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듣는 귀

스웨덴의 6시간 노동 실험, 다른 생각의 문을 열어젖히다

너의길을가라 2016. 7. 19.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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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인들은 하루를 24시간으로 나눠 그 중 여섯 시간만을 일할 시간으로 배정하고 있습니다. 정오까지 세 시간 일하고,정오가 되면 점심을 먹으러 갑니다. 점심 후에 두 시간 쉬고 나서, 다시 세 시간 일합니다."


『유토피아』라는 저서를 통해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신학자이자 사상가(그는 법학자이기도 하고 정치가이기도 하다)인 토마스 모어(Thomas More), 1478~1535)는 그 명저(名著)에서 인간에게 적당한 노동은 하루 6시간이라고 주장했다. 15세기의 일이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16세기 유토피아 사상가인 토마소 캄파넬라(Thommaso Campanella1568-1639)는 한발 더 나아가 5시간이 가장 적당한 노동 시간이라 말한다.



물론 이들의 생각은 그야말로 '이상적'인 것이었고, 그만큼 '현실'과는 매우 동떨어져 있었다. 인간이 발을 디디고 있는 땅은 '유토피아'가 절대 아니었다. 노동은 가혹했고, 삶은 처절했다. 그런 흐름은 세월을 훌쩍 넘어 19세기까지도 이어졌는데, 20세기 최고의 지성이라 불리는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 1872~1970)의 증언을 통해 그 상황을 떠올려보기로 하자. 


"가난한 사람들도 여가를 가져야 한다는 생각은 부자들에겐 언제나 충격이었다. 19세기 초 영국에서는 남자의 평일 근로시간이 15시간이었다. 아이들도 하루 12시간씩 일하는 게 보통이었고 어른만큼 일하는 경우도 있었다. 노동 시간이 약간 긴 것 같다고, 참견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주제넘게 제의했을 때 되돌아온 대답은, 일이 어른들에겐 술을 덜 먹게 하고 아이들에겐 못된 장난을 덜 하게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버트런드 러셀은 자신의 저서인 『게으름에 대한 찬양』에서 19세기 초 영국의 '노동 환경'을 설명하고 있다. 평일을 기준으로 남자는 15시간을 일하고, 심지어 아이들도 12시간씩 일하는 게 일반적이라니. 수 세기 전 선각자들의 외침은 방직 공장의 저 요란한 기계 소리에 파묻혀 버렸단 말인가. 실은 그 주범은 다름 아닌 인간의 탐욕이었겠지만. 



"만일 사회를 현명하게 조직해서 아주 적정한 양만 생산하고 보통 근로자가 하루 4시간씩만 일한다면 모두에게 충분한 일자리가 생겨날 것이고 실업이란 것도 없을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부자들에겐 충격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그렇게 많은 여가가 주어지면 어떻게 사용할지도 모를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많은 노동 시간이 사회적 문제를 야기한다고 생각했던 러셀은 토마스 모어(6시간)와 토마소 캄파넬라(5시간)를 넘어서는 파격적인 주장을 한다. 그는 무려 '4시간 노동'을 제시한다. 글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러셀은 '노동 환경'을 말하면서 실은 '여가(휴식)의 필요성'을 강변하고 있다. 놀랍게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19세기에도 부자(고용주)들에게 '가난한 사람들도 여가(휴식)를 가져야 한다는 생각'은 '충격'이었던 모양이다.



"더 많이 일하라!" "근면하고 성실하라!" 노동을 강조하는 이 반(反) 인간적 언어에 대해 러셀은 이렇게 대답한다. "지금까지도 우리는 기계가 없던 예전과 마찬가지로 계속 정력적으로 일하고 있다. 이 점에서 우리는 어리석었다. 그러나 이러한 어리석음을 영원히 이어나갈 이유는 전혀 없다" 1830년대부터 노동 이외의 시간을 '헛된 시간(Lost Time)'으로 여기던 생각들은 점차 사라지게 된다.


19세기 말이 되면, 지나친 노동 시간은 오히려 노동 생산성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관념이 일반화된다. 존 레이의 「8시간 근무제(Eight Hours for Work)」라는 논문은 이와 같은 생각에 쐐기를 박았는데, 20세기에 접어든 인류는 주 48시간(1919년)에서 주 40시간(1935년) 근로 원칙을 세우는 데까지 진일보한다. 물론 그 인류의 행보에 '대한민국 사회'가 얼마나 발맞춰 걷고 있는지는 의문스럽지만.  


ⓒ한국일보


"1일 8시간 근무체제는 생각보다 효율적이지 못하다. 8시간 동안 한 가지 업무에 집중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이로 인해 여러 가지 업무를 번갈아가며 진행하거나 중간에 휴식시간을 갖는 등, 근무시간을 더 잘 견디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필요했다" - 어플리케이션 개발사 필리문더스(Filimundus) CEO 리누스 펠트 -


21세기 '노동 시간'과 관련한 최고의 '실험'은 스웨덴이 시도했다. 토머스 모어가 주창했던 '6시간 노동(주 30시간)'을 스웨덴이 실현시킨 것이다. 스웨덴의 제2도시 예테보리에서 시작된 파격적인 실험은 이제 전국적으로 퍼져나갔다. 이 확산이 의미하는 바는 '6시간 노동'이 성공적이었다는 것을 뜻할 것이다. 스트레스는 줄어들고, 업무의 질은 향상됐다. 충분한 휴식을 취한 직원들은 '일상'을 회복했고, 직장에 대한 충성도도 높아졌다.


노동 시간 단축은 노동 생상성 향상으로 이어졌다. 물론 스웨덴식 근무 환경을 일반화하기 어렵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그것이 경제 성장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도 제시되고 있다. 다시 말해서 '당장' 모든 사회에 적용할 수 없다는 주장에 동의한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더 많이 일할수록 생산성이 늘어난다'는 오래된 '믿음'은 깨졌다는 것이다. 그 증거들이 단지 '연구'가 아니라 '현실'에서 확인됐다는 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사실 대한민국의 현실에 비춰볼 때 갑작스레 '6시간 노동'을 말하는 건 '뜬구름 잡는 소리'처럼 들리는 게 사실이다. 스웨덴 노동자의 연간 평균 노동시간이 1609시간(2014년 기준)인데 비해 대한민국의 경우는 2,124시간이나 된다. OECD 가입국 가운데 2위(1위는 멕시코로 2,228시간)에 해당한다. 참고로 OECD 평균은 1,770시간인데, 우리와는 차이가 상당하다. 19세기 말 확립됐던 근로 원칙의 합의로부터 대한민국은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재미있는 것은 그토록 많이 일하고도 노동 생산성은 28위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기본적으로 많은 노동 시간을 견디면서 거기다 살인적인 초과 근무를 수행하고, '일상'까지 포기한 채 야근에 시달리는 대한민국의 노동자들의 노동 생산성이 더 낮다면 이제 '다른 생각'을 해볼 때도 된 것 아닐까? 그러니까 단순히 '시간의 양'이 문제가 아니라 '시간의 질'이 중요하다는 사고의 전환 말이다.


'더 적게 일하는 것이 더 높은 노동 생산성을 이끌어낸다'는 데까지 나아갈 수 없다 하더라도, '더 많은 노동이 반드시 높은 생산성을 담보하지 않는다'는 합의를 도출하는 건 가능하지 않을까? 스웨덴의 실험 결과는 그것이 반드시 '정답'이라는 의미보다는 새로운 사고의 가능성을 열어준 것이기에 반갑다. 열어 젖혀진 문 안쪽을 더 많은 사람들이 들여다본다면 변화가 시작될 것이다. 


잊지 말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일상'이다. 일상을 잃은 노동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런 잿빛 노동이 무엇을 '창조'할 수 있을까. 노동을 위해 삶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을 위해 노동이 있음을.. 그리고 그 생의 기운을 회복한 노동이 훨씬 더 많은 가치를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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