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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썰전>이 달라졌다? 박형준에 대한 기대와 우려

너의길을가라 2017. 7. 14.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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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빈자리가 생겼다. 부담이 큰 자리였다. '누굴 갖다놔도 이전만 못할 것'이라는 인식이 팽배했다. '잘해야 본전'이라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자연스레 섭외도 난항을 겪었다. 마땅한 인물이 없었다. 그만큼 까다로운 공석이었으니까.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저쪽'의 인력풀이 그만큼 쪼그라들었구나. 하긴, '전임자'도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았던 건 아니었으니. 대체자를 쉽사리 구하지 못하자 세간의 이목은 더욱 집중됐다. 여러 이름이 거론됐고, 결국 낙점이 됐다. '박형준'이었다. 

 

JTBC <썰전>의 한 축을 담당했던 '전스트라다무스' 전원책 변호사가 '메인 앵커'라는 오랜 꿈을 이루기 위해 TV조선으로 떠난 빈자리, '보수 논객'의 명패에는 박형준 동아대학교 교수의 이름이 새겨졌다. 이와 같은 <썰전> 제작진의 결정에 대해 애청자들의 호불호는 명확히 갈렸다. 과거 유시민 작가가 "과거 정치인으로 보면 박형준씨가 좋은 토론 파트너였다"고 치켜세웠을 만큼 '합리적인 인물'이라는 평도 있었지만, '불호'의 의견이 훨씬 많았던 까닭은 박형준 교수의 정치 이력 탓이었다. 

 


 

박 교수는 지난 2007년 한나라당(자유한국당의 전신)의 대변인을 맡았고, 2008년부터는 MB정부에 발탁돼 대통령실 홍보기획관과 정무수석비서관을 지내며 정치적 전성기를 누렸다. 장관급인 국회 사무처 사무총장(2014년 9월~2016년 6월)도 거쳤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내리막길을 걸었다. 과거 <썰전>에 출연해 "신문법으로 인해 당시 박근혜 대표에게 단단히 찍혔다"며 '그 여파가 지금까지 이어져 지난 총선에서 물먹었다'고 밝힐 만큼 '앙금'도 쌓여 있어 보였다.


<썰전>의 주 시청층이 '진보'와 '중도' 성향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MB 정부의 '부역자(라는 표현이 좀 과하더라도 뉘앙스를 살리기 위함이니 이해하길 바란다)'에 대한 인식이 좋을 리가 없지 않겠는가. 게다가 MB정부의 최악의 유산인 '4대강 사업'을 홍보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섰던 과거도 부담스럽다. "환경단체나 야당에서 주장하는 문제점들은 사실 60년대 70년대의 관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던 과거의 문제적 발언은 인터넷을 조금만 뒤져봐도 수두룩하게 쏟아진다.


차라리 MBC <라디오스타>가 규현의 빈자리를 스페셜 MC를 통해 채우며 최적의 인물을 찾는 방식을 벤치마킹하는 게 어땠을까, 라는 아쉬움이 들었다. 제작진의 결정이 지나치게 성급했다는 생각을 하며 방송을 지켜봤다. 박 교수는 첫 출연에서 자신의 장점이라 할 수 있는 차분함과 침착함을 십분 발휘했다. "재미면에서 걱정된다"는 김구라의 걱정에 "은근히 곱씹어 볼 수 있는 블랙 코미디는 참여할 수 있을 것"이라 받아치며 '농구에서 자신의 특기가 노룩 패스'라는 블랙 유머를 던져 웃음을 더하기도 했다. 

 

 

"국민의 당이 머리를 잘랐는지는 모르지만 추미애 대표가 협치의 머리를 자른 건 분명하다."

"화합해야 할 협치가 위협하는 협치가 됐네요."

"붕어빵에 붕어가 없듯이 프랜차이즈에 프랜차이즈(자유)가 없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했던가. 자리는 사람을 드러내는 도구일 뿐인 걸까. 공식적인 패널로 자리했던 첫 출연에서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했던 박 교수는 두 번째 방송에서 한결 편안한 태도를 보여줬다. 조곤조곤 자신의 생각을 조리있게 설명했고, 촌철살인의 한줄 평을 통해 유 작가가 혀를 내두르게 만들기도 했다. 어차피 비교는 불가피한데, 전원책 변호사가 '불'이었다면, 박 교수는 '물'이라 할 만큼 두 사람의 캐릭터는 판이하게 달랐다. 당연히 프로그램(토론)의 분위기도 변할 수밖에 없었다. 


가장 큰 변화는 전 변호사가 주도하는 아재 개그(와 같은 예능적 흐름) 사라졌고, 토론 과정에서 자주 등장하는 '버럭'과 '막말(에 가까운 발언)'도 없어졌다는 점이다. 동의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선 상대방을 존중하고, 물러설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선 논리의 각을 세웠다. 적어도 '욱'이 아니라 대화와 토론을 통해 진행되는 <썰전> 본연의 의미를 되살리는 데 성공했다. 따라서 전 변호사를 '커버'하는 데 급급했던 유 작가도 본연의 임무라고 할 수 있는 '토론'에 본격적으로 참여하게 됐다. 

 

 

유시민 : 북한이 스스로 선택하기 전까지는, 물리적 수단을 쓰지 않고는 이 두 체제를 같게 할 방법이 없어요. 그래서 먼저 평화가 확고히 정착되지 않으면 그 상황에서 통일 논의를 해본들 서로의 차이만 부각시키고 싸움거리만 만들지 현실에서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이런 인식이에요.

박형준 : 그 방향 자체는 저는 잘못된 게 아니라고 봐요.

유시민 : 아, 그래요? 동의하세요?

박형준 : 그건 동의하죠. 사실 그건 굉장히 중요한 얘깁니다. 왜냐면 한반도에 전쟁이 나면 미국의 입장에선 분쟁 지역의 하나일 뿐이지만, 우리 입장에선 국민의 생존 기반이 무너지는 일이기 때문에 우리 입장에서는 전쟁과 같은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상황을 관리하는 게 가장 중심적인 과제가 되는 거예요.


불과 2주 전이었다면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라는 '욱'을 마주해야 했을 유 작가는 상대방의 예상치 못한 '동의'에 놀라야 했다. 물론 그것이 전면적 동의가 아니었다 하더라도 말이다. 이제 <썰전>의 두 패널은 '평행선을 달리는' 결코 만날 수 없는 적 아니라 좀더 진지하고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토론의 대상이 된 것이다. 이 장면들을 보면서 '제작진의 성급함'을 의심했던 기존의 판단을 재고할 수밖에 없었다. 오히려 앞으로의 <썰전>에 대해 기대를 갖게 됐다. 


박형준 교수를 섭외한 건 <썰전>으로서는 새로운 도전이다. '독한 혀들의 전쟁'이 JTBC <썰전>의 부제라는 걸 떠올리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일반적인 관점에서 볼 때, 더 이상 <썰전>의 혀들은 독하지 않다. 게다가 그 혀들은 눈에 보이는 전쟁을 벌이지도 않는다. 하지만 뒤집어 생각해보면, 과격한 표현을 하고 막말을 던져야 독한 건 아닐 것이다. 마찬가지로 미사일이 날아다니고, 거센 폭발과 굉음이 들려야만 전쟁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더욱 독한 전쟁이 시작된 건 아닐까. 논리와 논리가 부딪치는 살얼음의 전쟁 말이다.

 

 

출연진의 변화라는 엄청난 변화를 겪은 <썰전>의 시청률이 4.888%(전 변호사의 마지막 출연 방송)에서 5.638%, 5.981%로 상승 곡선을 타고 있는 건 다수의 시청자들이 이 전쟁을 반기고 있다는 방증일 것이다. 할 말은 하는 전원책 변호사의 화끈한 스타일을 지켜보면서 속이 시원하다고 생각했을 사람들도 일부 있겠지만, '품격 있는 보수'의 점잖은 모습을 기대했을 사람들의 기대치가 적잖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분명히 박 교수는 보수층의 그런 기대감을 충족시켜주고 있다. 

 

"계속 발전할 겁니다. 긴장하세요."라는 박 교수의 말이 반갑지만, 한편으로는 의심이 남는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MB정부의 핵심으로 활약했던 박 교수에 대한 불안 말이다. 앞으로 4대강 문제를 비롯해 첨예한 사안들이 도마 위로 올라올 게 뻔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품격 있는 보수'를 상대해야 할 유 작가의 어깨가 무거워졌다. 그동안 자의반 타의반 날이 무뎌졌던 유 작가였던 만큼 바짝 긴장해야 할 듯 싶다. 제대로 된 '썰전'이 시작됐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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