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킴의 극장

<괴물의 아이>, 괴물과 인간의 공존을 통해 짚어 본 가족의 의미

너의길을가라 2016. 4. 13.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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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거대한 산업으로 자리매김한 일본 애니메이션을 간단히 일반화할 수는 없다는 걸 알고 있지만,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가 담고 있는 특유의 정서와 그 안에 가득 녹아 있는 따뜻하고 섬세한 감성을 좋아한다. 그리고 그 애정을 따라 조금씩 빠져들다보면 어느새 마주하게 되는 '메시지'들을 두고 이저저리 사유해보는 시간들은 즐겁기만 하다. 



가령, 신카이 마코토(新海誠)의 정밀한 묘사들과 섬세한 언어에서 비롯되는 잔잔한 감수성은 애절(哀切)하기까지 한데 그야말로 심금을 울린다. 또, 호소다 마모루(細田守)의 휴머니즘에 기반한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메시지들은 가슴을 벅차게 만든다.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가 보여줬던 '자연친화적 세계관'은 수많은 지브리 팬들에게 인간과 자연의 '공존(共存)'에 대한 깊은 고민을 안겨주기도 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은퇴 이후 포스트 미야자키 하야오가 누구냐를 두고 애니메이션 팬들은 설왕설래(說往說來)했다.  정작 본인들은 그다지 원하지 않았겠지만, 대중들은 누군가의 빈자리를 다른 사람으로 자꾸 채우려 하는 '습성'이 있기 때문에 그 논쟁은 제법 흥미를 끌었다. 대표적인 인물로 거론됐던 것이 바로 신카이 마코토와 호소다 마모루였다. 


- 호소다 마모루 감독 -


신카이 마코토는 <초속 5센티미터> 등에서 짧은 호흡의 단편에선 탁월한 역량을 발휘했지만,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를 비롯해서 최근 작품인 <별을 쫓은 아이>까지 장편에선 기대에 못 미치는 평가와 성적을 거두고 있다. 반면, <시간을 달리는 소녀>를 통해 일본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은 당연히 포함되고) 전 세계에 이름을 날린 호소다 마모루는 내놓는 작품들마다 호평을 받으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작품 관객 수(일본)


<시간을 달리는 소녀(2006)> 18만 명

<썸머 워즈(2009)> 126만 명

<늑대아이(2012)> 344만 명

<괴물의 아이(2015)> 450만 명




“처음에 '포스트 미야자키'라는 말을 들었을 때 솔직히 좋진 않았다. 이제는 남들이 다들 그렇게 말하니까 익숙하다. 나는 미야자키가 되고 싶은 사람이 아니라 재밌는 작품을 만들고 싶은 사람이다." (호소다 마모루)


미야자키 하야오와 '악연'으로 얽혀 있는 그가 포스트 미야자키 하야오라고 불리고 있다는 건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대학 졸업 후 지브리에 지원했던 호소다 마모루에게 '거절 편지'를 썼던 것이 미야자키 하야오이고,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연출자로 낙점됐던 호소다 마모루의 세계관에 불만을 품고 팀을 중도에 해체시킨 것도 미야자키 하아오였다고 한다. 



이렇듯 악연으로 맺어져 있지만, 어찌됐든 호소다 마모루는 현재 미야자키 하야오가 떠난 일본 애니메이션의 '구원 투수'로 등판해 그 빈자리를 든든하게 메우고 있는 중이다. 지난해 11월 개봉했던 <괴물의 아이>도 흥행을 기록하며 '거장의 반열'에 오른 자신의 입지를 확고히 했다. 판타지 동화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 <괴물의 아이>는 생각보다 고찰할 만한 이야깃거리가 풍성한데, 그 이야기를 지금부터 간단히 해보도록 하자.


사고로 엄마를 잃고 아빠에게 버림받은 인간계의 소년 렌은 시부야의 거리를 헤맨다. 그러던 중 괴물 쿠마테츠와 우연히 마주치게 되고, 그 강렬했던 첫 만남은 두 사람을 사제지간으로 이끈다. 쿠마테츠를 쫓아 괴물의 세계인 쥬텐가이에 발을 들이게 된 렌은 '큐타(렌이 아홉 살이라는 점에 착안해 붙여진 이름)'라고 불리게 되고, '강해지고 싶다'는 열망을 품고 쿠마테츠에게 무술을 배우게 된다.




수장(首長)에 도전하기 위해선 제자가 있어야 한다는 기존 수장이 제시한 조건을 충족시켜야 했던 외톨이 쿠마테츠는 같은 처지에 놓여 있는 렌에 이끌려, 쥬텐가이에 인간을 들여서는 안 된다(인간과 괴물은 다른 공간에서 살아야만 한다)는 암묵적 규칙마저 허물고 만다. 사람인 큐타와 괴물인 쿠마테츠는 매일같이 티격태격 다투면서도 동질의식을 느끼며 서로를 닮아가고 성장한다.


전혀 다른 두 존재가 사제지간이 되고, '부대낌' 속에서 '가족'과 같은 관계로 발전해가는 모습은 잔잔한 감동을 선물한다. 이는 가족의 해체와 변화를 작품 속에서 꾸준히 다뤄왔던 호소다 마모루의 생각이 깊이 반영된 부분이다. 전작인 <늑대아이>에서 '싱글맘'을 이야기했다면, 이번에는 독신남이 부모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한 셈이다. 이렇듯 호소다 마모루는 가족의 해체와 변화라는 시대적 고민에 대해 여러가지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괴물의 아이>는 가족으로부터 버림받은 큐타의 성장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전혀 다른 두 존재가 '공존'할 수 있다는 '화합'의 메시지도 던지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가족의 해체와 변화'라고 하는 우리 사회가 당면한 문제들에 대한 고민도 담고 있다. 또, 가족을 '핏줄'로만 설명하고자 하는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에서 탈피해 진정한 의미의 가족이란 '부대낌'을 통해 함께 겪어가는 공동체라는 메시지도 전달한다.


더불어서 '아이'는 교육의 대상이고 '어른'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아야 하는 존재라는 기존의 인식을 뛰어넘어 '어른'과 '아이'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고, 서로에게 좋은 '선생'이 될 수 있다는 깨달음도 준다. 인간관계에 서툴고 제멋대로였던 쿠마테츠가 큐타를 받아들이고, '부모'의 역할을 하게 되면서 배려와 사랑을 깨닫게 되는 장면들, 다음 세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태도 등이 그것을 잘 말해준다.


<괴물의 아이>는 아버지가 된 호소다 마모루가 내놓은 첫 작품이었기에 그런 이야기들이 좀더 밀도있게 작품 속에 담긴 것 같다. "사회가 점점 더 일그러져 가는 것은 앞으로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지만 "애니메이션을 보는 아이들이 매우 현실적으로 그려진 세계와 사회를 보고 실망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그가 그리는 다음 '희망'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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