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킴의 여행기

[버락킴의 파리 여행기] 8. #마레 지구 #보주 광장 #빅토르 위고의 집

너의길을가라 2017. 1. 9.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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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프 라무르는 『걷기의 철학』에서 '산책'을 '우연에 내맡긴 걷기'라 정의한다. 즐거움을 위해 자신의 발걸음을 어디론가 옮기는 '산책자'에게는 서두름이 없다. 조급함이 없다. 얽매임이 없다. 자신만의 속도에 맞춰, 거리가 주는 느낌들을 만끽한다. 그리하여 "사람은 걸을 때마다 힘을 모두 써버리고 다시 새로운 원기를 얻는다." 자신만의 '속도'를 유지할 수 있다는 '전제'가 성립된다면, '여행'은 '산책'과 동의어로 읽어도 무방하다. 파리에는 산책을 부르는 거리가 숱하게 많고, 그곳을 걷는 여행자는 새로운 원기를 잔뜩 얻고 돌아간다.


파리는 '골목의 도시'라 불러도 무방할 만큼 아름답고 분위기 있는 '거리'가 차고 넘치지만, 굳이 몇 군데를 꼽아보라면 '몽마르트르 지역'과 '마레 지구(Marais)'를 먼저 얘기하게 된다. 다만, 파리의 북부에 위치한 몽마르트르 지역은 언덕 지대라서 조금만 걸으면 숨이 차기 때문에 걷기에 아주 적합하지 않은 편이라 개인적인 '첫 순위'는 마레 지구의 차지다. 또, 예술적 감각이 구석구석 배어 있는 마레 지구는 파리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지역으로 정평이 나 있기도 하다. 그 어떤 곳보다 활기가 넘치고 낭만도 넘친다.


우선, 바스티유 광장, 바스티유 오페라 극장, 보주 광장, 빅토르 위고의 집, 생폴 생루이 성당, 피카소 미술관, 카르나발레 박물관 등 볼거리가 즐비할 뿐 아니라 골목의 아름다움을 가장 절실히 보여주는 '로지에르 거리'를 비롯해 곳곳에 숨어 있는 골목들은 여행자의 발걸음을 쉽사리 놓아주지 않는다. 예두발을 멈춰 한참을 쳐다보게 만들고, 카메라의 셔터를 수없이 누르게 된다. 어쩌면 마레 지구야말로 가장 파리다운 곳이 아닐까. 그럼 지금부터 마레 지구를 한번 걸어보도록 하자. 

     


마레 지구를 걷는 '첫걸음'을 어디에서부터 시작하면 좋을까? 바스티유 역(Bastille)에서 바스티유 광장(Place de la Bastille)을 훑어보고 곧바로 진입하는 것도 좋지만, 가장 추천하는 루트는 르드뤼 롤랭 역(Ledru-Rollin)에서 내려 '플랑테 산책로(Promenade Plantee)'를 걸어 바스티유 광장 쪽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플랑테 산책로는 철로가 있던 다리 윗부분에 조성된 산책로인데, 총 길이가 1.75km 정도로 걷기에 안성맞춤이다. (물론 중간에 진입할 수 있는 계단이 있으므로 전체를 다 걷지 않아도 된다.)


라벤더 등 다양한 식물들로 가득한 산책로를 따라 걷다보면, 자연스레 마레 지구의 분위기에 젖어들게 된다. 아래쪽에는 교통량이 제법 많은 도로가 있어 한적하고 여유로운 산책로의 매력이 더욱 크게 느껴진다. 상쾌한 기분 속에서 조금만 걸으면 어느새 바스티유 광장과 그 옆에 세워진 바스티유 오페라 극장(Bastille Opera)이 눈에 들어온다. 바스티유 광장에 가면 '바스티유 감옥'이 있을 거라 생각하기 쉽지만, 바스티유 감옥은 1989년 7월 14일 프랑스 대혁명 200주년을 기념해 헐어지고 오페라 극장으로 탈바꿈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바스티유 광장 한가운데에는 7월 혁명(1830년)을 기념하는 기념탑인 7월의 기둥(Colonne de Juillet)이 세워져 있다. 51.5m의 높이의 기둥 꼭대기에는 프랑스의 세밀화가 중 한 사람인 뒤몽(François Dumont)이 조각한 자유의 수호신이 올려져 있다. 탑의 기둥에는 혁명 당시 희생됐던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고, 기둥 아래에는 희생자 504명의 유골이 안치돼 있다고 한다. 누군가의 죽음을 기억하는 행위, 그건 세상을 먼저 떠난 사람들을 위해서도 그렇고, 남겨진 사람들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일일 것이다. 



 'Rue St. Antonie'를 따라 걸으면 '보주 광장'이 곧 나타난다.



보주 광장(Place des Vosges)은 1612년 완성됐는데,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광장이다. 또, 가장 아름다운 광장이라 불린다. 사각형 모양의 공간은 완벽한 대칭 구조를 이루고 있는데, 보는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든다. 광장의 중앙에 위치한 조각상은, 프랑스를 유럽의 강대국으로 키워갔던 루이 13세의 기마상(1818년 재건)이다. 광장의 외곽을 형성하고 있는 건물에는 카페와 갤러리를 비롯해서 빅토르 위고, 리슐리외, 알퐁스 도데 등 유명인들의 집이 있다.



'빅토르 위고의 집'은 보주 광장에 들어서서 오른쪽으로 걸어가면 나온다. 


그렇다. 바로 저 유명한 『레미제라블(Les Miserable)』을 쓴 그 빅토르 위고의 집(Maison de Victor Hugo)이다. 실제로 그가 1832년부터 1848년까지 16년 동안 살았고, 『레미제라블(Les Miserable)』의 대부분을 이 곳에서 집필했다고 한다. 빅토르 위고와 함께 '장 발장'과 '자베르'도 함께 이 공간에서 살아 숨쉬었을 거라 생각하니 가슴이 설레기 시작한다. 개관 시간은 10시부터인데, 아예 작정을 하고 기다리고 있던 터라 그날의 첫 관람객이 되는 기쁨까지 누렸다. 



이 곳에는 빅토르 위고의 자필 원고를 비롯해 편지, 조각, 그가 손수 만들었다는 가구 등 다양한 유품들이 전시돼 있다. 사진 촬영도 가능하고, 근거리에서 유품들을 볼 수도 있어 매우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빅토르 위고와 그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비단 빅토르 위고의 집뿐만 아니라 프랑스의 모든 미술관과 박물관은 관람객에게 최대한의 자유를 허용하고 있었다. (다만, '플래시'와 '셀카봉'은 금지.) 이러한 프랑스의 전시 문화는 '불안감(!)' 때문에 어떻게든 관람객을 제약하는 우리와는 확연히 달랐다. 


대신에 층마다 직원이 여러 명씩 배치돼 있어 왠지 모를 엄숙한 분위기가 흘렀다. 지켜보고 있는 눈빛이 강렬히 느껴져 처음에는 왠지 쭈뼛쭈뼛하게 됐다. 문을 열자마자 찾아온 여행객을 기특하다 여겼는지, 그들 중 한 명이 부지런히 사진을 찍으며 돌아다니는 나에게 다가와 '빛'이 안 들어오는 각도를 알려주기도 하고, 사진을 찍어주겠다며 피사체가 되길 권하기도 했다. 그렇게 말과 미소를 나눈 덕분인지 한결 편하게 그 공간에 머무를 수 있었다. 서툰 언어 속에서 서로에게 다가가기 위한 접근, 그 '소통'이 주는 따스함이 마음을 녹였으리라.


이처럼 별것 아닌 것에 위로를 얻고, 별것 아닌 것에 위안을 얻는다. 돌이켜보면 '여행'뿐만 아니라 '삶'에서도 그러했던 것 같다. 빅토르 위고의 집에서 얻은 '원기'를 안고, 다시 발걸음을 재촉해본다. 지금까지는 시작에 불과하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마레 지구의 '골목'들을 누빌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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