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킴의 극장

힘 빠진 <인페르노>, 인구 과잉에 대한 느슨한 충격

너의길을가라 2016. 10. 25.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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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전보다 인구가 3배나 증가했다는 걸 알아냈다" (댄 브라운)


재 생물학자 '조브리스트(벤 포스터)'는 세계 인구의 절반을 줄이자고 주장한다. '인구 과잉'의 문제를 제기한다. 신선한 이야기는 아니다. <킹스맨>에서 리치몬드 발렌타인(사무엘 L. 잭슨)도 지구 온난화가 우려된다며 이른바 '인구 경감 프로젝트'를 가동했고, 브라이언 싱어의 <액스맨: 아포칼립스>도 탐욕스러운 인간을 바라보며 개탄하더니 "강한 자만이 살아남을 것"이라며 인구를 '솎아내야' 한다고 경고를 하지 않았던가.


신선하진 않다는 건 그만큼 '반복'됐다는 뜻이고, 그건 인류가 함께 고민해봐야 할 사안이라는 신호(늘 그런 건 아니지만)이다. 실제로 17세기 중반까지 5억 명에 불과했던 세계 인구는 19세기에 10억 명을 넘어섰고, 2016년 현재 75억 명을 돌파했다. 유엔경제사회국(UNDESA)은 세계 인구의 증가세가 계속 이어질 것이라 전망하면서 2030년에는 85억 명, 2100년에는 112억 명에 도달할 것이라는 예상을 내놓기도 했다. 



기본적으로 '인구 과잉'에 대한 우려는 영국의 경제학자 맬서스의 『인구론』에 기초하고 있다. 맬서스는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데 반해 인간의 생존에 필요한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하므로, 어느 시점부터는 인구 수가 식량의 양을 초과해 사회적 혼란이 야기된다고 주장했다. (한편, 인류는 '화학비료'를 발명해내면서 맬서스를 반박했다) 따라서 엄격한 산아제한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 


선견지명(先見之明)이 있는 혹은 기우(杞憂)에 빠진 이들 중 한 명은 '내가 나서야 해!'라는 생각을 품었을 것이다. 리치몬드 발렌타인, 아포칼립스와 마찬가지로 '조브리스트'도 그런 부류의 사람이었다. 그는 '해결책'으로 흑사병(黑死病, Black Death)을 떠올렸던 모양이다. 14세기 유럽을 '지옥'으로 몰고 갔던 그 끔찍했던 전염병 말이다. 당시 흑사병으로 인해 2,500만 명이 죽음을 맞이했는데, 이는 당시 유럽 인구의 30%에 달하는 숫자이다. 



조브리스트는 21세기 흑사병(바이러스)을 개발해, 이를 퍼뜨려 인류를 심판하고자 한다. 러프(rough)한 계획이 당혹스럽긴 하지만, 어쩌면 '인류의 구원자(?)'가 될 수도 있었던 그의 계획을 '우연찮게' 막아서게 된 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로버트 랭던(톰 행크스)이다. 랭던이 누구인가? <다빈치 코드>(2006), <천사와 악마>(2009)에서 천부적인 기억력과 탁월한 암호 해독 능력을 발휘했던 기호학자가 아니던가.


물론 <인페르노>에서는 랭던의 능력치가 십분 발휘된다고는 보기 어렵지만, 기존의 '놀던 가락'이 어디 가겠는가? 랭던은, 늘 그랬던 것처럼, 다양한 역사적 상식과 전문 분야인 기호학을 접목해 '단서'들을 파헤치며 조브리스트의 계획에 맞선다. <인페르노>에서는 단테의 『신곡』 「지옥」편과 보티첼리의 <지옥의 지도>가 핵심적인 힌트로 제공된다. 



초반의 분위기는 '제법' 그럴 듯 하다. 이틀 간의 기억을 잃어버린 랭던이 느닷없이 누군가로부터 쫓기게 되면서 전개되는 액션과 긴장감은 관객들을 순식간에 몰입시킨다. 담당 의사인 시에나(펠리시티 존스)와 호흡을 맞춰 단서를 찾아가는 과정도 흥미롭다. 여기에 피렌체, 베니스, 이스탄불의 이국적인 풍광이 더해지고, 각 도시를 상징하는 장소들이 눈과 마음을 즐겁게 만든다. 


다만, 중반 이후부터 매번 반복되는 '명화 속 추리 시간'은 지루하기만 하고, 그들만의 '퀴즈'는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한다. 테러리스트들의 '낭만적인' 계획(바이러스를 퍼뜨리면 정말 인류의 절반만 살아 남을까?)과 이를 저지하려는 랭던의 발버둥은 설득력을 주지 못해 관객의 힘을 빠지게 한다. 세계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는데, 바쁜 건 랭던 일행뿐이라니.. 게다가 그 급박스러운 순간에서조차 '로맨스'가 난무하니 난감하기가 이를 데 없다. 



무엇보다 여전히 반면교사(反面敎師)를 하지 못하는 악당의 수준에 기어이 화가 난다. <톰과 제리>에서 톰은 다 잡은 제리를 '곧바로' 잡아먹지 않고, 뜸을 들이다 매번 뒤통수를 맞는다. 언젠가는 그 패턴이 지겹고 화가 나 방송사에 항의(그런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란 걸 모를 만큼 어릴 때였다)하려고 하기까지 했다. 악당들의 머뭇거림과 어리숙함은 내가 어른이 된 후에도 바뀌지 않았다.


인구를 줄여야만 인류가 더 오래 존속할 수 있다는 확신에 차있던 조브리스트는 왜 '당장' 바이러스를 퍼뜨려 구원에 나서지 않았는가. '퀴즈쇼'가 마무리 될 때까지 충분한 시간을 주는 악당이라니! 뻔한 결론을 향해 달려가는 영화가 주는 '쾌감'은 그리 크지 않은 법이다. '인구 과잉'은 인류가 머리를 맞대고 함께 고민해야 할 사회적 문제이지만, 이런 식의 느슨한 접근으로는 사람들의 뇌를 충분히 자극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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