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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적> 충원군의 몰락, 현실 속 누군가가 떠오르지 않는가?

너의길을가라 2017. 3. 9.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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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놈이야. 어떤 놈들이 그런 소문을 퍼뜨려. 제안대군이며 월산대군은 내수사를 지들 것인냥 펑펑 갖다 쓰는데. 나는 여악이나 몇 데리고 말 몇 필밖에 빌려쓴 것밖에 없어. 그런 나를 모함해? 나와 전하 사이를 이간질해? 내 조부이신 양흥대군은 세조대왕을 도와 이 나라를 세우셨거늘, 감히 손자인 나를 모함해? 할아버지, 할아버지, 할아버지~"


한 사내가 울부짖는다. 얼굴에 핏대를 세우며 자신을 변호한다. 스스로를 옹호한다. 그에겐 '소문을 퍼뜨린' 어떤 놈들이 문제이고, 더 큰 부정과 부패를 저지른 다른 누군가를 상대 비교하며 자신의 죄악을 감추기에 여념이 없다. 자신의 잘못을 들추는 건 '모함'일 뿐이고, 자신의 조부가 세조를 도와 '반정'에 성공했던 일을 '나라를 세웠다'고 표현하며, 그 '공()'을 앞세워 모든 것을 정당화하기에 급급하다. 한마디로 천박하다. 추잡하다. 스스로를 돌아볼 줄 모르는 한 인간의 처절한 민낯이 그러하다.


저 사내는 바로 MBC <역적: 백성을 훔친 도적>의 충원군 이정(김정태)이다. '왕족'이라는 신분을 이용해 끔찍하고 무자비한 언행을 일삼고, 온갖 부정과 부패를 저지르는 타락한 인물이다. 드라마의 재미를 위해 창조한 가상의 인물이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세조의 서자였던 창원군 이성(李晟, 1457~1484)을 모티브르 삼은 것으로 보인다. 여종을 겁간한 일이나 잔인하게 살해한 사건 등 유사성이 크다. 어린 시절부터 방탕하고 궁중의 예법을 무시하는 등 그야말로 안하무인한 행동의 주인공이 바로 창원군 이성이었다고 한다.


다시 드라마 속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길동(윤균상)은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충원군을 치기로 결심하고, 이를 위한 계획을 착실히 수행해 나간다. 첫 번째 방법은 여색을 밝히는 충원군의 방탕함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기방인 활빈정을 열어 충원군을 초대해 주색에 빠지도록 만들었다. 길동은 '언론(소문)'을 활용해 충원군이 나랏돈을 함부로 쓰고 여색에 빠져있다는 사실을 연산군(김지석)의 귀에 들어가도록 만든다. 하지만 '왕족'이라는 확실한 신분은 충원군의 든든한 보호막이었다.




충원군은 '모함'을 당했다며 울분을 터뜨렸지만, 여전히 '왕족'이라는 타이틀은 굳건했다. 그의 입지는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았다. 이대로 복수는 실패하는가. 길동은 그제야 깨달았다. 충원군을 징벌할 수 있는 방법은 그의 나쁜 짓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임금의 기분을 나쁘게 만드는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길동은 연산군의 '역린'이 그의 할아버지인 세조라는 것을 알아내고, 충원군이 세조에 대한 흉문을 퍼뜨렸다고 몰아간다. 여기에 김일손의 조의제문 사건과 얽히고설키면서 파급력은 급격히 커진다. 


충원군을 신뢰하고 있던 연산군은 당황하지만, "만약 종친이라 해서 봐준다면 누가 두려움을 알겠나."며 "충원군을 국문하라."고 지시한다. 결국 길동의 번뜩이는 재기가 성공을 거둔 셈이다. 반역에는 왕족이라는 신분도 무의미한 것이었으니 말이다. 머리가 산발이 된 채 국문을 당하게 된 충원군은 자신의 결백을 증명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절체절명의 순간, 그의 머릿속을 스쳐가는 사람이 누구였을까. 우습게도 이 모든 판을 짜서 그를 위기 속으로 빠뜨린 '길동'이었다. "발판이(윤균상)"를 외치는 꼴이라니. 사이다와 같은 전개라 할 만 했다. 


서두에서 인용했던 충원군의 언어 속에서 현실 속의 누군가가 오버랩되어 떠오르지 않는가.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지 못하고, 오로지 누군가의 '모함', '음모', 이간질'이라고 떠들어대는 그 누군가 말이다. 특검에 의해 명명백백하게 밝혀진 혐의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고, 자신의 옛 측근들에 대해서 "나를 모함하기 위해 작전을 꾸몄다."고 오리발을 내밀고 있는 그 누군가. "정말 억울하다. (나한테) 누명을 씌우고 있다."고 주장하고, "자백을 강요하고 있다. 너무 억울하다"고 소리치다 "염병하네"라는 카운터 펀치를 얻어맞는 그 누군가.



바로 최순실 씨 말이다. 지난 40년 동안 그야말로 '가족'처럼 지내왔던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씨는 '공범'으로서 국정농단을 주도했다. 특검은 최순실의 민원에 박근혜 대통령이 '해결사' 노릇을 했다는 내용의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최순실 씨는 그의 독특한 '신분'을 이용해 인사를 주무르고,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을 통해 각종 사익을 추구했다. 그뿐인가. 자신의 딸 최유라의 이화여대 부정입학을 비롯해서 각종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으며, 체육계를 비롯해 국정운영 전반을 쥐락펴락했다. 


저들은 충원군처럼 '여악이나 몇 데리고 말 몇 필밖에 빌려쓴 것밖에 없'다고 여기며 억울해하고 있진 않을까? 혹은 충원군처럼 애꿎은 '발판이'를 찾고 있는 건 아닐까? 자신들이 저질렀던 범죄들, 그리하여 대한민국의 온 국민을 자괴감에 빠뜨렸던 '옴'과 '악창' 같은 자신들의 민낯을 살피지 못한 채 말이다. 지난 40년 동안 그야말로 '가족'처럼 지내왔던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씨는 '공범'으로서 국정농단을 주도했다. 이쯤되면 누가 대한민국의 대통령이었는지 의아할 지경이다. 


그렇다고 박 대통령이 최순실 씨에게 휘둘리기만 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이 모든 문제의 근원은 역시 대통령 본인이기 때문이다. 이제 내일이면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결과가 나오게 된다. 부디 이 땅에 '정의'가 실현되길 희망한다. 만약 국정을 농단한 저들이 '탄핵'이라는 심판을 받지 않고 제대로 처벌받지 않는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이 전근대의 어느 시절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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