붉은 반점이 있는 풍운아 홍길동은 서자다. … 길동은 어려서부터 비범한 기상을 보이나, 비천한 춘섬의 소생이기에 벼슬자리는커녕, 아비를 아비라 부르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조차 못한다. 길동은 도술을 익히며 마음을 달랜다. 홍 판서의 부인과 형, 홍 판서의 또 다른 첩 초란은 길동의 비범한 재주를 시샘하여 특재라는 자객을 시켜 길동을 없애려고 하나 길동은 특재를 죽이고 집을 나서 방랑의 길을 떠난다. 그러다가 도적의 소굴에 들어가 힘을 겨루어 두목이 된다. 먼저 해인사의 보물을 탈취하였으며, 그 뒤로 길동은 활빈당(活貧黨)이라 자처하고 기묘한 계책과 도술로써 팔도 지방 수령들의 불의한 재물을 탈취해 빈민에게 나누어 준다. - 혀균, 『홍길동전』 -


'홍길동'은 용감했다. 영화 속에서 홍길동(이제훈)은 어릴 적 사고로 좌측 뇌 해마에 손상을 입어 '감정 인지 능력'을 상실했다. 덕분에(?) 그는 '겁()'을 모른다. 겁을 없는 건 영화 속 주인공인 홍길동만이 아니라 영화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도 그렇다. 눈앞에 나타난 캡틴 아메리카를 비롯한 12명의 히어로를 마주하고서도 주눅들지 않고 당당함을 드러냈다.



<캡틴 아메리카: 시빌워>의 위세에 눌려 줄줄이 개봉을 연기한 <엽기적인 그녀2>, <특별수사: 사형수의 편지>와 달리 <탐정 홍길동>은 정면돌파를 선택했다. 잠시 미국에서 건너온 현란한 히어로들의 파워가 어느 정도인지 확인해보자. 어린이날 무려 88만 5,293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스파이더맨3>(76만 명)가 갖고 있던 역대 어린이날 최고 흥행 기록을 깨버렸다. 개봉 9일 만에 500만 관객을 돌파(5일 현재 575만 5,717명)하는 등 압도적인 흥행 성적을 거두고 있다. 


오로지 '관객 수'로 결정되는 영화의 성패(成敗)에 수많은 관련자들의 '밥줄'이 걸려 있는 탓에 개봉일을 두고 치열한 신경전을 벌일 수밖에 없는 다른 영화들을 비꼴 필요는 없겠지만, 영화의 완성도에 자신감을 갖고 '한국형 히어로'라는 영리한 마케팅을 통해 28만 4,269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2등 전략을 성공적으로 이끌고 있는  <탐정 홍길동>에게 박수를 보낼 필요는 있지 않을까?



"<시빌워>는 진행 중인 시리즈물이라 관객에게 굉장히 친숙하다. 게다가 열 두 히어로가 나온다. 홍길동은 한 명이지만 모르는 사람이 없다. 하지만 주변에 홍길동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은 없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유령 같은 느낌으로 한국적인 히어로를 그렸다." (이제훈)


몽환적인 영화 속 매력적인 주인공.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대략 1980년대의 언젠가, 장소적 배경은 강원도의 어딘가. 


"리얼리티를 벗어나고자 했다"는 조성희 감독의 말처럼, <탐정 홍길동>은 철저히 현실감을 배제한다. 등장인물과 일부 공간들을 제외하면 CG(computer graphics)로 채워졌다. 그래서 순간적으로 '만화'를 보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다. 어떤 장면들에선 고전적인 느와르를 보는 느낌이고, 또 서부 영화와 같은 인상을 주기도 한다. 이처럼 감각적이고 독특한 미장센(mise en scène)이 관객들을 몽환적인 세계 속으로 이끈다. 


<탐정 홍길동>은 허균의 고전소설 『홍길동전』을 현대적으로 풀이해 영화화한 작품이다. 이제훈의 말처럼 '홍길동'을 모르는 사람은 없고, 『홍길동전』의 줄거리를 모르는 사람도 없다. 소설의 근간이 되는, 호부호형(呼父呼兄)을 하지 못하는 서자(庶子)의 아픔과 사회의 악을 처단한다는 영웅적인 요소가 영화에서도 고스란히 반영이 됐다. 하지만 새로운 해석을 통해 '선(善)'한 이미지의 홍길동을 '비틀어' 캐릭터를 맛깔스럽게 살려냈다.




"이제 마블 히어로 무비를 목이 빠져라 기다리지 않아도 될 것 같다. 한국형 히어로 무비의 탄생을 축하한다"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 언론 시사회


불법 흥신소 '활빈당'의 수장으로 활동하는 홍길동은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며 '악당'들을 처치한다. 완력(腕力)보다는 재빠른 두뇌회전을 토대로 문제를 풀어나간다. 흥미로운 점은 홍길동의 정의구현 방식인데, 그는 '거짓말'을 밥 먹듯 하고, 심지어 '고문'까지도 서슴지 않는다. 살인은 예삿일이다. 게다가 그는 '대의'를 위해 싸운다기보다는 '사적 복수'에 치중한다. '정상적인(?)' 영웅이라 보긴 어렵다.


<캡틴 아메리카>와 대결하는 구도 속에서 '한국형 히어로 무비의 탄생'이라 마케팅에 열을 올린 것이겠지만, <탐정 홍길동>을 굳이 '히어로 무비'로 규정한다면 '킹스맨'과 '데드풀'로 이어지는 '안티 히어로' 계열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 이제훈의 공 들인 설정과 연기가 '홍길동'이라고 하는 캐릭터를 바닥부터 차곡차곡 쌓아 올렸다. 매력적인 주인공으로 관객들에게 제대로 어필하는 데 성공했다.




아쉬운 것은 '이야기'인데, 비밀스러운 조직이자 홍길동과 연관되어 있는 '광은회'에 대한 설명과 설득이 부족해 관객들이 제대로 빠져드는 데 마이너스가 됐다. 광신적인 종교집단으로 그려낸 것은 너무 쉬운 선택은 아니었는지 묻고 싶다. 속편의 가능성이 남겨져 있다지만'이야기'에 대한 매력이 떨어지는 상태에서 '캐릭터'만으로 이끌어가자면 상당히 어려움이 예상된다. 물론 잘 만든 캐릭터 하나면('홍길동'이라면) '하드 캐리'도 불가능하진 않다.


복수극을 전제한 느와르답게 영화의 기본적인 분위기는 상당히 어둡다. 마치 DC코믹스의 히어로 무비를 보는 것 같은 기시감을 준다. 이 분위기를 가볍게 전환시키는 존재가 바로 '말순(김하나)'이다. 홍길동의 입장에서 동이(노정의)와 말순은 어머니를 죽인 원수인 김병덕의 손녀인데, 이 둘과 얽히게 되면서 묘한 케미가 발생한다. 특히 말순의 천연덕스러운 연기는 영화의 백미라고 볼 수 있다. 연기 경험이 전혀 없는 원석 같은 배우라는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된다.




"인형처럼 예쁘고 연기를 잘하는 아역 배우도 많았는데, 김하나는 연기 경험이 하나도 없었다. 대사를 하다가 카메라를 보거나 다른 소리를 할 때도 잦았다. 하지만 오히려 그가 갖고 있는 개성을 살릴 수 있었다. (조성희 감독)


개인적으로는 <탐정 홍길동>이 좀더 묵직한 느낌으로 진행되길 바랐기 때문에 중간에서 산통(算筒)을 깨는 '말순'이가 마뜩지 않았는데, 상업 영화이자 대중적인 영화로서 말순의 캐릭터는 매우 유효했다고 생각한다. 덕분에 긴장감과 웃음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게 됐고, 그 흐름이 매끄럽고 유쾌하다. 아마 다수의 관객들이 '이제훈'과 함께 '말순'을 기억하면서 영화관을 나설 것이 분명하다.




그밖에도 김병덕 역을 맡은 박근형은 투혼에 가까운 연기를 보여줬고, 광은회의 멤버이자 악당인 강성일을 연기한 김성균도 넉넉하게 제 몫을 해냈다. 또, 활빈당을 운영하고 있는 활빈재단의 황회장으로 등장하는 고아라는 김혜수의 뒤를 잇는 카리스마 있는 여성 캐릭터를 구축할 수 있는 역량이 제법 엿보였는데, 비중이 지나치게 적다는 인상을 받았다. 혹시 제작될지 모르는 속편에선 고아라의 지분이 좀더 보장되지 않을까?


<캡틴 아메리카>와의 맞대결을 두려워하지 않고 당당히 맞서고 있는 <탐정 홍길동>의 패기가 좋은 성적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다행스럽게도 좋은 입소문이 퍼지고 있어 앞으로의 전망은 밝은 편이다. <캡틴 아메리카> 말고 다른 영화를 찾고 있는 관객들에게 <탐정 홍길동>이 좋은 선택지가 되길. 그리고 이 글도 거기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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