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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쌈, 마이웨이>, 우리들의 '남일바'를 꿈꿔보자!

너의길을가라 2017. 7. 12.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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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우리가 똘끼 한번 안 부려봤으면 네가 MC가 되고, 내가 파이터가 되고, 우리 백 사장이 CEO가 되고, 우리 김 과장께서 횡경막을 찾았겠냐고. 못 먹어도 고 좀 하자. 남들이 뭐래도 쪼대로 사는 게 장땡이고."

"사고 쳐야 노다지도 터지지?"

"남들 뭐 먹고 사는지 안 궁금하고."

"내가 서 있는 여기가 메이저 아니겠냐?


다시 '남일바'에 모여앉은 청춘들, 고동만(박서준), 최애라(김지원), 김주만(안재홍), 백설희(송하윤), 이 네 사람은 자신들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위해 건배를 한다. 비록 피터지는 '쌈'은 앞으로도 계속될 테지만, 그들은 꿋꿋하게 '마이웨이'를 걸어갈 것이다. 늘상 그래왔던 것처럼 또 다시 삐걱대고 휘청이겠지만, '아프니까 청춘이 아니라 사고를 쳐야 청춘'이라는 당돌한 외침은 또 다시 그들을 일으켜 세우리라.<쌈, 마이웨이>의 청춘들을 보며 가슴 설렜던 우리들이 그들을 떠올리며 그러할 것처럼 말이다.


드라마 한 편이 끝났다. '고작' 드라마 한 편이라 말하는 이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TV를 켜면 지겹도록 나오는 게 드라마니까. 일년에 수십 편씩 방송되는 게 드라마니까. 그러나 한 편의 드라마를 만나고, 그 이야기에 빠져 종영까지 '끝까지' 보게 되는 일은 흔치 않다. '봤으니까 그냥 보는 거야'라며 의리로 하는 시청이 아니라 캐릭터와 스토리에 매료돼 감정이입을 하는 건 특별한 일이다. 함께 웃고, 같이 아파하고, 더불어 살아가고, 서로 응원한다. 드라마 한 편을 '겪는다'는 건, 참으로 기묘한 경험이 아닐 수 없다. 


그 한 시간을 위해 고된 하루를 버티고, 온갖 '물음표'와 '느낌표'를 끌어안은 상태로 한 시간에 몰두한다. 정말 이상하기도 하지, 시간은 왜 이리도 금방 지나가는 걸까. '다음 주까지 어떻게 기다려!'라는 한숨과 함께 TV를 끄지만, 뻑뻑한 일주일을 견디는 힘이 돼 주는 건 그 한 시간짜리 해갈(解渴)이다. 누군가는 '고작 드라마 한 편', '고작 16시간'이라 할지 모르겠지만, 백설희를 연기한 송하윤의 말처럼 우리에겐 '가슴 뜨거워지는 16시간'이었다. 뜨거웠던 만큼 이별의 시간은 길고 아릴 수밖에 없다.

 

 

KBS2 <쌈, 마이웨이>는 청춘 드라마였다. 청춘들의 꿈과 사랑, 그리고 그들의 삶을 정성스레 담아냈다. 판타지를 제거한 지극히 현실적인 설정을 토대로 과장되지 않은 담담한 어조로 소소한 이야기들을 맛깔스럽게 펼쳐냈다. 그 때문에 수많은 청춘들로부터 공간과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5.4%로 시작했던 시청률은 마지막 회에서 최고 시청률을 갈아치우며 13.8%까지 치솟았는데, <쌈, 마이웨이>가 보여준 기적과도 같은 성공 신화는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제작비가 무려 115억이 들어간 영화 <리얼>과 불과 26억 원에 불과한 <박열>의 상반된 행보는 '사이즈'가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마찬가지로 엄청난 제작비가 투입됐던 드라마들이 기대와 달리 단박에 고꾸라지는 사례가 비일비재한 것도 마찬가지다. <쌈, 마이웨이>는 '사이즈'가 큰 작품도 아니었고, 당연히 손꼽히는 기대작도 아니었다. 그러나 이 드라마는 웬만한 블록버스터 드라마보다 더 많은 울림을 줬고, 값을 매길 수 없는 크나큰 위로를 안겨줬다. 


결국 하나의 작품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연출과 시나리오, 배우들의 연기 틍이 톱니바퀴 맞물리듯 잘 돌아가야 한다. <쌈, 마이웨이>의 성공은 이 세 가지 요소와 더불어 그 안에 담겨 있는 '이야기'의 중요성을 떠올리게 만든다.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가. 그 이야기를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 <쌈, 마이웨이>의 경우에는 이야기의 선명성이 도드라졌고, 그 전달력도 탁월했다. '달동네'로 상징되는 절박한 현실, 그런 젊은이들을 마이너 취급하는 사회의 왜곡된 시선, 그럼에도 기죽지 않고 자신들의 꿈을 향해 달려가는 청춘들.

 

 

동생의 병원비를 구하기 위해 승부조작에 가담할 수밖에 없었던 고동만. 그는 꿈을 빼앗긴 채 그야말로 근근이 삶을 버텨가고 있던 중 '격투기'를 발견하고, 김탁수(김건우)와의 재대결을 통해 멈춰져 있던 자신의 시계를 다시 움직인다. "지금까지 싹 다 개꿈 꾼 거고, 내일부터 다시 진드기 잡고 택비 돌리고 이삿짐 싸라고 하면 나는 진짜 하루도 못 살 거 같아. 나는 다시는 들러리로 살기 싫어. 꿈도 없고, 배알도 없는 등신처럼 그냥 숨만 쉬고 살기 싫다고."라며 애라를 설득하던 그의 모습은 절절하면서도 가슴 뜨겁다. 


어렸을 때부터 백지연 같은 아나운서가 꿈이었던 애라의 현실은 백화점 안내원이었지만, 마이크를 잡는 것이 너무도 짜릿했던 그는 결국 현실을 박차고 꿈을 향해 달려간다. 방송국에 아나운서 면접을 보러 다니던 애라는 격투기장에서 자신의 심장이 뛰는 것을 발견한다. 그리고 선택의 갈림길에서 과감하게 격투기장 MC가 되는 길을 결정한다. 타인의 시선, 사회의 시선을 뛰어넘어 "내가 서 있는 여기가 메이저 아니겠냐?"라고 외치는 애라의 당당함에 속이 시원하기만 하다. 

 


금수저 인턴 장예진(표예진)의 과감한 대시를 받고 마음이 동해 '바람'을 피우는 바람에 '나쁜 놈'이 되긴 했지만, 현실적인 남자친구이자 흙수저 직장인이었던 김주만(안재홍)은 또 어떠한가. 그는 야근을 밥 먹듯이 하고, 주말까지 출근하는 등 고단한 삶을 살아 왔다. "특급은 못해줘도 중간은 해주고 싶었어. 그런데 6년을 뺑이 쳐도 그 중간이 어렵더라."는 그의 씁쓸한 고백은 평생을 일해도 자신의 집 한 채를 마련하기 어려운 현실 속 흙수저들의 처절한 외침이기도 했다. 


'엄마'가 꿈이라는 백설희(송하윤)는 남자친구를 위해 끝없는 헌신과 희생을 보여줬다. 누군가는 '그게 무슨 꿈이야?'라고 타박할지도 모르지만, "세상 사람들은 다 자기 계발해야 해? 왜 엄마는 꿈으로 안 쳐줘."라고 말하는 그에게 그 어떤 반박도 할 수 없었다. 주만과의 결혼을 꿈꾸면서 비정규직에 만족하며 살아가던 설희는 전부라고 생각했던 그 관계가 부서졌을 때, 또 다른 자신을 마주한다. 자신의 블로그를 찾은 사람들이 매실액을 주문하자 이를 계기로 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누구보다 멋지게 사직서를 제출한 그의 얼굴이 아름답기만 하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 그 사이를 좁히려는 꿈의 뜀박질. "인생 한 판 싸움을 멋있게 시원하게 마이웨이로 달려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고자 패기 넘치는 제목으로 했다."는 제작진의 설명처럼 <쌈, 마이웨이>는 네 명의 청춘들과 그들의 주변 인물들을 통해 그 가슴 뛰는 뜀박질을 패기 넘치게 담아냈다. 또, 따뜻한 사람들을 통해 여전히 우리 사회에 온기가 남아 있다는 걸 말해준 임상춘 작가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 그가 전해고자 했던 메시지들이 고스란히 이 시대의 청춘들에게 가닿았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자신만의 꿈을 찾아나선 고동만 · 최애라 · 김주만 · 백설희의 이야기는 끝이 났다. 하지만 그들을 통해 위로를 받았던 대한민국의 청춘들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우리는 다시 '현실'을 살아가야 한다. '당신이 서 있는 그곳이 메이저'라는 <쌈, 마이웨이>의 메시지가 유효하려면, '못 먹어도 고 좀 하자'는 외침이 든든한 버팀목이 되기 위해서는 '6년을 뺑이 쳐도 중간이 어려운' 현실을 바꿔나가야만 한다. '청춘들아, 사고를 쳐도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자, 우리들의 '남일바'를 꿈꿔보자. 이 노래가 조금 힘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대가 속한 세상이 그대를 지치게 하고 그대가 그대가 아닌 사람이기를 강요하네 

그대가 속한 세상엔 많은 사람들이 있고 많은 사람들 가운데 나라는 한사람이 있네

세상의 어둠이 짙어 그대가 길을 잃을 때 내가 빛이 되고 싶어 그대는 그대로 그냥 그대인 채로 남으면 돼


- 스텔라장, <그대는 그대로>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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