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킴의 극장

<널 기다리며>, 괴물이 된 소녀만 남은 부실한 복수극

너의길을가라 2016. 4. 24.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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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 스릴러

국가 : 대한민국 

감독 : 모홍진 

제작/배급 : 영화사 수작 · 모티브랩 · 디씨지플러스 / NEW

런닝타임 : 108분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줄거리 : 당신이 우리 아빠 죽였지? 15년 전, 내 눈 앞에서 아빠를 죽인 범인이 드디어 세상 밖으로 나왔다. 15년을 기다린 이유는 단 하나! 아빠를 죽인 범인을 쫓는 소녀 ‘희주’ 앞에 유사 패턴의 연쇄살인사건이 발생하고 15년을 기다린 희주의 계획은 전혀 예측하지 못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는데… 15년의 기다림, 7일간의 추적 그 놈을 잡기 위한 강렬한 추적이 시작된다!



아빠를 죽인 범인을 15년 동안 기다렸던 한 소녀는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과정 속에서 스스로도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프리드리히 니체의 말에 이렇게 반박하다. "신이 죽었기 때문에 괴물이 필요하다" 그리고 한마디를 덧붙인다. "악이 승리하기 위한 조건은 단 한 가지인 것 같아요. 선한 사람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소녀는 악의 승리를 막기 위해 자신을 내던진다. 괴물이 된 소녀는 처연(凄然)하게 괴물과 맞선다.


<널 기다리며>는 사적인 복수(復讐)를 소재로 삼고 있는 다른 영화들과 큰 차이가 없다. 기존의 영화들의 클리셰(cliché)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법(法)'은 '죗값'에 걸맞은 '벌(罰)'을 내리지 못하고, 공권력을 대표하는 경찰은 무능하고 허술하고 답답하다. 이쯤되면 사인(私人)들이 불신을 품는 것은 당연하고, 자구책(自救策)을 강구하는 것도 자연스러워 보인다. 




상투적인 형식을 고스란히 답습하는 이 영화가 내세운 비장의 무기는 복수의 주체가 '소녀'라는 점이다. '소녀'가 누군가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자신의 복수를 이뤄내는 스토리는 약간의 차별성을 만들어낸다. 그 약간의 차별성을 과신한 것인지, 영화는 오로지 '소녀'에 집중한다. 그리하여 '소녀'는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는 예의 바르고 착한 순둥이였다가 집에서 혼자가 된 순간부턴 분노와 광기에 가득 찬 극단적 캐릭터가 되었다.


어떻게 하면 더 '매력적'으로 그려낼 수 있을지에 천착한 탓에 어떻게 하면 더 '설득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지를 간과했거나 무시한 티가 역력하다. 순수한 모습과 괴물 같은 모습, 이 두 가지 양극의 모습을 연기할 '얼굴'로 심은경을 캐스팅한 건 적절한 것이었지만, 슬럼프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그의 작위적인 연기는 오히려 '몰입'을 방해한다. 


<내일도 칸타빌레>를 통해 제대로 '홍역'을 치렀던 심은경은 <널 기다리며>를 통해 새로운 변신을 시도했지만, <써니>나 <수상한 그녀>에서 보여줬던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채 겉돈다는 느낌을 준다. 스릴러는 처음 도전했던 장르였던 만큼 어려움이 있었을 테고, 무엇보다 '희주'라는 캐릭터가 담고 있는 이중성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건 상당히 부담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오히려 돋보이는 건 싸이코패스 살인범 '기범'을 연기한 김성오였다. 무려 16kg이나 감량을 하는 등 캐릭터에 몰입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던 그는 캐릭터를 완벽하게 살려냈다. 뼈가 드러나 앙상한 몸을 압도하는 강렬한 눈빛은 관객들을 긴장시키는 '유일한' 요소였다. 그 외에 대영 역을 맡은 윤제문과 신참인 차형사 역을 맡은 안재홍 '죽은' 캐릭터 속에서 '평범한' 연기를 보이며 침몰한다.


기존의 (사적인) '복수'를 다뤘던 영화들이 '성인 남녀'를 통해 그 목적을 달성하려 했지만, <널 기다리며>는 '소녀'를 통해 관객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전달하고자 애쓴다. 하지만 '이야기'의 부실함을 감추기에 '캐릭터'가 매력적이지도, '장면'들이 흥미롭지도 않기 때문에 '범작(凡作)'에 머물렀다. 특히 '사적인 복수'가 결국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로 향할 수 밖에 없다는 결론은 그다지 마음을 움직이지 않는다.




'소녀'가 왜 '괴물'이 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설명이나 영화의 한 축이 되어야 할 '살인범(들)'에 대한 설명도 빈약하기 짝이 없다. 이제 '복수'를 소재로 영화를 만드려는 감독들도 고민을 통한 발전이 필요해보인다. '복수' 그 자체를 아주 기가 막히게 스크린에 구현하든지, '복수'에 대해 심층적이고 철학적인 고민을 담든지, 그 어느 것도 제대로 할 자신이 없다면 '그만둬야' 하지 않을까?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어 나타나야만 하는 '영화 속 현실'은 제법 씁쓸하다. 물론 그건 실제 현실을 어느 정도 반영한 것이리라. 영화 속만큼 '개차반'은 아니지만, '법'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공권력은 부실하다. 그렇다고 해서 '사적 복수'를 정당화하려는 생각을 키워가는 건 위험한 일이다. 법과 제도는 보완해 나가야 하는 것이지, 불만스럽다고 배제시켜선 곤란하다. 


피해자를 위한 지원, 가해자에 대한 공정한 처벌. 이 두 가지 날개가 정상적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사회적 관심을 기울여야 '희주'가 스스로를 괴물로 만드는 일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니체의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과정 속에서 스스로도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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