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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일기 2>의 실패로부터 나타난 나영석 월드의 균열

너의길을가라 2017. 9. 28.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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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만 대면 그것이 무엇이든 황금으로 변하게 만드는 미다스(Midas)의 손. 예능계에서 나영석 PD의 존재감은 그에 못지 않다. 아니, 그 이상일지도 모르겠다. 그의 이름은 매번 기대감을 품게 했고, 그의 작품들은 어김없이 만족감을 줬다. 실패를 몰랐다. '불패의 신화'를 이어갔다. <삼시세끼> 시리즈, <꽃보다 할배>를 비롯한 '꽃보다' 시리즈, <신서유기> 시리즈가 그 대표적인 예다. 시청률은 물론 화제성까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그의 행보는 더욱 거침없이 이어졌다. 


나영석 PD는 후배들과의 '협업'을 통해 참신함과 다양성을 확보하면서 '확장'을 도모했다. 이우형 PD와 <신혼일기>, 이진주 PD와 <윤식당>, 양정우 PD와 <알쓸신잡>을 선보였다. 올해 방송됐던 세 작품 모두 여러모로 호평을 받았다. 나영석 PD 특유의 '판타지'가 대중들의 요구와 잘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은퇴 후 자영업'이라는 키워드로 대중의 판타지를 자극했던 <윤식당>은 '대박'을 쳤고, 인문학과 예능을 '여행'이라는 틀 안에 집어넣는 데 성공한 <알쓸신잡>은 '지적 판타지'를 충족시키며 새로운 예능의 출발을 알리기도 했다.



<신혼일기>의 경우에는 MBC <우리 결혼했어요>의 '가상(假想)'에 코웃음을 치며, '진짜 부부'의 신혼 생활을 보여주는 승부수를 띄웠다. '가짜 부부'들의 어설픈 '흉내내기'에 짜증이 났던 대중들의 호기심과 판타지를 절묘히 자극한 셈이다. 결과는 어땠을까? 구혜선 - 안재현 부부의 극상의 달달함이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으며 제법 괜찮은 성적표를 거뒀다. <신혼일기>라는 프로그램의 제목과 콘셉트에 부합하는 '섭외'와 '콘텐츠'가 맞아떨어졌던 게 주효했다. 


물론 여기에는 한 가지 맹점이 있다. <신혼일기> 시즌 1의 시청률의 추이를 살펴보자. 첫회는 5.585%(닐슨 코리아 기준)로 준수한 출발을 알렸지만,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이며 결국 3.187%로 마무리 됐다. 이런 추세는 시즌 2에서도 고스란히 반복됐다. 시즌 1의 시청률을 이어받은 듯한 시청률인 3.172%로 시작해 2.061%, 1.714%로 떨어지더니 1.533%로 종영됐다. <신혼일기> 시리즈가 보여준 이와 같은 일관된 흐름은 '대중들의 호기심과 판타지가 충족되지 않았다'는 것 외에는 달리 분석할 길이 없다. 



시즌 1의 경우에는 '재미' 면에서 국한해서 지적을 받았다면, 시즌 2의 경우에는 총체적 난국에 가까웠다. 장윤주 - 정승민 부부의 경우에는 '재미'뿐만 아니라 프로그램의 '정체성'에 문제점이 드러났다. '가족의 탄생'이라는 부제에 '육아'를 포함시키는 선택은 패착에 가까웠다. 육아의 피로가 강조되자 신혼의 달달함은 상쇄됐고, 시청자들의 입장에선 이도저도 아닌 어중간한 콘셉트가 혼란스럽기만 했다. '리얼'을 강조하려 했다지만, '고충'만 늘어놓는 장윤주 - 정승민 부부의 <신혼일기>는 그 어떤 '판타지'도 충족시키지 못했다.


결국 시청자들이 원했던 건 말 그대로 '신혼일기'였지 '육아일기'가 아니었다. 물론 어떤 신혼에는 '육아'가 포함되기도 하지만, 애초에 시청자들이 <신혼일기>에 기대했던 건 육아가 이뤄기지 전 시기의 '알콩달콩함'이 아니었던가. 시청자와의 기대를 저버린 프로그램이 외면을 받는 건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장윤주는 육아로 인한 고충 때문에 기존의 예능에서 보여줬던 시원시원한 성격이라든지 화끈한 매력이 잘 드러나지 않았다. 출연자의 캐릭터가 살아나지 않으니 재미가 있을 리가 있겠는가. 



<신혼일기 2>의 실패는 나영석 PD 사단의 첫 실패다. 승승장구했던 그의 앞에 나타난 첫 '균열'인 셈이다. 물론 매번 성공만 할 수는 없다. 여러가지 도전을 하다보면 실패는 자연스레 뒤따른다. '공동연출'로 이름을 올리곤 있지만, 후배들이 보다 주도적으로 프로그램을 연출하고 있는 상황에서 <신혼일기2>의 실패를 나영석의 위기로 몰고가는 건 분명 과하다. 그러나 최근 <삼시세끼>가 '게스트에 의존한 쿡방'으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심심찮게 나오고 있는 걸 보면 일정한 '균열'은 분명 감지된다.


'나영석 월드'에는 우리가 가지지 못한 혹은 잃어버린 무언가에 대한 '대리 체험'이라는 '판타지'가 있었다. 하지만 최근의 나영석 PD의 프로그램들에는 그 부분이 사라져버린 듯 하다. 그것이 후배들 양성이라는 '확장' 때문에 생긴 일시적인 현상인지, 6년 동안 휴식기 없이 달려온 나 PD의 창작력의 소진인지 모르겠지만, 분명 재정비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예능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한편, '라이프 스타일'에 대한 진지한 질문을 던졌던 나 PD가 이 균열을 어떻게 활용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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