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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자를 병풍 만드는 <대탈출>, 탈출하거나 말거나 관심 없다

너의길을가라 2018. 7. 10.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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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베이어 벨트를 반대로 엉금엉금 기어 통과한 후 셔터문 옆의 상승 버튼을 누르자 셔터가 올라간다. 무려 9시간 만에 바깥 공기를 맡은 대탈출러들, 강호동, 김종민, 신동, 유쟁배, 김동현, 피오는 서로를 부둥켜 안으며 환호성을 지른다. 제작진은 축포를 터뜨려 그들을 노고를 치하하며 반갑게 맞이한다. 사설 도박장을 배경으로 꾸려졌던 tvN <대탈출> 첫 번째 에피스도가 끝이 났다. 


탈출을 자축하며 기뻐하는 저들을 바라보고 있는데 뭔가 허전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근데, 이걸 왜 보고 있어야 하지?" 의문으로 가득한 초대형 밀실에 갇힌 출연자들은 탈출을 위해 주변을 탐색한다. 단서를 모으며 저마다의 방식으로 탈출을 궁리한다. 또, 머리를 맞대고 힘을 모은다. 그러니까 이건 명백히 '방탈출 게임'이다. 다시 말하면 시청자들은 '방탈출 게임'을 TV를 통해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뭐든 방송의 소재가 되는 세상인데, 방탈출 게임을 예능으로 만드는 게 무슨 대수란 말인가. 문제는 그것이 '저들만의' 방탈출 게임이란 사실이다. 시청자는 '관객'이다. 일정한 거리를 두고, 무슨 일이 벌어지나 지켜본다. 그렇다고 해서 그 행위를 '관망'이라 하긴 어렵다. 시청자는 상황에 몰입하고, 캐릭터에 감정이입한다. 이를 교감 혹은 소통이라 불러도 좋다. 그래서 TV는 일견 일방향적 같지만, 결과적으로 쌍방향적인 매체다. 



다시 <대탈출>의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대탈출>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시청자를 '관망자'로 만든다는 점이다. 우선, 맥락이 없다. 도대체 저들은 왜 밀실에 갇힌 걸까. 저들은 무엇 때문에 밀실에서 탈출해야 하는가. 저들이 밀실을 탈출함으로써 얻는 이들은 뭘까. 다시 말해서 <대탈출>에는 원인도 없고, 동기도 없다. 몰입할 만한 요소가 없다. 그러니 결과가 어떻든 간에 시청자들의 반응은 시들시들할 수밖에 없다.


또, 개입의 여지가 없다. 신동 혼자서 부단히 암호를 풀고, 분산돼 있는 단서를 조합해 비밀번호를 찾아내는 동안 시청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예능의 문법'을 버리지 못한 강호동이 치킨 타령을 하고, 지분율을 따지며 멤버들을 구박하는 장면을 멍하니 쳐다보며 너털웃음이나 지을 뿐이다. 과연 이것이 <대탈출>이 의도한 것이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퇴보다. 정종선 PD는 기자간담회에서 "제작비는 엄청 많이 들었다. 했던 스튜디오에서 계속 진행할 수 없지 않나. 상상을 초월하는 돈을 썼다"며 기대감을 높였지만, 도대체 그 많은 제작비를 왜 쓴 건지 의문이 들었다. 전작들인 <더 지니어스>, <소사이어티 게임> 시리즈에 비해 <대탈출>은 목표 의식도 없고, 긴장감은 더욱 없었다. 


<더 지니어스>의 박터지는 두뇌 대결과 눈치 싸움은 얼마나 짜릿했던가. 의리와 배신, 연합과 반목은 시청자들을 열광하게 만들었다. <소사이어티 게임>의 절박함과 승부욕은 또 어떠했던가. 거기엔 상금이라는 명확한 목표가 있었고, 연예인과 비연예인을 아우르는 캐스팅이 있었다. 절박함이 없는 <대탈출>에 남은 건 다분히 예능적인 웃음뿐이다. 


<대탈출>을 마주한 시청자들의 반응은 '탈출하거나 말거나'에 가깝다. 저들의 탈출이 9시간이 걸리든 19시간이 걸리든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 상황에 빠져들 만큼 스토리텔링이 잘 돼 있는 것도 아니고, 감정을 이입할 대상도 보이지 않는다. 돌려막기라 해도 무방할 정도의 식상한 얼굴들이라 솔직히 지겹기까지 하다. 그마저도 출연자 전원인 남성이다. 여러모로 안이한 <대탈출>, 대단히 실망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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