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듣는 귀

무상은 세금을 정당히 돌려받는 것, 무상교복은 우리의 권리다

너의길을가라 2015. 12. 14.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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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교복을 입는 것을 마뜩지 않게 생각하는 입장이지만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교복 한 벌의 가격은 평균 16만 6,487원(국 · 공립)이다. 만만한 돈은 아니다. '선배 교복 물러입기'가 하나의 흐름으로 정착되기도 했지만, 여전히 대세는 새 교복을 구입하는 것이다. 아무래도 자신의 몸에 딱 맞는 새 교복을 입고 싶은 것이 학생들의 마음이고, 깨끗하고 번듯한 새 교복을 입혀 등교시키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일 테니까. 



그러다보니 휘둘리는 건 학생과 학부모 측이었다. 새학기가 되면 학생들 교복까지'..대형 교복업체들 입찰 담합 의혹 과 같은 뉴스를 찾아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대형 교복업체의 담함 때문에 교복 값엔 거품이 끼고, 그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과 학부모에게 전가된다. 교육부에서는 학교 주관으로 교복 업체를 선정하는 '교복 공동구매 제도'를 도입해 폐단을 막고자 노력했다.


그런데 한번 '다른' 생각을 해보자. 학교에 가는 데 왜 학생들이 교복을 '직접' 사야하는 걸까?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교복'을 지급해야 마땅한 것 아닐까? 가령, 의무복무 군인에게 군복이 지급되는 것처럼, 의무교육을 받는 학생에게 교복이 지급되어야 하는 것 아닐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의무교육은 '무상'으로 이뤄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 <조선일보>


'무상(無償)'이라는 용어가 선거 국면에서 활용되면서 이른바 정치적 용어로 '오염(汚染)'되어버렸지만(게다가 일부 정치 집단은 '무상'을 '좌파', 더 정확히는'좌빨'과 동일어로 규정짓는 몰상식한 짓을 저질렀다), 사실 '무상'이라는 용어는 대한민국 헌법에 버젓이 등장하는 헌법적인 용어다. 이를 부정하는 것은 사실상 헌법을 부정하는 것과 같으니 이 얼마나 반헌법적인 작태인가.


헌법 제31조 

①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② 모든 국민은 그 보호하는 자녀에게 적어도 초등교육과 법률이 정하는 교육을 받게 할 의무를 진다.

의무교육은 무상으로 한다.


이런 식이다. '의무교육은 무상으로 한다' 이 얼마나 단호한 언어인가. 국어사전에 따르면, '무상'이란 '어떤 행위에 대해 요구하는 대가나 보상이 없'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무상'을 '공짜'라고 인식한다. 어떤 정치집단이 이른바 '무상 시리즈' 정책들에 덧입히는 부정적인 이미지도 그로부터 기인한다. '공짜를 바라는 거지 근성을 가진 OOO'처럼 말이다. 



하지만 '무상'은 '공짜'가 아니다. 전국의 지자체장 가운데 단연코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이자, '청년배당', '공공산후조리원' 등 100만 성남 시민들을 위한 복지 정책들을 입안(立案)하면서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 이재명 성남시장의 설명을 들어보자. 


"'무상'이라고 하니까 '공짜'라 말하는 사람이 있다. 무상은 공짜가 아니다. 시민이 낸 세금을 정당하게 돌려받는 것이다. 우리가 지나가는 거지냐. 돈을 번 사람이 아무런 기여를 하지 않은 사람한테 주는 게 공짜다. 세금으로 하는 것은 피땀으로 벌어서 낸 돈을 두었다가 필요한 곳에, 전체 구성원을 위해 주는 것이다."


이 시장은 '시민이 낸 세금을 정당하게 돌려받는 것'이 '무상'이라고 말한다. 그는 "'무상'이란 글자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는데 저는 일부러 붙인"단다. 거침없다. 기실 헌법적인 용어를 기피할 이유는 없다. 그런 이유에서뿐만 아니라 한 국가의 국민으로서 살아가는 데 있어 누리는 각종 (정책적) 혜택은 실제로 '무상'으로 이뤄진다. 그렇다고 그것이 공짜인가? 내가 낸 세금이 '정책'이라는 수단을 통해 되돌아오는 것 아닌가? 



'무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길 두려워하기보다 오히려 이를 적극적으로 쓰면서 '무상'에 덧입혀진 부정적인 색채를 걷어내는 것이 바람직할지도 모른다. 물론 그 지난한 작업을 하는 것이 '비효율적'이라고 할 순 있겠지만. '무상'에 대해 이야기하느라 먼길을 돌아왔지만, 다시 고삐를 다잡고 원래 하려던 이야기를 해보자. 앞서 인용했었던 헌법 31조를 들여다보자. 


헌법 제31조 

①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모든 국민은 그 보호하는 자녀에게 적어도 초등교육과 법률이 정하는 교육을 받게 할 의무를 진다.

③ 의무교육은 무상으로 한다.


헌법은 '모든 국민은 그 보호하는 자녀에게 초등교육과 법률이 정하는 교육을 받게 할 의무를 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그 교육은 (앞서 살펴봤던 것과 같이) 무상으로 하게 되어 있다. 헌법은 초등교육을 의무교육으로 명시하는 한편, '법률이 정하는 교육'이라는 문구를 넣어 의무교육의 범위를 확대할 수 있는 여지를 두고 있다. 그래서 이 시점에 '교육기본법'이 등장한다.


제8조(의무교육) 

① 의무교육은 6년의 초등교육과 3년의 중등교육으로 한다. 

② 모든 국민은 제1항에 따른 의무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교육기본법은 2007년 12월 21일 전문개정 됐는데, 여기에서 '중등교육'이 '의무교육'으로 편입되게 된다. 헌법은 '의무교육'은 '무상'으로 하라고 명시하고 있고, 그렇다면 중등교육도 '무상'으로 이뤄져야 한다. 그래서 이재명 성남시장은 '무상교복'이라는 정책을 들고 나온 것이다. 성남시에 주민등록을 두고 있는 중학생에게 교복 구입비를 지원하겠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보건복지부'는 이를 가로막았다. 복지부는 지난 1일 성남시가 협의 요청했던 무상교복 사업에 대해 '변경 · 보완 후 재협의' 통보를 내렸다. 어떤 이유일까? "교복착용 여부는 학교 운영위원회 결정사항"이고, "성남시가 주장하는 의무교육 범위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전 계층에 대한 무상지원은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다는 것이다. 


이에 덧붙여서 복지부는 "교육복지사업의 취지를 고려해 전체 중학생에 대한 전면 무상지원보다는 소득 기준 등을 마련해 차등 지원하는 방향으로 변경·보완해 재협의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재명 시장은 '2016 성남형교육 사업 설명회'에서 "무상교복 지원사업은 핵심 공약 중 하나로 예산도 마련됐고 조례도 통과된 상황"이라면서 "시민들의 의견을 물어 추진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복지부의 '딴지'에 아랑곳하지 않겠다는 의사의 표현으로 보인다. 복지부의 '반대'에도 정책을 강행할 경우 받게 되는 불이익(지방교부세 감액 등)을 감수해야 하는데, 이에 앞서 시민들의 의견을 들어 '추진력'을 얻겠다는 의미로 보인다. 보건복지부는 '교복'은 '의무교육 범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해석한다. 그러면서 '소득 기준에 따른 차등 지원'은 가능하다고 말한다. 


ⓒ <제주의 소리>


무상급식을 둘러싼 가열찬 논의에서도 '차등 지원'이라는 '낙인'만큼은 찍어선 안 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았던가? 무상교복에서도 똑같은 논리를 들고 나와서, 학생들을 '소득 수준'에 따라 구분하고자 하는 것은 얼마나 잔인한 짓인가. 무상은 '시민이 낸 세금을 정당하게 돌려받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세금을 어디에 우선적으로 투자해야 할까? 그건 바로 '대한민국의 미래'와 동의어라고 할 수 있는 '교육' 아닐까?


의무교육으로 규정된 중등교육까지는 무상으로 이뤄져야 하고, 이에 대해선 학생과 학부모에게 어떠한 부담도 전가되어서는 안 된다. 복지부는 교복은 이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유권해석하고 있지만, 굳이 그리 좁은 시각을 유지할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무상급식이 당연한 권리가 된 것처럼 무상교복도 교육 복지의 하나다. 특히 성남시의 경우에는 예산도 마련됐고, 조례도 통과돼 제반 상황이 마련된 케이스가 아닌가? 


한편, 복지부는 '무상교복'뿐만 아니라 지난 6월에도 성남시가 추진하고 있는 '무상 공공산후조리원 사업'도 불가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러한 흐름을 고려하면 '청년수당 사업'에 대해서도 불수용 입장을 취할 것이 분명해진다. 시민들의 어깨를 조금이라도 가볍게 해주려는 시도들을 (도입은 바라지도 않는다) 칭찬을 못할망정 흥글방망이놀고자 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도대체 무엇을 겁내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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