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 연예

믿기지 않는 종영, <효리네 민박>이 문을 닫습니다

너의길을가라 2017. 9. 22. 20:14
반응형



패들보드를 타기 위해 곽지과물해변에 도착한 이효리와 이상순, 그리고 이지은은 해변이 잘 보이는 장소에 텐트를 치고 자리를 잡는다. 세 사람은 텐트 안에 앉아서 맑고 깨끗한 바다를 바라보며 잠시 담소를 나누며 웃음꽃을 피웠다. 이상순이 패들보드 장비를 대여하기 위해 자리를 비운 사이, 효리와 지은은 그저 말없이 바다를 바라본다. 그 짧은 침묵이 무엇을 뜻하는지 두 사람은 이미 알고 있었다. 이번에도 효리가 입을 연다. 늘 그렇듯, 상대방의 마음을 편안히 만드는 웃음을 동반한 다가섦이다. 


"너 처음 왔을 때 표정이 좀 어둡다가 중간에 밝아지는 듯 싶다가 다시 어두워지는 것 같다?"

"아니에요, 아니에요. 뭔가 오늘은 내일 다 끝난다고 생각하니까.."

"쓸쓸한 기분이 들어?"

"네, 네.."


쓸쓸한 기분이 드는 사람이 어디 지은이뿐이겠는가. 마음 속 한구석이 허전해지는 기분을 느끼는 건 <효리네 민박>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따스한 위안을 얻었던 수많은 시청자들도 매한가지다. 사실 믿고 싶지 않다. 오는 24일 <효리네 민박>이 문을 닫는다는 사실 말이다. 6월 25일 첫 방송 이후 3달 동안 일요일 저녁이면 제주도의 아름다운 자연과 효리네의 느긋함에 빠져 살았던 터라 '종영'이 주는 충격은 예상보다 크게 다가온다. 비록 2주 연장된 것이라 해도, 역시 이별은 너무도 갑작스럽다. 



"진짜 2주 길어 보였는데.. 아까 언니 주무실 대 작업실 앞 의자에 앉아가지고 새소리랑 듣는데 처음 온 날 생각나는 거예요. 근데 그거 진짜 어제 같은데, 내일 간다고 생각하니까 되게 기분이 이상했어요. 언니랑 처음 여기저기 가가지고, 바다 가가지고 노을 본 게 진짜 대박이었고, 손님들이나 막.. 그런 추억들이랑 그런 게.."


민박집이 운영됐던 15일 동안 총 13팀 39명의 손님들이 다녀갔다. 이효리는 회장, 이상순은 사장, 그리고 이지은은 직원 역할을 맡아 성심성의껏 손님들을 맞이했다. 조식, 청소, 잠자리, 바비큐 파티, 픽업 서비스 때때로 요가 수업까지 <효리네 민박> 임직원은 최선을 다해 자신들이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내주었다. 자신들의 공간을 거리낌없이 오픈했고, 그곳에 다양한 이야기가 묻어갈 수 있도록 배려했다. 또, 스스럼없이 마음을 열어보였고, 그 친근함에 손님들도 기꺼이 화답했다. 


장기 투숙하며 제주도를 샅샅히 살피고 조사했던 탐험가들, 아픈 가정사에도 밝은 모습을 간직하고 있던 사랑스러운 삼남매, 듣기 싫은 말을 듣지 않을 수 있지만 듣고 싶은 말을 들을 수 없어 아쉽다던 정담이, 일보다 사람 때문에 힘든 직장 생활의 고통을 잊게 만들어 준 대구에서 온 영업사원들, 가고 싶은 대학만 가면 모든 게 행복해질 것 같았다는 청춘의 고민을 털어놓는 예고 동창까지. 성별과 세대, 직업과 분야 등을 포괄하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차곡차곡 쌓였다. 소통과 배려, 이해와 감동이 한가득 모였다.



초반에는 포커스가 이효리에게 집중적으로 맞춰졌다. 시대를 호령했던 최고의 스타였던 그의 모든 것이 여전히 궁금했다. 제주도로 삶의 터전을 옮긴 이효리가 어떤 하루를 살아가고 있을지 호기심이 쏠렸다. 차로 아침을 열고, 요가와 명상으로 감정을 컨트롤하며, 산책과 낮잠으로 여유와 자유를 만끽하는 그의 삶은 충분히 행복해 보였다. 자연스레 이상순과의 결혼 생활이 주목됐다. 이효리는 매순간 남편이자 가장 좋은 친구인 이상순과 강하게 연결돼 있었다. 


초점은 이상순에게 슬그머니 옮겨갔다. 아마도 이런 이유였을 것이다. '도대체 어떤 남자이길래, 천하의 이효리가 '선택'한 걸까?' 그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내면에 화가 없는 사람'이라는 이효리의 설명처럼, 이상순은 감정기복이 심한 편인 이효리를 느긋하게 지켜볼 줄 알았다. 매사에 차분하고 침착했고,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는 일이 없었다. 무언가를 요구할 때도 조곤조곤 설득했고, 상대방을 좌지우지하려 들지도 않았다. 자상함과 배려가 돋보였다. 그러다보니 '워너비 남편'이라는 찬사까지 얻었다. 


이효리, 이상순 부부와 민박 손님들, 여기까지였더라도 훌륭했을 것이다. 하지만 약간의 '단조로움'이 필연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화룡점정을 찍은 무언가가 필요했을까. "3달 정도 이야기를 끌어가려면 그 둘과 민박객 이외에 다른 인물이 필요하단 생각이 들었"다는 정효민PD의 말처럼 말이다. 그래서 투입된 인물이 바로 아이유였다. 가요계를 넘어 연예계의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이효리와 필적할 커리어를 가진, 현 시대의 아이콘이라 할 아이유 말이다. 그리고 그 선택은 신의 한수가 됐다.



"그녀는 하얀 얼굴에 가지런한 단발머리/놀란 듯 눈은 동그래/왠지 모를 슬픈 표정/어디서 왔을까/큰 옷에 자그마한/어디로 가는가/하늘하늘 휘청휘청 걸어가네" - '효리&지은 송' 중에서 -


효리가 <효리네 민박>에서 가수나 연예인의 모습을 내려놓고 그저 '이효리'로 다가왔던 것처럼, 아이유도 자신을 가두고 있던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그저 '이지은'이 됐다. 그러자 꾸밈 없는 순수함이 빛나기 시작했다. 조금 느리지만 자신이 맡은 일을 성실히 해내고, 뒤뚱거리지만 멈추지 않고 끝까지 완수한다. 항상 밝게 웃고 크게 인사한다. 특유의 청량함이 주변 사람들을 기분 좋게 만든다. 또, 몸에 밴 예의 있는 태도가 보는 이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기도 한다.


지은은 가요계의 선배이자 인생 선배인 이효리에게 자신의 고민들을 털어놓는다. 또, 효리는 지은을 통해 주인공의 자리를 내려놓는 법을 깨다는 등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그런 과정을 통해 두 사람은 조금씩 가까워지고, 어느새 깊은 교감을 나누는 사이가 된다. 어쩌면 '거울'을 바라보는 것처럼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또, 값을 매길 수 없는 위로와 위안을 얻는다. 다르면서 같은, 같은면서 다른 두 사람의 관계를 지켜보는 시청자들도 그들의 대화에 깊이 빠져든다. 



<효리네 민박>에는 일반적인 의미의 '예능적 요소'가 전혀 없다. 제작진과 출연진 그 누구도 웃기려는 강박에 시달리지 않는다. 그저 '민박집을 운영한다'는 콘셉트 속에서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TV를 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입가에 미소가 한가득한 스스로를 발견하게 된다. 게다가 이 프로그램에는 간접 광고도 없다. 결국 이 말도 안 되는 프로그램을 '존재'하게 하는 힘은 이효리에서 발현된다. 오로지 이효리이기에 가능한 프로그램, 그것이 바로 <효리네 민박>인 셈이다.


첫회 6.745%로 시작해서 최고 시청률 9.995%를 기록하기도 했던 <효리네 민박>은 꾸준히 7~8%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뜨거운 사랑의 중심에 있었다. <효리네 민박>은 느림의 미학, 여유로움의 힐링을 더할나위 없이 증명했고, 성공만을 향해 경주마처럼 달려가는 삶을 강제받는 현대의 소시민들에게 인생에 대한 다른 시선을 제공했다. 그것이 경제적 안정 속에서 가능한 판타지라는 사실을 모르지 않지만, 적어도 이효리가 줬던 진심과 힐링은 '진실'이었음을 알고 있지 않은가. 지금의 이별이 한없이 아쉽고 섭섭한 까닭은 그 때문이리라.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