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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킴의 낭중지추] 김대명,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배우

너의길을가라 2017. 3. 4.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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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낭중지추(囊中之錐) : 주머니 속의 송곳이라는 뜻으로, 재능이 뛰어난 사람은 숨어 있어도 저절로 남의 눈에 띄게 됨을 이르는 말


주머니 속에 송곳을 넣어 놓으면 어떻게 될까. 얼마 동안은 아무렇지 않을 수도 있다. 별다른 표시가 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 기간이 제법 길어질 지도 모른다. 1년, 2년, 그러다 10년이 될지도 모른다. 그 이상이 흘러버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국, 언젠가는, 그 '뾰족함'이 주머니를 뚫기 마련이다. 송곳은 자신의 존재를 숨길 수 없다. 오랜 무명 생활 끝에 '빛'을 보는 배우들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결국 뚫고 나왔구나!' 막혀 있던 강이 터지듯, 자신의 역량을 마음껏 펼치는 그들을 바라보면 괜시리 기분이 좋아진다. 



"어쩌면 우린 성공과 실패가 아니라 죽을 때까지 다가오는 문만 열어가면서 사는게 아닐까 싶어. (…) 성공은 자기가 그 순간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다르지 않을까?" tvN <미생> 중에서


아직까지 '미생' 장그래를 위로하던 '미생' 김동식 대리의 저 대사를 기억한다. 바둑 기사로서 성공하지 못했던 과거와 그런 그를 '실패자'로 낙인 찍는 사회에서의 경험들을 털어놓는 장그래에게 김동식 대리는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주며 따스하게 감싸안았다. 사회생활의 선배로서 건네줄 수 있는 최고의 위로이자 응원이었다. tvN <미생>은 원작인 웹툰 『미생』과 싱크로율이 높기로(사실상 100%에 가까웠다) 유명했는데, 그 중에서 단연 최고는 뽀글머리 김동식 대리를 연기한 김대명이 아니었을까. 정말이지 김대명은 김동식 대리 그 자체였다.


이른바 '현실 연기'의 디테일을 완벽히 살려냈던 김대명은 <미생>을 통해 일약 주목받는 배우가 된다. 2006년 연극 <귀신의 집으로 오세요>로 데뷔했던 그는 비로소 자신의 이름을 대중들의 뇌리 속에 각인시킬 수 있었다. 어쩌면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던 셈이다. 그런데 이후 그가 보여준 행보는 다소 의외였다. <미생>을 통해 구축했던 친근한 이미지에 안주하지 않고, 변화와 도전 속으로 과감히 뛰어든 것이다. '배우'라면 마땅히 그래야 한다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눈앞의 인기와 부가 아른거리는데 '냉정함'을 유지하는 게 쉬운 일인가.



"다들 의아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미생' 이후 확실히 많은 사랑을 받았고 다들 큰 인기와 부를 따라가는 선택을 할 것이라 보는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나는 일단 내가 재미있는, 흥미를 느끼는 연기를 하고 싶었다. 지금 보여준 내 모습과 다른 또 다른 모습을 관객에게 하나씩 꺼내 보이고 싶다." <스포츠조선>, 김대명 "'미생' 인기 따라가지 않는 이유? 소신 때문"


당장의 성과에 안주하지 않았던 김대명은 오히려 더 커다란 '성과'를 거머쥐었다. 충무로로 발길을 옮긴 그는 <방황하는 칼날>(2014), <표적>(2014), <역린>(2014), <타짜: 신의 손>(2014), <뷰티 인사이드>(2015), <특종: 량첸살인기>(2015), <내부자들>(2015), <계춘할망>(2016), <덕혜옹주>(2016), <판도라>(2016) 등에 출연했다. <방황하는 칼날>에서 불법 성매매를 알선하는 양태섭 역을 맡아 악역도 소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렸고, <내부자>들에선 악랄하고 비열한 고 기자 역을 맡아 관객들의 혈압을 높였다. 


에이로빅 강사로 변신했던 <계춘할망>에선 관객들에게 웃음을 선사했다면, <덕혜옹주>에선 독립운동가 김봉국 역을 맡아 관객들의 가슴을 뜨겁게 만들었다. <판도라>에선 주인공 재혁(김남길)의 의리 넘치는 친구 길섭 역을 맡아 눈시울을 붉히게 만들기도 했다. 이처럼 김대명은 장르와 캐릭터를 가리지 않고 연기의 스펙트럼을 넓혀나갔다. 또, KBS2 드라마 <붉은달>(2015), KBS2 시트콤 <마음의 소리>에도 출연했는데, 매체를 가리지 않고 김대명이라는 배우의 가치를 확장해 나갔다. 이보다 큰 '성과'가 어디 있겠는가. 



"묘하게 신경을 긁는 목소리가 키 포인트였다. 여러 작품 속의 김대명 씨를 보며 '아, 정말 이 요물 같은 배우와는 꼭 한 번 작업을 해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다." (이수연 감독)


한 가지 더 기억해야 할 사실이 있다. (이젠 꽤나 많이 알려지긴 했지만) <더 테러 라이브>(2013)에서 테러범의 그 섬뜩하고 소름돋았던 '목소리'의 주인공이 바로 김대명이라는 것 말이다. 이수연 감독이 밝힌 것처럼, 그가 <해빙>에 캐스팅 된 계기도 바로 그의 '목소리' 덕분이었다. <해빙>의 주연배우는 두말 할 필요 없이 조진웅이다. 출연 분량이 90%에 이를 만큼 압도적 비중이다. 신경질적인 내과 의사 승훈 역을 섬세하게 표현한 연기도 압권이다. 하지만 그 못지 않게 빛나는 배우가 바로 김대명이다. 


김대명은 극중에서 승훈과 맞서는 정육식당을 운영하는 성근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성근은 선악이 분명치 않고, 목적과 의도 역시 뚜렷히 드러나지 않는 의뭉스러운 캐릭터다. 김대명은 마치 '호흡' 하나까지 계산한 듯한 연기를 선보였는데, 조진웅의 대사를 맞받아치는 '타이밍'의 변주가 만들어내는 긴장감이 놀라울 정도다. 또, 섬뜩함을 배가시키는 표정들과 전달력을 높이는 제스처들은 김대명이 성근이라는 캐릭터를 표현해내기 위해 엄청난 고민과 노력을 기울였는지 잘 보여준다. 



무엇보다 김대명의 독특한 목소리가 관객들의 귀를 계속해서 자극하는데, 이는 그가 스릴러라는 장르에 특화된 배우라는 사실을 제대로 확인해 준다. 정작 김대명은 "예전에는 한석규 선배나 진웅이 형처럼 중후한 목소리를 갖고 싶었"다지만, 그의 목소리는 (적어도 '스릴러'라는 장르에 있어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이나 다름 없다. <해빙>에서 김대명은 조진웅, 신구 등 선배들과 부딪치는 신이 많았지만, 전혀 주눅들지 않고 제 몫을 해냈다. 그만큼 그는 어느덧 믿고 보는 배우이자 신뢰할 수 있는 배우의 위치에 올라선 것이다.


<미생>에서 영락없는 '회사원'으로 변신해 진짜 직장인이 아니냐는 말을 들었던 김대명은 <해빙> 이후에는 '정육점 사장 같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고 한다. 주변에서 그렇게 말해주면 고마운 일이라 대답하는 그는 천상 배우다. 그리고 앞으로 '길게' 갈 배우라는 생각이 든다. 마침내 주머니를 뚫고 나온 김대명의 활약을 앞으로도 기대해 본다. 그의 날카롭게 날이 바짝 선 연기라면, 언제든지 '찔릴' 용의가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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