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듣는 귀

한밤중에 경찰서를 찾은 오신환 의원, 그는 왜 문제적 상황을 만들었나?

너의길을가라 2015. 10. 19.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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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전불납리 이하부정관(瓜田不納履 李下不整冠).


오이밭에 들어가면 신발끝을 고쳐 매지 말고 자두나무 밑에서 갓을 고쳐 쓰지 말라고 했다. 애초에 오해의 소지를 없애라는 말이다. 당사자에겐 다소 가혹한 말로 들릴 수 있겠지만, 굳이 불필요한 상황을 야기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런데 애써 오이밭에 들어가서 신발을 고쳐 신는 사람들이 있다. 예를 들면, 한밤 중에 경찰서를 찾아가서 조사를 받고 있는 지인을 면회하고 경찰과 대화를 나누는 국회의원처럼 말이다. 


그 국회의원 이야기를 좀 해보자. 지난 1일 밤 11시 35분 즈음 새누리당의 오신환 의원(서울 관악을)이 서울 관악경찰서 형사당직실을 찾았다. 도대체 국회의원이 밤 늦게 경찰서를 찾을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벌써부터 '구린 냄새'가 난다. 오 의원이 자신의 지역구 경찰서를 찾은 까닭은 지인인 새누리당 당원인 지역구민 배 씨의 요청 때문이었다.



'노래방에서 도우미를 고용하고 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관악경찰서 소속 한 지구대 경찰들은 현장에서 문제의 배 씨를 만났다. 배 씨는 노래방에 술을 사들고 온 사실은 인정했지만, 도우미를 부른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여기에서 잘 마무리 됐다면 좋았겠지만, 배 씨는 '안하무인'으로 날뛰기 시작했다. "내가 헌법기관이다", "내가 대통령 자문위원이다"라며 경찰의 단속을 제지하고 나선 것이다. 그 과정에서 경찰관을 밀치기도 했던 모양이다. 


헌법 제92조 

①평화통일정책의 수립에 관한 대통령의 자문에 응하기 위하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를 둘 수 있다. ②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의 조직·직무범위 기타 필요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


형법 제136조 

① 직무를 집행하는 공무원에 대하여 폭행 또는 협박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실제로 배 씨는 대통령 직속기관인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을 맡고 있다고 한다. 틀린 말을 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경찰관의 공무집행을 막을 근거가 되진 않는다. 배 씨는 즉각 공무집행방해의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상황이 다급해지자 배 씨는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들 중에 가장 '끗발' 있는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던 모양이다. 그가 바로 오신환 의원이었던 것 같다.


국회의원이 되어 본 적이 없어서 정확히 알 순 없지만, 이런 상황이 되면 '죄송하다'며 정중하게 거절을 해야 하는 것 아닐까? 애초에 오이밭이 나오면 피해가는 것이 좋고, 어쩔 수 없이 들어섰다면 신발을 고쳐 신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그것도 '국회의원'이라는 신분을 가지고 있다면 더더욱 조심했어야 했다. 하지만 오신환 의원은 과감하게도 경찰서에 직접 찾아가는 선택을 했다. 그리고 형사당직실에서 약 30분 가량을 머물렀다.



당시 오 의원을 맞았던 관악경찰서 형사팀장은 "(오 의원은) 오래 있지 않았다. 차 한 잔 마시며 5분가량 이야기한 뒤 3분 정도 배 씨를 면회하고 떠났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청탁 같은 것은 없었다. 이미 배 씨에게 사건에 대한 설명을 듣고 온 뒤라 별다른 할 이야기도 없었고, 내가 출동해야 해서 (오 의원이) 금방 갔다"고 밝혔다.


물론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싶다. 과거와 달리 국회의원이 수사 중인 사건에 압력을 가하는 시대는 지났다. 하지만 "지역구 의원이 수사 중인 사건과 관련해 찾아온다면 부담되는 것은 사실"이라는 경찰 관계자의 말처럼, 국회의원이 방문한 것은 경찰의 입장에서 상당한 부담이 된다. 오 의원은 이러한 사실을 몰랐을까? 물론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그 정도의 자각(自覺)도 못하는 천치(天癡)라면 애초에 국회의원 자격이 없는 것이다.



오 의원의 해명은 무엇일까? "배씨와 서로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그런 사이가 아니라 그냥 개인적으로 좋아해 호형호제하는 지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인으로서 논란이 된 점에 대해서는 정말 송구스럽다" 오 의원은 배 씨가 4·29 재보궐 선거를 도왔다는 사실을 부인하면서 오로지 개인적 친분 때문에 경찰서를 찾은 것이라 밝혔다. 


정말 깝깝하다. 송구스러울 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 현역 국회의원이 자신의 지역구에서 벌어진 사건, 그것도 자신의 지인이 직접적으로 관련된 사건을 위해 경찰서를 찾는다? 이건 누가 봐도 '문제적 상황'이다. 권력의 맛을 충분히 봤을 당사자가 이를 몰랐다고 한다면 기만(欺瞞)에 불과하다. 만약 단순히 지인이 걱정돼서 경찰서를 찾은 것이었다면 자신의 신분을 노출시키지 말았어야 하지 않았을까? 


국회의원은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직업'에 불과하지만, 이상하게도 대한민국에서는 그 지위가 '권력'으로 작동한다. 국회의원이라는 신분을 남용하는 경우가 얼마나 허다한가. 오신환 의원의 케이스도 마찬가지다. 설령 그의 말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그의 행동은 무분별하고 불필요했다. 그 때문에 적법하게 공무를 수행한 경찰은 '압력을 받은 것 아니냐'는 괜한 오해를 받게 됐다. 


이는 공권력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는 단초(端初)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가벼이 여길 일이 아니다. 또, 이 정도의 무딘 감각을 현역 국회의원들이 공유하고 있다면, 국민의 입장에서 매우 우려스럽기 짝이 없다. 스스로 특권의식을 버려야 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지위를 이용해 이득을 취하려는 주위 사람들까지 경계해야 한다. 국회의원들은 그 누구보다도 조심해야 하는 자리에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오신환 의원이 스스로 자초한 '문제적 상황'은 결코 얼버무리며 넘어갈 사안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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