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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자들>은 <썰전>의 아성을 넘을 수 있을까?

너의길을가라 2017. 1. 13.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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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 하는 법이다. 지난 2013년 MBC <일밤-아빠 어디가>가 열어젖힌 '육아 예능'의 틈새를 KBS 2TV <해피선데이-슈퍼맨이 돌아왔다>가 잽싸게 파고들었던 것처럼 말이다. 또, '쿡방'이 방송계의 트렌드로 자리잡는 듯 하자 우후죽순 비슷한 프로그램들이 생겨나 대세를 이뤘던 것처럼 말이다. 새롭게 론칭한 채널A <외부자들>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지금이 어느 때인가. 그 어떤 영화의 시나리오도 현실의 그것보다 흥미롭지 않은, 그러니까 영화보다 정치가 훨씬 더 재미있는 웃픈 시대가 아닌가. 



뉴스가 쏟아진다. 정말이지 쉼 없이 터져 나온다. 과거와 달리 뉴스 제공자도 급격히 늘어났다. '종편'이 생겨버렸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시시각각 쏟아지는 뉴스들을 확인하고, 저녁이 되면 JTBC <뉴스룸>을 챙겨보며 이슈들을 정리하곤 한다. 이제 대중들은 뉴스의 수동적 소비자의 위치에서 조금씩 벗어나 좀더 적극적인 태도를 취한다. 그에 따라 뉴스를 다루는 방식도 변화하고 있다. 대중들이 원하는 건 분명하다. 워낙 많은 정보가 쓰나미처럼 몰려드는 지금, 중요한 이슈를 뽑아 알아듣기 쉽게 해석해주는 방송이다. 물론 '재미'도 필수적이다.


우리는 그 조건에 상응하는 프로그램을 알고 있다. 바로 JTBC <썰전>이다. 한국 갤럽의 조사에 따르면, <썰전>은 '한국인이 좋아하는 TV 프로그램' 2위에 랭크 됐다. 1위인 MBC <무한도전>과는 불과 0.2% 차이였다. 이철희 당시 이철희 두문정치연구소 소장과 강용석 변호사가 이끌어갔던 '시즌 1'보다 '지식소매상'을 자처하는 유시민 작가와 '보수계의 거성' 전원책 변호사가 합류한 '시즌2'가 훨씬 더 탄탄하고 풍성한 느낌이다. '논리'뿐만 아니라 '재미'까지 말이다.



한편, <외부자들>은 후발주자다. <썰전>이 개척한 '시사 예능'이라는 장르에 슬그머니 발을 올려놓았다. 물론 TV조선의 <강적들>도 마찬가지다. 4~5%대의 탄탄한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는 <강적들>이지만, 화제성에서는 <썰전>에 비할 바가 아니다. <외부자들>은 첫방송에서 3.686%를 기록했고, 3회에선 4.287%로 훌쩍 뛰어올랐다. 오히려 화제성은 <강적들>을 압도한다. 이쯤되면 궁금해진다. 과연 <외부자들>은 <썰전>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까? 아니면 <강적들>처럼 미적지근한 시사 예능에 그칠까.


<썰전>이 패널의 소수정예화(2명)를 내세웠다면, <강적들>은 숫자(6명)로 밀어붙이는 방법을 택했다. 사실 다수의 패널을 동원하는 전략이 시사 토크쇼의 원조격이라 할 수 있고, 소수정예화가 오히려 예외적이다. 생각해보라. 온갖 다양한 이슈들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명료한 논리와 화려한 언변으로 맛있게 요리할 수 있는 사람이 그리 흔치 않다. 대개 둘 중에 하나를 놓치기 마련이다. 가령, 논리는 정돈돼 있어도 재미가 없거나, 혹은 재치는 있으되 논리적 일관성이 떨어진다든지. 



<외부자들>은 <썰전>과 <강적들>의 중간에 해당하는 4명을 패널로 불러모았다. 차별성을 위해서였을 것이다. 멤버들의 면면은 제법 막강하다. '카리스마 저격수' 정봉주, '모두까기의 대가' 진중권, '정치계 빅데이터' 안형환, '독설의 여왕' 전여옥. 이름값만 놓고 보면 유시민, 전원책 콤비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진보'와 '보수'의 구분도 명확하다. 각자의 진영을 대표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또, 남희석을 MC로 앉혀 <썰전>에서의 김구라의 역할을 맡겼다. '구색'만 놓고 보면, <외부자들>은 제법 매력적이다.


그런데 '디테일'로 들어가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외부자들>의 패널 4명은 <썰전>의 부족한 점이라 할 수 있는 '다양한 시각'을 전달해 줄 수는 있겠지만(유일한 여성 패널인 전여옥 전 의원이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아쉬움으로 '여성에 대해서 굉장히 박했다'고 언급한 건 신선했다) 아무래도 '밀도'에서는 부족한 느낌이다. 전체적으로 가벼운 분위기를 견지했는데, 진지해야 할 부분에서도 시시껄렁한 '농담'이 난무하는 상황들이 벌어진다. <썰전>이 정색할 때와 가볍게 넘어갈 때를 구분하는 '맺고끊음'의 미덕을 보인 것과는 확연한 차이다.



<썰전>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집중적으로 다루면서도 '정치'에 매몰되지 않고, 조류 인플루엔자(AI)에 대한 정부의 한심한 대응, 대한항공 기내 난동 사건, 한중일 외교 갈등(소녀상 철거 포함) 등 사회 전반의 이슈들을 골고루 짚고 넘어갔던 것과 달리 <외부자들>은 철저히 좁은 의미의 정치적 사안에만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이유는 두 가지 정도일 텐데, 신생 프로그램이다보니 가장 자극적인 이슈에 목맬 수밖에 없다는 것과 다양한 사회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기에 패널들의 '전문성'과 '역량'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재선 국회의원이자 보건복지부 장관을 역임한 경험과 '경제학'을 전공하고 '역사' 관련 서적을 쓰는 등 해박한 지식으로 단단히 무장한 유시민의 '상식'은 가히 필적할 상대가 없을 정도로 타의추종을 불허한다. 게다가 물 흐르듯 막힘 없이 진행되는 그의 언변은 '(글로는 진중권을 이길 사람이 없고,) 말로는 유시민을 당할 이가 없다'는 '전설'을 떠올리게 만든다. 한편, JTBC 신년토론으로 '민낯'이 까발려져 곤혹을 치르고 있지만, 전원책 변호사도 전공인 법학뿐만 아니라 경제학에도 조예가 깊다. 적어도 그는 '논리적 일관성'만큼은 잃지 않는다.



또, 과소평과 되고 있긴 하지만, 진행자로서 김구라의 힘을 빼놓을 수 없다. 논점을 파악하는 데 능하고, 적재적소에 알맞은 질문을 던지는 김구라의 영리함은 시사 예능의 진행을 맡는 데 매우 적합하다. 반면, <외부자들> 남희석은 단순히 패널들의 코멘트 순서를 정해주는 역할에 그친다. 발언의 양과 질을 따져봐도, 김구라의 그것이 훨씬 많을 뿐더러 더 구체적이고 또렷하다. 물론 김구라는 <썰전>을 200회 넘게 진행하면서 엄청난 내공을 쌓아왔다는 점에서 남희석과 직접적으로 비교하기엔 이미 너무 베테랑인지도 모르겠다.


마찬가지로 200회를 넘길 <썰전>과 고작 3회가 방영된 <외부자들>을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건 무리다. 당장 기획력과 여유에서 두 프로그램은 현저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청문회장에서 대차게 싸운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장제원 바른 정당 의원을 함께 불러 '절친노트'를 찍고, 청문회 스타로 떠오른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하태경 바른정당 의원을 초대하는 <썰전>의 과감함을 보라. 당장 <외부자들>이 <썰전>이 쌓아온 아성을 넘보기는 어려운 일이다. (<외부자들>은 정봉주 전 의원의 매력에만 의존하는 경향이 짙다)



프로그램의 역사라든지 패널들의 전문성, 진행자의 역량 등 <외부자들>의 넘어서야 할 산이 많지만, 무엇보다 <외부자들>이 고심해야 할 부분은 '진정성'이라고 할 수 있다. 앞서 전여옥 전 의원이 박 대통령의 한계로 여성 후배를 양성하지 않은 것을 꼬집었다고 언급했는데, 그 발언 자체는 신선했을지라도 그 발언의 주인이 전여옥 전 의원이라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지금에야 박 대통령에게 날선 혀를 겨누고 있지만, 그가 박 대통령의 '입'이었던 시절이 있었다는 걸 온국민은 알고 있지 않은가. 


안형환 전 의원은 국회의원(2008년~2012년)이던 당시 한나라당 내에서 친이계 핵심으로 당 대변인까지 지냈고, 과거 새누리당의 핵심이었던 김무성 의원과 가까운 사이로 분류된다. 퇴행과 퇴보의 시작이었던 이명박 정부의 실패의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다. 전여옥 전 의원도 마찬가지다. 이런 사람들이 '물 만난 고기'처럼 방송에 나와 과거 자신들과 '한패'였던 이들을 '씹어대고' 있으니 한편으로 시원하긴 하지만, 그 '진정성'에 의구심이 드는 건 당연하다. 


<외부자들>을 지켜보는 시청자들도 마음 속으로 그 불편함을 안고 있을 것이다. 통쾌한 듯 들리는 저 화려한 언어의 뒤편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구린내'가 사라지지 않는 한 '<외부자들>이 <썰전>의 대항마가 될 수 있을까?'라는 물음에 대한 답은 'NO'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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