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킴의 극장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변요한과 김윤석.. 묘하게 닮은 두 남자의 타임슬립

너의길을가라 2016. 12. 15.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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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향한) 타입슬립'은 '후회'와 동의어에 가깝다. 그 태도는 소극적인 '관조'라기보다는 적극적인 '욕망'에 가깝다. '과거를 바꾸고 싶다, 그래서 현재도 변화시키고 싶다'는 바람의 적극적 투영이다. 어쩌면 그 사고방식은 어린아이의 '떼쓰기'와 다를 바 없어 보인다. 가지지 못한 것(사람)을 기어코 내 손안에 넣고야 말겠다는 자극적이고 강렬한 욕심이 만들어낸 판타지가 결국 '타입슬립'이 아니던가. 그리하여 '현실'의 모든 것을 놓쳐도 상관없다는 무책임함의 발로이기도 하다.


이쯤되면 간단히 소극적이라 치부했던 '관조'는 오히려 성숙함일지도 모르겠다. 그저 딱 한번만 보고 싶다, 그거면 됐다는 '연민'은 자신을 완전히 컨트롤 할 수 있을 때 나오는 '힘'이다. 그런데 시간 여행을 떠난 우리들은 과연 거기에서 멈출 수 있을까. 멀찌감치 떨어져 바라보기만 하는 데서 만족할 수 있을까. 쉽지 않은 일이다. 아니, 불가능한 일이다. 이미 발을 들여놓은 순간부터, 과거를 향해 몸을 움직인 순간부터, 답은 정해져 있었던 건 아닐까. 우리는 연약한 인간에 지나지 않고, 욕망은 그 연약함을 오래도록 지배해왔다.



"과거는 되돌릴 수 없어. 지금 이 순간 역시,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이고."

"당신에겐 과거지만 나한텐 미래에요. 그 미랜 내가 정하는 거고!"


현재의 한수현(김윤석)은 캄보디아에서 의료 봉사를 하던 중 한 소녀를 치료하고, 소녀의 할아버지로부터 답례로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10개의 알약을 받는다. "삶은 당신이 잠들지 못할 때 벌어지는 일입니다."라는 말과 함께. 귀국하는 비행기에서 한 알을 삼킨 그는 딱 30년 전인 1985년으로 돌아가 과거의 한수현(변요한)을 만난다. 그건 '갈망' 때문이었다. '폐암'으로 죽음에 서서히 다가가고 있던 한수현은 '회한'처럼 남아 있던 첫사랑, 자신의 목숨보다 더 소중했던 연아(채서진)를 한번만이라도 볼 수 있기를 바랐다.


30년 후의 한수현이 굳이 과거까지 찾아와 연아를 만나려 한다는 사실에 의아함을 느낀 과거의 한수현은 결국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다. 처음에는 '타입슬립'을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었던 과거의 한수현은 끔찍한 사고를 막기 위해 미래의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과거가 바뀌면 현실이 뒤죽박죽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현재의 한수현은 '관조'에 그치려 했지만 이 상황에서 발을 빼긴 이미 늦어버렸다. 만나지 말았어야 할 두 사람(아니, 한사람 인가?)의 만남은 그 자체로 이미 '현실'을 변화시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당신, 거기 있어 줄래요>는 과거를 바꾸고 싶지 않은 미래의 나와 현실을 바꿔야만 하는 과거의 나 사이의 충돌이다. 기존의 '타임슬립'을 소재로 한 수많은 이야기들과 차별화되는 지점은 바로 이것이다. 물론 이 싸움의 승자는 당연하게도 과거의 나일 수밖에 없다. 자신의 행동이 미래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깨달아버린 과거의 한수현은 보다 강력하게 현재의 한수현을 압박하고, 이를 실감한 현재의 한수현은 과거의 자신에게 이끌려 다닐 수밖에 없다.


김윤석은 기존의 강(强)의 연기를 버리고 힘을 뺀 채로 세월의 무게가 고스란히 담긴 중년의 수현을 연기했다. 과거의 연아를 바라보는 눈빛이나 헬륨 풍선을 들고 나타난 그의 모습은 낯설었지만 한편으로는 매우 반갑기도 했다. 변요한은 대선배 김윤석을 상대로 자신만의 연기 내공을 뽐냈는데, 젊음의 강렬함과 동시에 유약함과 미숙함을 적절히 표현해냈다. 깊은 눈빛을 통해 발현되는 내면 연기는 그가 앞으로 충무로를 이끌 배우가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했다. 두 배우는 케미가 잘 맞을 뿐만 아니라 생각보다 닮았다.



또, 김옥빈의 여동생으로 먼저 이름을 알린 채서진은 배우로서 자신이 가진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했다. 수현의 친구 역할 태호 역을 맡은 김상호와 안세하는 이야기가 다소 무거워지거나 전개가 뻑뻑해질 때 쯤이면 어김없이 등장해 '웃음'이라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 '타입슬립'이라는 판타지 소재를 가져왔으면서도 굳이 시간을 이동할 때 쓸데없는 CG를 쓰지 않은 부분은 오히려 담백했다. 잘 할 자신이 없으면 아예 없애버리는 것도 한 방법이다. 


'첫사랑'이라는 보편적인 감성을 자극하면서도 '부성애'까지 놓치지 않은 <당신, 거기 있어 줄래요>는 추운 겨울에 관객들을 따스하게 위로한 좋은 선물이 되어 줄 것이다. 물론 숱하게 나왔던 '타입 슬립'과 관련된 영화나 드라마와 마찬가지로 뛰어난 개연성을 기대하진 말기 바란다. '적절한' 이야기를 '적절한' 수준에서 매듭 지은 탓에 '틈'이 존재하지만, 어차피 '감성'에 무게를 둔 영화이기 때문에 배우들의 '연기'에 초점을 맞춰 마음 편히 감상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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