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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해진 <그녀는 예뻤다>, 김혜진은 미운 오리새끼가 아니야

너의길을가라 2015. 10. 23.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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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지성준(박서준)이 민하리(고준희)의 정체를 알게 됐다. 그와 함께 김혜진(황정음)이 진짜 자신의 첫사랑이라는 것도 깨닫게 됐다. 차곡차곡 쌓아왔던 갈등은 극적인 순간에 터지고 말았지만, 그 결과 캐릭터가 흔들리고 스토리는 지루해졌다. 어쩌면 이와 같은 상황은 빨간 주근깨와 폭탄 머리로 상징되는 김혜진이 사라지면서 충분히 예고됐던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예뻤다> 제작관계자는 "9회와 10회, 11회와 12회가 각각 한 주 분량이었는데 아무래도 순서가 조금 밀리면서 보시는 시청자 입장에서 답답함을 느끼실 수도 있었을 것"이라며, 지루함의 원인을 지난 14일 2015 KBO 준플레이오프 4차전 두산 대 넥센 경기 중계로 인한 '결방'에서 찾았다. 물론 충분히 설득력 있는 주장이다. 


애초에 계획했던 일정대로라면, 늘어졌던 11회는 바로 이어질 12회를 통해 바로 극복이 됐을 것이다. 하지만 결방의 영향으로 12회가 다음 주에 방송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야기의 맥이 끊어지게 됐다. 물론 '결방' 때문에 시청자들의 분노가 쏟아지면서 <그녀는 예뻤다>에 엄청난 관심이 쏠렸던 것과 10회와 11회가 연속 방송돼지성준이 민하리의 정체를 알게 되는 극적인 순간이 연달아 전파를 탔던 것은 '득(得)'으로 봐야 한다.




결국 <그녀는 예뻤다>가 지루해진 이유는 '결방' 탓이 아니다. 김혜진이 주근깨를 감추고 스트레이트로 폭탄 머리를 펴기 시작했을 때부터 이 지루함은 예고된 것이었다. 특유의 넉살과 초긍정의 성격으로 주변 사람들을 무장해제시켜 버리는 김혜진이라는 캐릭터가 사라지자 황정음의 연기도 평범해지기 시작했다. 김혜진이 무너지자 김신혁(최시원)도 빛이 바래졌다. 이 연쇄 반응이 드라마를 뿌리부터 흔들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예뻤다>는 영화 <뷰티 인사이드>의 드라마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의 외면보다는 내면의 아름다움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아름다운 교훈을 주려 했다가 결국 '외모가 최고다'라는 역효과를 내버린 <뷰티 인사이드>와 마찬가지로 <그녀는 예뻤다>도 같은 길을 걷고 있는 듯 하다. 왜 김혜진은 '예쁜 모습'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는가?





(이런 표현이 좀 불편할 수 있겠지만) 못생겼던 여주인공이 '미운 오리새끼' 취급을 당하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예뻐져(보통 안경을 벗는다)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전개는 이미 익숙한 방식이다. <그녀는 예뻤다>도 이러한 구성을 답습한다. 하지만 '카타르시스'가 느껴지지 않는다. 폭탄머리도 펴고, 주근깨도 화장으로 감춘 김혜진이 '짜잔'하고 나타났지만, 생각보다 반갑지도 통쾌하지도 않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변신' 전의 김혜진이 훨씬 더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황정음의 연기로 더욱 돋보이는 캐릭터가 되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김혜진은 우리가 찾아 헤매던 이상적인 친구이자 동료의 상이다. 옆에 있는 사람의 마음을 챙기는 그 착한 마음과 모든 일에 긍정적인 태도는 함께 있는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고, 에너지를 북돋아준다. 어느 순간에도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김혜진의 존재는 일상의 대리만족과도 같았다.




이상하게도 '변신' 후의 김혜진은 답답해졌다. 지성준과 김신혁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예뻐진' 그녀에게서 더 이상 매력을 찾기 힘들다. '착함'과 '배려'는 '답답'과 '미련'으로 비춰지고, 드라마는 뻔한 멜로가 되어 버렸다. 지성준은 여전히 달달하지만, 그의 사랑에 대한 의구심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가 사랑하는 것은 '첫사랑의 기억 속 김혜진'일까, '현재의 김혜진'일까?


11화에서 지성준은 김혜진에게 "너의 상황이 어떻게 변했든, 어떤 모습으로 나타났든, 아무 상관 없었을" 거라고 말한다. 또, "내가 좋아하는 건 너야. 예전에도 너고, 네가 너인 줄 몰랐을 때도 너고, 지금도 너고. 앞으로도 너야. 재촉 안할게. 그냥, 도망만 치지 마. 그것만 해줘"라고 절절한 고백을 한다. 하지만 '예뻐진' 김혜진에게 하는 지금의 고백은 그다지 설득적이지 않다. 




오히려 '잭슨'에 대한 순정을 시종일관 유지하고 있는 김신혁이야말로 진정한 '뷰티 인사이드'의 주인공이다. 그러고 보면 <그녀는 예뻤다>에는 두 가지 버전의 '뷰티 인사이드'가 존재한다. '김혜진-지성준' 러브라인이 보여주는 '뷰티 인사이드'는 내면(추억에 가깝다)이 외모의 역변도 이겨낸다는 것이고, '김혜진-김신혁' 러브라인은 외모와 상관없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내면(매력에 가깝다)이라는 것이다.


<그녀는 예뻤다>가 진정한 '뷰티 인사이드'를 말하려면, 어떤 러브라인을 밀어줘야 할까? 아무래도 '추억'에 의지하고 있는 '김혜진-지성준' 쪽보다는 '김혜진-김신혁'을 선택하는 것이 맞는 것 아닐까? 물론 '외면'과 '내면'이 마치 칼로 자르면 반으로 뚝 갈라지는 것처럼 생각하는 단순한 사고방식은 유치한 것이다. '외면'과 '내면'은 애초에 분리되어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잘 비벼진 비빔밥을 떠올리면 좋지 않을까?


어떤 러브라인이 이뤄지든 간에 <그녀는 예뻤다>가 얼른 초반의 쾌활함을 되찾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루빨리 '김혜진'이 무게중심을 잡아야 한다. 섣부른 예측을 해본다면, 너무 빨리 예뻐진 김혜진은 조만간 다시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가지 않을까? 남들의 시선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이 '김혜진'임을 부끄러워하지 않던 당당한 그녀로 말이다. '잭슨'은 미운 오리새끼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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